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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방 잡는데 한 달…출근도장 찍었더니 냉대가 환영으로

슬기로운 물만골 탐구생활 <1> 마을 정착기

  •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 최혁규 기자
  •  |   입력 : 2023-05-23 19:58:27
  •  |   본지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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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내려 초입 걸어 들어가니
- 낡은 슬레이트 지붕 주택 행렬
- 70년대 흑백영화 나올 법한 전경
- 드라이브 코스 황령산로와 괴리

- 거처 구해 취재하겠다는 기자에
- 주민 “우릴 이용하는거냐” 냉랭
- 26일 만에 겨우 빈집 얻어 생활

- 삭막하던 마을, 축제에 웃음꽃
- 기자 셋 청소 동참 ‘주민 속으로’

물만골(부산 연제구 연산동)에서 고갯길을 올라 황령산 정상에 서면 멀리 해운대·영도부터 금정산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취재진은 지난달 3일 물만골 정착을 시도했다. 부산시청 맞은편에서 연제1번 마을버스에 올랐다.
물이 많은 골짜기라고 해서 이름 붙은 물만골. 마을은 1970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됐으며 현재 349세대, 529명(주민등록 기준)이 모여 사는 부산의 대표적 빈민촌이다. 사진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할머니가 지나는 모습. 김영훈 기자 hoonkeem@kookje.co.kr
물만골 앞 연산더샵 아파트 정류장에 도착하자 승객은 기자와 70대 어르신 한 명이 전부였다. 물만골에는 3개의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물만골마을 입구역’에 내리자 1970년대 흑백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낡은 슬레이트 주택 행렬은 산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개 짖는 소리가 이방인의 방문을 알리는 듯 했다. 마을회관 문은 잠긴 상태였다. 그늘진 아랫마을과는 달리 마을회관 주변은 햇볕이 잘 들었다. 현대식으로 개량된 집도 많았다. 아랫마을보다 윗마을에 월셋방을 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골목길을 누볐다. 70대 할머니 두 분에게 인사를 건넸으나 ‘힐끔’ 보시고 지나치신다. 누구에게 말을 붙여도 무시당하다 풍경 구경만 하고 하산하기를 사흘째. 주석수 연제구청장에게 “집을 구하기는커녕 물만골 역사와 삶에 대해 한 마디도 듣기 힘들다”고 푸념했더니 구세주를 소개해 줬다. 허연호(61) 연산2동 1통장이었다.

■18일 만에 만난 ‘마을 지도자’

지난 20일 물만골 마을에서 열린 ‘제2회 물만골 행복마을 축제’에서 박순애 공동체 운영위원장의 손녀 박예빈 양이 무대에 오르자 주민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허 통장 덕에 물만골을 찾은 지 일주일 만에 원주민들과의 첫 대화가 ‘시도’됐다. “한두 달 생활할 공간을 찾고 있어요.” “방 한 칸을 임대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공인중개사들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그 쪽(물만골)은 매매든 임대든 중개 자체가 거의 없다”고 했다.

몇 차례 마을을 더 찾아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러다 물만골을 통해 빈민의 삶을 조망해보자는 프로젝트 취지가 통째 흔들리겠다”는 위기감이 들 무렵, 또 다른 구세주가 등장했다. 물만골공동체 박순애(71) 운영위원장과 박호생(71) 노인회장·민영임(65) 부녀회장을 한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취재 시작일로부터 ‘마을 지도자’를 만나기까지 18일이 걸렸다.

반가운 마음에 명함을 건네는 자리에서도 ‘물만골 지도자’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리 마을에 온 이유가 뭐냐”는 냉랭한 인사와 함께 “이번에는 원하는 게 뭔가. 그동안 신문사나 방송사가 우리 마을을 그렇게 많이 다녀갔는데 달라진 게 없다. 이번에도 우리를 이용하는 거냐”는 싸늘한 반응에 식은땀이 솟았다. ‘마을에 상주하면서 취재하려 한다’면서 프로젝트 취지를 구구절절 설명해도 그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열심히 하세요’라는 고마운 답변도 있었지만 취재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은 끝내 얻지 못했다.

다시 물만골을 찾은 지 일주일이 지날 무렵. 어렵게 박 운영위원장과의 2차 만남이 이뤄졌다. “번거롭게 해 송구하다”는 기자의 인사에 박 위원장과 노인회장·부녀회장은 자신들의 명함을 꺼냈다.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취재 의도를 설명했다.

■4주 만에 구한 ‘보금자리’

국제신문 취재진이 약 50일 동안 생활할 물만골 ‘보금자리’ 건물.
“물만골은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부산과는 괴리된 특이한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가난을 동정하거나 원주민 생활상을 그저 흥밋거리로 다루려고 찾은 것은 아닙니다. 물만골에 마을이 생긴 이래 누가 살았고, 지금은 누가 어떻게 살고 있고,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물만골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도 함께 다뤄보려 합니다.”

첫 만남 때 기자를 노려보던 노인회장과 운영위원장의 얼굴에 노기가 다소 누그러진 듯 했다. 노인회장이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방을 어떻게 구할 텐가.” 이때다 싶어 “한 두달 생활할 공간인데 어르신들께서 꼭 좀 찾아주십시오. 일주일 넘게 돌아봤는데 월세 구할 엄두가 안 납니다. 개도 많아서 혼자 돌아다니기도 무서워요.” 엄살이 통했는지 노인회장은 “빈 공간이 있는데 거기가 적합할지 모르겠다. 일단 정리를 해보고 방 상태를 통보해 주겠다”고 답했다.

이틀 뒤 방을 한 번 보라는 연락이 왔다. “무조건 계약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계약서를 만들어 달려갔다. 노인회장이 소개한 공간은 넉넉하고 말끔한 방 2칸짜리 집이었다.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려하자 노인회장은 “일단 열쇠부터 받으라”며 기자의 주머니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돈은 필요 없다. 요란스럽지만 않으면 되니 여기서 편하게 일하면 된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취재진은 노인회장에게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시말서를 써야 한다’고 읍소해 반강제로 계약금을 지불했다. 물만골을 찾은 지 26일 만에 보금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대화의 시작

취재진은 지난 8일 월셋방에 입주했다. 짐을 풀고 ‘전입신고’를 하려 나섰으나 오전 내내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동네가 떠나갈 듯한 대형견의 짖는 소리만 가득했다. “많은 주민이 오전 일찍 출근해 오후 3시가 넘어야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온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외출하지 않아 접촉이 쉽지 않을 것”이라던 노인회장의 조언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후 3시가 넘자 외출 채비를 한 어르신들이 골목길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버이날을 맞아 마을에서 생활하는 수녀들이 마을회관에서 짜장면을 대접하는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70대 후반의 할머니가 취재진을 봉사자로 착각한 듯 “내려갈 건데 뭐하러 여기까지 올라왔노”라고 말을 건넸다.

국제신문 기자라고 인사 드리자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기자 양반, 우리 이렇게 사는 거 몰랐나. 젊어서 마을이 신기해 보이제”라고 말문을 열었다. 예상보다 한층 다정다감한 말투에 마음이 놓였다. “아무 것도 없이 집 짓겠다고 여기 올라와서 흙바닥에 거적때기 깔고 하늘에 별 보면서 잤던 게 50년도 더 전이다. 비오면 그냥 맞고 밥 먹고 잠도 잤다. 그때 내가 30살이 안 됐다. 머리에 쌀 한 포대 짊어지고 애 업고도 이 길을 올라왔었는데, 그 시절 비하면 지금 얼마나 좋아졌노. 이제 영감도 죽고 없고 애들은 여기 출신인 거 어디 가서 말도 안 한다. 신문에 나오면 난리나니깐 내한테 뭐 물어보면 곤란하데이. 내려가서 짜장면이나 먹고 가소.” 마을회관까지 천천히 걸어서 10분. “애들이 난리 난다”는 할머니 말씀에 취재진은 말 없이 목례로 배웅해야만 했다.

지난 20일 물만골에서는 4년 만에 행복마을축제가 재개됐다. 마을공동체가 부산시도시재생지원센터로부터 750만 원을 지원받은 덕분에 가능했다. 모처럼 열리는 축제를 앞두고 마을이 들썩였다. 축제 닷새 전인 지난 16일에는 오전 6시30분부터 20여 명이 마을 청소도 했다. 취재진 3명도 일어나자 마자 3시간 동안 쓸고 닦기 행렬에 동참했다. 쓰레기 마대를 짊어지고 옮기는 일은 취재진 몫이었다. 허연호 통장은 “오랜 만에 축제가 열려 이것저것 걱정할 일이 많았는데 고령의 어르신에, 젊은 기자 양반들까지 청소에 동참해주셔서 고맙다. 비록 부족하고, 어렵게 사는 곳이지만 우리 마을이 이렇다. 정겨운 물만골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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