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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오빠 8살 때부터 7남매 가장…동생들 용돈까지 챙겼죠”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10> 네덜란드군 故 헨드릭 루트거 라드스타트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09-03 18:36:47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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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니파병 父 전사… 가족삶 파탄
- 자식들도 위탁가정으로 보내져

- 헨드릭, 실연 후 한국행 택해
- 당시 유엔군-공산군 38선 교착
- 정찰 중 머리에 총탄 맞고 숨져

- 부고 접한 여동생 리아 큰 충격
- 지난해 부산 유엔기념공원 찾아
- 70년 만에 오빠와 눈물의 재회

“제가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경제적으로 힘들었어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큰오빠가 동생에게 항상 용돈을 챙겨주던 게 기억 납니다. 그런 오빠가 한국전쟁에 갔다가 다시 못 돌아올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네덜란드 헬데를란트의 베이크 우버겐에서 만난 리아 라드스타트(여·89) 씨는 큰오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큰오빠는 네덜란드 반 호이츠 부대 소속 군인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헨드릭 루트거 라드스타트다.

“오빠와의 기억은 아주 좋은 추억입니다. 일곱 남매의 맏이였던 오빠는 저에게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오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대가족의 모든 일을 맡아 돌봤죠. 어머니에겐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비극의 시작

군복을 입은 헨드릭 루트거 라드스타트. 리아 라드스타트 씨 제공
리아 가족의 비극은 불의의 사고에서 시작했다. 해군 통신병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보직을 바꿔 해군 파일럿이 됐다. 인도네시아에 파병을 가 있던 아버지는 물 위에도 착륙할 수 있는 비행기를 몰았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아직 네덜란드의 지배 아래 있었다.

1937년 10월 16일 인도네시아 반다 제도. 아버지의 비행기가 이륙했다. 동료가 모는 비행기와 대열을 지어 날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 비행기가 추락했다. 원인 불명의 항공기 사고였다. 이 사고로 결국 아버지는 숨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남매 모두 어렸습니다. 큰오빠가 8살이었죠. 우리 가족의 삶은 그때부터 굉장히 어려웠어요. 우선 큰오빠와 둘째 오빠는 집에서 어머니와 지낼 수 있었지만, 나머지 형제자매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위탁 가정 등에 보내졌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힘든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리아 라드스타트 씨
헨드릭은 생계에 뛰어들어 집안 살림에 힘을 보탰다. 풍족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헨드릭은 리아 등 동생에게도 0.25 휠던(당시 네덜란드 화폐 단위) 정도의 용돈을 줬다. 리아는 이 용돈으로 매주 주말 친구와 함께 수영장을 가거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큰오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군이 폭격하자 가족을 챙겨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등 사려 깊은 사람이었어요. 또 당시 먹을 게 많이 없어 식량 바우처를 가지고 음식을 배급받았는데, 동생 주려고 사탕을 챙겨왔었죠.”

■실연 후 선택한 한국행

리아(아랫줄 맨 오른쪽)와 그의 큰오빠 헨드릭(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어린 시절 찍은 사진. 리아 라드스타트 씨 제공
헨드릭은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군인이 됐다. 아버지처럼 인도네시아 뉴기니로 파병을 떠났다. 인도네시아는 1949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는데, 당시 뉴기니섬의 서뉴기니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서뉴기니는 1961년이 돼서야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헨드릭은 아버지와 달리 네덜란드로 무사히 귀국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에서 다른 시련이 그를 기다렸다. 파병 전 약혼했던 애인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네덜란드의 다른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한 길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약혼해도 지금의 결혼처럼 공식 기록이 남았어요. 그만큼 오빠에겐 중요한 일이었죠. 그런데 약혼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고 하니 상실감이 컸던 것 같아요.”

1952년 1월 8일 헨드릭은 한국으로 출발했다. 헨드릭이 떠나기 전 모든 가족이 모여 버스 정류장에서 그를 배웅했다. “오빠가 그때 더플백을 메고 있었고, 우리 모두 한국에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때 다시 오빠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조차 못 했어요.”

■다시 볼 수 없는 오빠

리아 라드스타트(오른쪽에서 두 번째) 씨가 지난해 11월 아들과 함께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오빠인 헨드릭 묘지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제공
1951년 7월부터 유엔군과 공산군의 휴전회담이 시작됐다. 회담이 진전하면 전투는 소강 상태를 보였고, 진전이 없으면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헨드릭이 한국에 도착했을 땐 이미 양측이 38선을 두고 교착 상태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 헨드릭은 주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리아를 포함한 모든 가족은 헨드릭이 한국에서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여전히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오빠가 한국에서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는데,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또 전우와 관계도 좋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오빠는 편안한 사람이었고,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었죠.”

1952년 8월 27일 강원도 철원 인근. 헨드릭은 여느 때처럼 동료와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적의 총탄이 헨드릭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헨드릭은 머리에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헨드릭은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저는 당시 위탁 가정에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오빠의 전사 소식을 전하러 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서 오빠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기분은 ‘최악’이었어요. 다른 가족도 오빠의 전사 소식에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오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70년 만의 만남

헨드릭의 전사 소식을 알리는 글. 리아 라드스타트 씨 제공
지난해 11월 유엔기념공원. 리아는 헨드릭의 묘 앞에 섰다. 70년 만에 남매의 재회가 이뤄졌다. 리아가 가장 꿈꾸던 소원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리아는 헨드릭의 묘에 헌화했다. 헨드릭의 죽음을 이제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지막 인사 같았다.

“오빠의 묘에서 참배하고 인사하다니. 헌화했던 그 기억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한국 사람이 네덜란드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돕고 기억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오빠의 묘지를 봤지만, 네덜란드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 기억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리아는 전쟁은 희생만 가져오기 때문에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금 한국 사람이 자유롭고 발전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데 헨드릭과 그의 전우들이 이에 기여한 점을 알아달라고 했다. 그는 헨드릭에게 하고 싶은 말을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만약에 오빠가 다시 집에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분명 다정한 아버지가 됐을 겁니다. 오빠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을 남매로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나의 오빠라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덜란드=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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