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례 씨 마을 밖서 근무하다
- 서비스 원하는 이웃주민 맡아
- 전삼순 어르신 “자매처럼 편안”
- 수시로 집 찾아 체크, 만족도 커
- 대부분 출퇴근 요양보호사 이용
- 이웃 서로서로 돌봄체계 구축땐
- 노인일자리·복지 문제 동시 해결
“옳지 옳지, 그렇게 하이소. 조금 더 손가락 펴고. 하나 둘 셋,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이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이번엔 손가락 방향을 바꿔 해보이소. 저 따라서 하면 됩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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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물만골의 전삼순(왼쪽) 어르신이 집에서 김선례 요양보호사의 구령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이는 인지 훈련을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
지난달 28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물만골의 전삼순(78) 어르신 집에서 김선례(63) 요양보호사가 구령을 붙여 가면서 전 어르신의 손가락 운동을 돕고 있었다. 김 보호사의 시범에 따라 전 어르신이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반 박자가 느렸다. 취재진을 의식한 듯 전 어르신은 “기자 양반, 나이 들어 봐라. 손가락 발가락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지. 그래도 우리 보호사 덕분에 체조도 하고 내가 보기 보다 건강하데이. 신기하게 쳐다보지 마소”라고 웃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내내 ‘깔깔깔’ 수다를 떨면서 틈틈이 손가락 운동부터 앉았다 일어나기까지 신체 활동을 같이했다. 자매 같아 보이는 이들은 물만골 이웃사촌이었다.
물만골 주민인 김 보호사는 3년 전 코로나19 창궐과 함께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던 김 보호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영업에 타격을 입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요양보호 기관에서 근무하게 된 김 보호사는 “마을에서 내려가기 위해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중 동네 어르신들을 보고 문득 ‘내가 사는 물만골에도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 많은데 뭐하러 동네 밑에까지 내려가서 일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퇴근하면서 만난 이웃 주민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때마침 전 어르신이 요양보호사를 찾고 있다고 해서 연결이 됐다”고 말했다.
전 어르신도 심장 수술 이후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자 서울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동생의 강권으로 재가(방문) 요양보호 서비스를 받으려던 참이었다. 전 어르신은 “수술 받고 나니까 신경이 둔해져서 그런지 손가락도 잘 안 펴진다. 30년 넘게 집에서 쪼그려 앉아 그물 만드는 일을 해서 그런가, 허리 협착증도 도져서 혼자서는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어렵더라”며 “그런데 어떤 요양보호사가 올지도 모르고 나이 들어서 힘도 없는데 아무나 오면 불안하고 불편하고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다”고 전했다. 하지만 마을에서 동생 같이 보던 김 보호사의 ‘등장’에 전 어르신은 반색했다. 전 어르신은 “우리 동네 사람 아니가. 내 사정, 니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사는 주민이라니 마음이 얼마나 놓이겠노”라며 “모르긴 해도 내 또래 이 동네 할매들이 우리 요양보호사를 보면 내 엄청 부러워할 거다. 막내 동생 같은 착한 보호사, 그것도 같은 동네에 사는 보호사 못 만날 거다”고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 어르신과 김 보호사가 같이 생활하는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단 3시간이다. 하지만 김 보호사의 출퇴근 시간과 정해진 업무는 사실상 없다. 김 보호사는 “전 어르신이 협착이 심해 발을 헛디뎌 넘어져 뼈가 부러지면 다시 붓는 게 어렵다고 들었다. 어르신 집 앞은 관리가 제대로 안돼 손잡이도 없고 경사가 가팔라 혹여나 혼자 집 밖을 나오시다 다치시진 않을지 많이 걱정된다”며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수시로 어르신 집을 찾아 도울 일은 없는지 물어보고 있다. 이것도 가까이 사니깐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전 어르신은 “물만골은 오래된 동네라 길이 험하다. 몸이 많이 좋지 않아 혼자 있으면 거동이 불편해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 우리 선례 보호사 덕분에 편하게 병원도 다녀오고 볼일도 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전 어르신과 김 보호사가 만난 지는 6개월도 되지 않았지만 마을에선 이들을 자매라고 부를 정도로 친분이 두터워졌다. “며칠 전에 둘이 병원 간다고 내려가니깐 진짜 자매 같다고 할배 할매들이 이야기 하더라. 내가 선례 보호사 덕분에 마음도 편하고 많이 웃어서 그런가 더 젊어진 것 같다.”(전 어르신) “우리 언니 같은 어르신, 처음보다 웃음이 많아지시고 손가락도 잘 움직이시니 뿌듯하다. 여기서 일을 하는 건지 같이 노는 건지 모를 만큼 편하고 좋아서 마음 같아선 요양보호 일을 하는 내내 여기서 함께 하고 싶다.”(김 보호사)
김 보호사는 주민이 동네에서 이웃 주민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복지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물만골에는 10명 안팎의 어르신이 재가(방문) 요양보호를 받고 있는데, 전 어르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을 밖에서 출퇴근을 하는 요양보호사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보호사는 “우리 같이 60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데, 한 동네 살면서 동네 어르신들 돌보면 우리는 동네에서 일하면서 월급 받아 좋고, 어르신들은 요양보호사가 동네 사람이라 편해서 좋을 거다. 특히 우리 마을은 공동체가 있을 정도로 주민 간 유대관계가 끈끈한 곳이어서 서로서로를 보호하고 돌보는 일을 하기에 더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