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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벌 떨던 참전 첫날밤…텐트에 불발탄 떨어져 난 살았죠”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4> 뉴질랜드 고든 매킨타이어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05-29 20:15:54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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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진학하고 6·25 자원 입대
- 수송선 좌초 한국행부터 험난
- 22개월 전투 속에서 잇단 기적
- 패혈증 죽을 고비 넘기고 귀국

- 절친한 전우 죽음 힘들었지만
- 한국의 공산화 막았기에 뿌듯
- 지금도 기억하는 아리랑 선율
- 백파이프 불며 안작데이 추모

“전쟁터에서 보냈던 첫날밤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처음 겪는 상황과 감정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겁먹었던 것 같네요. 이날 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모여 있는 지휘 텐트에 포탄이 하나 떨어졌어요. 다행히 불발탄이었습니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갔지만, 그게 터졌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뉴질랜드 북섬의 남쪽에 있는 피더스톤의 한 농장. 백발이 성성한 고든 매킨타이어(92)가 덤덤한 표정으로 72년 전 20살 때 한국전쟁에서의 첫날밤 이야기를 꺼냈다.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그가 뉴질랜드로 무사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잇달아 일어난 기적 때문이다. “집에 올 때 좀 다치기도 했고 불편함도 있었어요. 어찌 됐든 다시 돌아왔고 지금까지 삶은 기적이에요. 아마 한국전쟁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의 삶도 없을 수도 있어요.”
뉴질랜드 참전용사 고든 매킨타이어가 한국전쟁에서 활약하던 당시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고든 매킨타이어가 인터뷰하는 모습. 사진 본인 제공·김태훈 PD
■기적의 연속

그는 어릴 적부터 제2차세계대전에 자원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연스레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해군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던 삼촌의 추천도 있었다. 사관생도로 지내면서 기초적인 군사훈련뿐만 아니라 공군훈련도 함께 받았다. 20살이 된 그는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전쟁에 자원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모험심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반공산주의자 때문이기도 해요.”

고든 매킨타이어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탔던 군 수송선 ‘워히니’. 김태훈 PD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가는 길부터 죽을 고비를 맞았다. 그는 1951년 8월 2일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570명의 전우와 함께 한국으로 가는 뉴질랜드 군 수송선 ‘워히니’에 탑승했다. 같은 달 15일 오전 5시40분 그가 탄 배는 아라푸라해에 있는 인도네시아의 마셀라 섬 인근에 좌초했다. 암초가 배의 머리부터 중간까지 파고들어 배가 완전히 부서졌다. 천만다행으로 이 사고로 숨진 사람은 없었다.

“해가 뜰 때쯤이었는데 자다가 군번줄이 목에 감겨서 깼어요. 갑자기 ‘쾅’하고 배가 부딪히면서 쓰러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밖에 섬의 실루엣이 보였죠. 이 새벽에 어떻게 배가 섬에 부딪힐까 생각했습니다. 배는 항해를 못 할 만큼 망가져 있었죠.”

그는 인근을 지나던 유조선에 구조돼 남쪽으로 480㎞ 정도 떨어진 호주 다윈으로 이송됐다. 이후 항공편으로 일본에 갔고, 같은 해 10월 부산에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 땅을 밟은 그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이동했다. 또 한강을 넘어 임진강 일선으로 향했다.

“저녁에 임진강 인근의 포트 조지에 도착했는데 계속 포탄이 떨어졌어요. 어둑한데 곳곳에서 포탄이 터지면서 빛이 번쩍했습니다. 저는 영국군이 있는 곳으로 배치받았고, 그곳에서 한국전쟁의 첫날밤을 맞이했습니다.”

첫날밤 포격을 받았지만 불발탄이어서 목숨을 구한 그는 유엔군에 소속된 영국군의 박격포 부대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전기선이나 통신선 등을 관리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이후 22개월간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렀다. 생명의 위협은 뜻밖의 상황에서 또다시 찾아왔다.

1953년 봄 정전협정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는 전우들과 함께 논밭에서 럭비를 즐기고 있었다. 당시 얕은 상처를 입었는데, 이게 갑자기 패혈증이 돼버렸다. 순식간에 일어서기도 힘든 상태가 됐다. 몇 시간 내 병원에 가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했다.

“처음엔 인도군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치료받았습니다. 이후 일본으로 이동해 치료를 마쳤죠. 한국에서 22개월이란 복무 기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었고,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그는 1953년 4월 뉴질랜드로 귀국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

고든 맥킨타이어가 한국전쟁 때 배운 아리랑을 백파이프로 연주하는 모습.
귀국 후 삶은 순탄치 않았다. 전쟁터에 있다가 민간인으로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술을 많이 먹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악재는 겹쳤다. 함께 했던 전우 론 리드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리드는 그가 처음 영국군에서 복무할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다.

리드는 뉴질랜드 포병으로 참전했다. 청력을 보호하는 장비를 쓰지 않아 리드의 귀는 어두웠다. 더는 근무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리드는 보직을 매킨타이어와 비슷한 포 신호수로 바꿨다. 운전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성격이 좋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친구였는데….”

리드는 매킨타이어가 뉴질랜드로 돌아간 뒤에도 전쟁터에 남았다. 1953년 5월 리드는 355고지(경기 연천) 인근에서 운전하고 있었다. 적군이 있을지 몰라 빠르게 달렸다. 그때 갑자기 부옇게 낀 먼지 속에서 중공군이 나타났다. 중공군의 포탄에 당시 차에 타고 있던 모두가 전사했다. 리드는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2010년 4월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유엔기념공원에 갔는데, 리드의 묘를 한 번에 찾았습니다. 그렇게 묘지가 많은데, 어떻게 딱 한 번에 리드 묘를 찾았는지 신기합니다.” 이어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전우들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정말 잘했습니다!(Bloody good job!)”며 간단하고 짧은 메시지를 전했다.

시간이 흘러 일상에 적응한 매킨타이어는 결혼하고 가정도 꾸렸다. 가족을 위해 전기 사업, 부조종사, 선장 등 여러 일을 했다. 이제는 모든 일에서 은퇴하고 피더스톤에 정착해 자녀들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노병은 살아있다

그는 한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봤던 수많은 교회의 십자가를 말했다. “전쟁에 참전해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십자가를 보세요. 북한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자유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이어 “개인적으로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것은 태평양 연안국을 지켜낸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공산화됐으면 그다음은 일본으로 이어져 나갈 것이었죠. 그럼, 결국 러시아의 식민지가 됐을 겁니다.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잃었지만, 이제는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많은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항상 고맙다고 하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았습니다”고 덧붙였다.

고령에 오랜 시간 인터뷰로 지쳤지만, 매킨타이어는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위해 자신이 즐겨 부르는 악기인 ‘백파이프’를 꺼냈다. 그가 한국전쟁 때 배운 ‘아리랑’을 연주했다. 익숙한 아리랑의 음은 아니었지만, 아직 건재한 노병의 기개를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안작 데이(ANZAC Day)가 되면 레이크페리 지역에서 열리는 추모 행사에 참석해 백파이프를 부는 재능 기부를 해왔습니다. 올해도 아마 별일 없으면 갈 겁니다. 행사도 중요하지만, 저의 개인적 기쁨이 큽니다.”

뉴질랜드 피더스톤=김진룡 기자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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