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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반도체 기술자로 창업 쓴 맛…시설농사 혁신으로 재기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35> ‘토토팜’ 한성식 대표

  • 고영삼 은퇴설계전문가(사회학 박사)
  •  |   입력 : 2023-10-03 18:46:47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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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살려 세운 광반도체 회사
- 경영역량 부족 5년 만에 폐업
- 어릴 적 부모님 농가 돕던 기억
- 농업대학 등 다니며 귀농 준비

- 1500평 규모 토마토·오이 재배
- 비닐하우스·재배법 오랜 연구로
- 매출 4000만 원→2억8000만 원
- “나만의 일 확정하는 게 최우선”


◇ 한성식의 인생Tip

- 자신에게 맞는 100세 시대 인생 설계를 하고서 최선을 다하여 나아가라

사람들이 인생이모작으로 전환할 때 헤매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일’에 연관되어 있다. 향후 20년을 투자할 자신만의 일자리 잡기는 정말로 어렵다. 이모작의 일은 일모작 때의 장기를 살리면서도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 이번에 소문을 듣고 만난 이는 시설재배농을 하는 분인데 대화를 할수록 이 조건에 맞는 분이었다.
한성식(왼쪽) 대표가 부친 아내 아들과 함께 비닐하우스의 일중시설과 양액시설을 구축하던 중 사진을 찍었다. 부친 한석우(87세) 씨는 지금도 들판에서 경운기를 운전할 정도로 왕성하시다고 한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소개를 해주세요.

▶여기는 전남 광양시 진상면 이천마을입니다. 100여 농가가 호박 토마토를 시설재배하여 사실상 진주호박의 주산지로 소문난 곳입니다. 저는 이 중 이십여 농가와 함께 토마토와 오이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저의 영농 규모는 총 1500평인데 각각 35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4개 동에 양액재배 시설을 구축하여 재배하고 있습니다.



양액시설은 식물의 생육에 필요한 다양한 필수원소를 그 비율에 따라 농도를 적절히 용해시켜 공급하는 기술기반 재배시설을 말한다. 자연 토양에서 재배하는 방식과 다르다. 그가 안내하는 비닐하우스에는 자동급수 시설까지 잘되어 있는 가운데 먹음직한 토마토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언제 시작하셨나요? 수확량은 어떤가요?

양액재배 방식의 스마트팜인 토토팜에 자라고 있는 토마토.
▶2018년 55세 때 시작했으니 5년 정도 되었군요. 처음에는 비닐하우스 2개 동으로 시작했죠. 첫해는 매출액이 4000만 원이었는데 2020년 2동을 더 증설하여 올해는 2억8000만 원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작년부터 포도재배도 시작했습니다. 내년이면 매출액이 많이 늘겠죠(웃음).

-적성이랄까, 성향에 잘 맞나봐요?

▶저는 대학 졸업 후 광반도체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15년 정도 경력을 쌓고서 작은 광반도체회사로 옮겨 임원을 했죠. 그리고 2013년 50살에 드디어 JS전자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앞으로 50년은 일하려고 했죠. 그런데 이게 참 어렵더군요.

-어렵다니요?

▶결론적으로 종합적 경영역량이 부족했던 거였어요. 저의 전문기술과 기업 임원을 하며 쌓은 경험도 사실 오너로서 제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더군요. 영업력, 문제발생에 대한 대응력 등 오너 경영능력이란 건 기술자 출신인 제게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어요. ‘넘사벽’이었죠. 최종으로는 금융 문제를 막지 못했고 설립 5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어요.



들어보니 그는 광반도체회사 창업 후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져 버렸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창업 5년째 기업의 생존율은 29.2%라고 한다. 기업은 좋은 기술로서 시작할 수 있지만 보유한 좋은 기술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가 창업한 회사도 그랬다. 평생의 자산을 날리고 인생의 열정은 소진되었다. 그의 나이 55세 때였다.



-화려해야 할 나이에 오히려 ‘폭망’했군요.

한성식 대표의 2022년 제7기 전남농업마이스터대학 졸업기념 사진.
▶쓴맛을 톡톡히 봤죠. 빚도 안았고요. 모든 걸 내려놓아야 했어요. 지난 삶을 복기해 보았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부산대에 입학하고 또 광반도체회사에 들어갔으니 부모님들에게 자부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제게는 성공 집착이 과도했고, 이게 저를 난파시켰던 것이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비참했지만 저의 실패를 인정하고 아버지와 의논했습니다. 아버진 언제나 저의 최고 후원자이며 멘토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결심한 것이 귀농이었습니다.

-첨단기술자가 농사라니요?

▶사실 농사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을 도우며 늘 하던 거였지요. 처음 결심이 어려워 그렇지 익숙한 거였어요. 난파된 저를 회생시키는 마지막 카드라고 생각했던 거죠. 처음엔 토양재배 방식의 비닐하우스 2개 동을 설치했죠. 아들도 많이 도와주더군요. 마침 아들은 2017년도에 국립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입학하여 전문 영농인이 되기 위해 수련하고 있었거든요.



그의 귀농은 이른바 U자형이다. 모든 것이 익숙한 고향으로 돌아온 것. 제법 큰 복합농을 하고 계신 부친과 전문 영농인으로 수련 중인 아들이 적극 도왔다. 처음에 결심이 어려웠지만 성공하는 게임 조건이 형성되었다.



-참 다행이었군요.

▶고민하고 일하고 또 이를 반복하며 절박하게 일했습니다. 다행스럽게 2년 후에는 2개 동을 더 늘려 눈에 띌 정도로 매출량을 늘릴 수 있었어요. 재배방식도 양액 방식으로 바꾼 게 적중했거든요. 마침 2020년 코로나 예방에 토마토가 좋다고 알려져 주문량도 폭증했습니다. 그토록 차갑던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미소를 받는 느낌이었죠. 그해 2억 원, 2022년에는 2억8000만 원의 매출을 찍었죠. 냉혹한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에 오니 10년 넘게 힘들었던 마음도 편해지더군요.

-스마트 영농기술을 별도로 공부하신 건가요?

▶초심으로 돌아가 공부 많이 했습니다. 순천에 있는 전남농업마이스터대학에 다니며 2년 동안 공부했죠. 하루 6시간씩 최고 전문가들에게 토마토에 맞는 양수분, 물, 햇빛 등을 관리하는 모든 실전을 학습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하우스에서 1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하며 표출되지 않은 잠재지식을 습득했습니다. 광양농업기술센터도 매우 고마웠습니다. 매주 1회의 기술 프로그램도 탁월했고 좋은 조건의 귀농 자금도 대출받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 비닐하우스는 다른 곳과는 좀 다르군요.

▶네, 하우스 높이가 낮고 좀 더 밝은 것 같지요? 일반 하우스와 다른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비닐하우스는 비닐을 이중으로 씌웁니다. 한 개의 비닐을 씌운 뒤 공간을 좀 두고서 또 하나의 비닐을 더 씌우지요. 하지만 저는 그 방식은 광양 지역에선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광양(光陽)은 지명이 시사하듯이 예로부터 햇빛이 맑고 따뜻한 고장이죠. 그렇기에 겨울 추위를 막는 데 초점을 둔 이중비닐 방식보다는 햇빛 투과율이 좋은 일중비닐 방식의 이점이 많다고 판단했어요. 주위 사람들이 반대하셨지만 저는 생각대로 했고 그 결과 실제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어요.

-실험과 실행을 반복하며 생산량을 늘렸군요.

▶저는 얼마 전 포도 재배도 시작했습니다. 난방비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는 작물입니다. 또한 하우스 내에 LED를 설치할 것입니다. 비록 제가 벤처창업에는 실패했지만 젊은 시절 알아주는 LED기술 개발자였어요. 이제 그때의 기술력을 토마토 재배시설에 적용한다면 또 한 번 더 생산량의 혁신을 이룰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젠 그동안의 어려움도 말할 수 있겠군요?

▶(하하)사업을 실패하고서 시작하다 보니 애초 자금조달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일을 찾을 때 두려움이 저를 둘러싸더군요.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개인회생 중입니다. 또한 어머니께서 공부 잘했던 아들이 출세한 줄 알았는데 시골 와서 ‘하우스쟁이’ 한다며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비닐하우스 시설재배가 과연 성공할 것인지 불안했던 세월을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이 모든 것 제가 짊어지는 부채였습니다. 날마다 이 들판을 쳐다보며 신념을 일으키며 극복해 왔습니다.

-이렇게 다시 성공적으로 재기하고 계시군요. 인생이모작 전환기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전환기의 사람들은 우선 자신만의 일을 확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은퇴자들은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롱런을 기준으로 하실 것을 권합니다. 남의 이목이란 것 하나도 신경 쓰지 마세요. 자신의 꿈과 인생 좌표를 중심에 두고 판단하세요. 몇 년을 ‘땜빵’하는 일을 잡으면 나중엔 지쳐버립니다. 이모작의 승부는 자신에게 맞는 일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시작하는 포착력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한성식에게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는 실패를 인정하고 본인에게 최적합한 일을 다시 찾아내 뛰어든 사람이다. 자기계발 분야의 멘토 나폴레온 힐은 실패와 역경은 다른 방향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라 했다. 축복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 하지만 많은 실패자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그 속에 갇혀 버린다. 그러나 한성식은 현재를 수용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자신의 길을 찾았다. 마음속의 두려움, 남의 이목, 지나치리 만큼의 성공 집착과도 단절했다. 그 대신 다시 시작하는 힘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삶의 연속성을 키웠다. 광양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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