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본부 최인접 지역 ‘길천마을’(기장군 장안읍)의 원전지원금 관련 사업 의혹을 확인하고자 압수수색을 단행(국제신문 지난 12일 온라인 보도)해 온 마을이 뒤숭숭하다. 907가구 1512명이 사는 이 작은 마을은 오랜 시간 원전지원금을 둘러싼 잡음에 시달려 왔다. 사업에 필요한 돈은 한수원 등이 지원하지만, 사업자 선정 등 집행은 전적으로 마을에 맡겨진 이중구조가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이 마을 집행부가 대가를 받고 특정 업체에 원전지원금 관련 사업을 맡겼다는 혐의로 입건 전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12일 마을회관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고리본부 측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마을은 2020년 전후로 마을 내 공터를 화단으로 꾸미는 조경사업을 벌였다. 여기에는 한수원이 마을 사업을 돕는 ‘사업자지원사업비’ 2억 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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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 길천마을이 한수원 고리원전본부의 사업자지원사업비 2억 원을 통해 조성한 화단.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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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길천마을 측이 공사를 수행할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첩보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수원은 매년 공모를 통해 각 마을 주민단체나 위원회로부터 지원 사업을 신청받고, 심의를 거쳐 사업비를 지급한다. 이 지원금은 집행 뒤 한수원이 정산해 적절성을 확인한다. 그러나 어떤 사업자에게 일을 맡길지 등은 관여하지 않는다. 원전지원금 사업은 마을 측에 집행·결산 권한이 있다.
자금 지원과 집행이 이원화되면서 마을 집행부의 의중이 사업을 좌지우지한다. 길천마을 몫의 사업자지원사업비는 한 해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에 육박한다. 소수가 큰돈을 관리하는 탓에, 집행부 수장인 이장 선거는 매번 갈등을 빚었다. 2019년에는 마을 공금으로 운영되던 목욕탕이 이장 후보 간 갈등으로 휴업했고, 지난해 9월에는 현 이장 A 씨가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로 직무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현 이장파 대 옛 이장파’ 구도의 싸움이 계속되면서 마을주민 간 반목도 격화했다. A 이장은 “원전지원금 문제로 여섯 차례 검찰에 불려 다녔지만 압수수색은 한 번도 없었다. 반대편의 근거 없는 이야기로 마을주민에게 망신을 줬다”고 항변했다. 반면 전 집행부 출신 B(60대) 씨는 “비슷한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사안을 분명히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를 향한 감정의 골이 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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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천리 마을회관 전경. 이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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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는 원전 인접(반경 5㎞ 이내) 지역이 1989년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막대한 원전지원금을 받게 된 뒤부터 끊이지 않았다. 돈을 둘러싼 주민 갈등으로 지원금이 지역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2017년 한국재정학회가 발행한 논문 ‘원전 주변지역 지원제도의 경제효과 분석’을 보면, 현행 지원금 제도는 지역 내 총생산 증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연구됐다. 재정 지원이 기초자치단체의 건설 부분 지역총생산을 올려주는 효과만 냈을 뿐, 사업체의 수나 고용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에 ‘돈만 주면 끝’이라는 식의 지원을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주민 C(60대) 씨는 “한수원이 지원·집행을 총괄하면 부정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사업 집행이 마을에 맡겨져 있는 구조로는 막대한 돈을 노리고 손길을 뻗치는 사업자들과 엮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행 법규로는 지원자(한수원)가 사업의 집행까지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