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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19> 질긴 롬, 깔린 롬, 불쌍한 롬

  •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   입력 : 2023-06-19 19:18:0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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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등에서 촬영된 미국 서부영화를 마카로니 웨스턴이나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부른다. 그 중 영화 음악이 백미 압권 걸작인 ‘석양의 무법자’ 영어 제목은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그런데 질긴 롬 깔린 롬 불쌍한 롬도 있으니….

질긴 롬은 기본으로 깔린 롬처럼 불쌍한 롬한테도
①질긴 롬(Rome)은 우리말로 로마다. 로물루스(BC 771~717)라는 초대 왕 이름이 어원이다. 신화와 역사가 혼재된 출생 사연이 기구하여 늑대 젖을 먹고 자란 그는 BC 753년 로마를 건국한다. 가장 오랫동안 인류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종족을 딱 하나 꼽으라면 지금의 로마시 인근 라티움 평원에 살던 초기의 원시 라틴족이다. 일곱 명의 왕이 차례로 다스리던 로마 왕정은 BC 509년 로마 공화정이 된다.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제정의 초대 황제로 등극한 BC 27년까지 500여 년 동안 로마 공화정에서 원로원 귀족들은 제 할 일을 했다. 국가 인프라를 다지며 평민들 민생을 살폈다. 평민들도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권익을 확충시켜 갔다. 로마 공화정을 뜻하는 라틴어 SPQR(Senatus Populusque Romanus)은 로마 원로원과 평민이란 뜻이다. 이름처럼 평민들의 정치적 힘이 컸다. 카이사르로도 불리는 시저는 SPQR에서 평민파를 옹호하는 최고 권력자였다. 황제를 뜻하는 차르나 카이저의 어원은 정작 황제가 아니었던 시저(Julius Caesar BC 100~44)다. 로마인 이야기 최고 유명 인물인 그는 북쪽 갈리아를 정복하고 바다 건너 브리튼까지 침공하면서 로마제국 기반을 다졌다. 이후 로마는 힘에 의한 평화(Pax Romana)를 이루지만 무너지고 만다. 476년 서로마 멸망이다. 1453년 동로마 멸망 때까지 무려 천년을 더 갔다. 그런 와중에 800년 서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족 후예가 로마 교황으로부터 서로마제국 황제 왕관을 받는다. 962년엔 로마를 정복한 게르만족 독일 왕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다. 게르만족 정복자가 정복지 로마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세웠을 정도로 로마는 동경 대상 그 자체였다. 신성하지도 않았고 로마도 아니었고 제국도 아니었던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에 의해 1806년 무너진다. BC 743년부터 1806년까지 무려 2500년 넘게 이어진 질긴 로마다.

②깔린 롬(ROM)은 컴퓨터 기본입출력체제(BIOS)인 롬(Read Only Memory)이다. 서양 문화의 기반은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을 수용하여 발전한 질긴 로마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러니 질긴 롬과 깔린 롬은 어째 맥락이 비슷하다. 롬(ROM)이 깔려야 컴퓨터가 알아서 작동하듯이 롬(Rome)을 알아야 서양 문화 전반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③불쌍한 롬(Rom)은 롬족이다. 주로 유랑하면서 사는 롬인으로 박해받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집시(Gypsy)는 멸칭이라서 로마니(Romani)라 불리길 원한다. 그들도 로마를 동경해서 로마니를 자기네 종족명으로 정했을까? 로마니가 많이 사는 동유럽 국가들 중 루마니아(Romania)도 로마를 동경하여 국가명으로 삼았겠다. 그러니 로마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금이야 이탈리아 수도로 쪼그라졌지만 지대(至大)한 막대(莫大)한 질긴 로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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