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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극단 운영하다 파산, 평화를 염원하는 학춤명인으로 재기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23> ‘대한민국대한명인회’ 박소산 동래학춤명인

  • 고영삼 동명대 교수
  •  |   입력 : 2023-03-28 18:57:37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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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문화예술 활동가 시절
- 연극보다 아이들에게 더 관심
- 입시·학폭 등 소재로 극단 운영
- 공연 적자 등에 결국 문닫아

- 산행 중 춤으로 일어서자 각오
- 1000일 국토순례하며 전국 공연
- 낙동국악원 김도경 선생 만나
- 동지이자 반려자로 인생 동행
- 구포토속민요 대중 전파 목표


◇ 박소산의 이모작 귀띔

-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하늘이 준 소명에 힘껏 응답하라”


박소산 명인이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서 993번째 평화의 날갯짓으로 학춤을 추고 있다.
경제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시절이다. 잘 산다는 의미가 많은 재산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시절이 이러하니 준비가 부족했던 인생이모작들의 마음은 허허롭다. 하지만 아예 물신주의에 저항하며 건강하게 사는 이도 있다. 민속춤과 공연으로 세상이 처한 문제에 메시지를 전하며 사는 박소산 동래학춤명인도 그러한 사람이다. 구포역 앞 구포광장에서 학춤 공연을 막 끝낸 그를 만나보았다.



-이 행사는 어떤 것인가요?

▶어린이 가장 돕기 ‘동네방네 아라리’ 행사로 오늘은 특히, 튀르키예 지진 참사로 희생당한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한 행사입니다. 동참하는 예술활동가들과 함께 이곳 구포광장에서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후 3시에 공연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공연을 통해 무엇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저는 항상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지금은 예술과 문화가 자본과 매체의 영향력에 심하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시민과 직접 만나 공감하는 공연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올해 59세인 박소산 선생은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을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로부터 이수했고, 대한민국명인회로부터 동래학춤 명인으로 선정된 전통문화 예술가다. 그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번잡한 광장에서 긴 수염에 흰 도포, 양반 갓을 쓰고 자유로우면서도 격조 높은 춤사위를 보였는데, 대화를 해보니 차분하고 논리가 정연했다.



-학춤명인이라면 평생을 학춤에 종사하실 것으로 생각되는데, 젊은 시절 다른 일을 하셨다고요?

▶저는 20대 때 연극배우를 했습니다. 연출도 했고요. 그런데 청소년 연극을 주로 하던 중, 30세 정도에 이르니 연극 자체보다는 청소년에 더 관심이 가더군요. 예를 들어 입시 위주 학업의 문제, 학교폭력의 문제, 게임중독의 문제를 연극을 활용하여 해소하고자 하는 식으로 관심이 이전되더군요. 그래서 이를 본격화하기 위해 1993년에는 전문청소년극단 ‘눈동자’를 결성했죠. 그 과정에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가졌었죠.

-당시 활동이 언론으로부터 조명도 받았더군요. 어떤 식으로 활동하셨나요?

▶전단지와 포스트를 활용해서 청소년들을 모집했죠.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도 넘게 모집된 청소년들과 함께 각종 사회적 쟁점에 대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연극훈련을 시켜 공연을 하는 식으로 활동했죠. 2002년에는 청소년문화공동체 ‘와(WA)’를 설립했고, 2009년에는 예비사회적기업 ‘나다문화사업단’을 등록했고, 2010년에는 남포동에 100석 규모의 용두산소극장도 운영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요즘 학폭이 이슈인데, 보람도 아쉬움도 많았겠어요?

▶네, 보람과 아쉬움이 많았어요. 보람이라면 건강한 청소년 문화를 청소년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죠. 또한 함께 활동한 총 200여 명의 청소년들이 극단 활동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깨어있는 시민으로 성장한 것이에요. 사실 극단에 들어온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거든요. 아쉬움이 있다면 함께 하고픈 청소년들을 모집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졌고, 재정문제를 풀기 어려웠어요. 한번은 부산 KBS 홀에 뮤지컬을 올리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 손해를 보았어요.



이렇게 소산 박태룡은 젊은 시절 알아주는 청소년 극단 지도자였다. 그러나 재정문제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파산상태가 되어버렸고 결국 2016년 들어서 활동을 접게 된다. 그의 나이 52세. 20여 년 동안 혼을 심었던 활동을 접는 충격과 더불어 가정이 파탄 나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렸다. 2차 충격은 엄청난 것인지라 만성피로에 만성대장증후군까지 안았다. 무력감이 극에 달할 때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내려갈 곳 없는 바닥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부산 광복동 거리에서 열린 튀르키예 지진참사 돕기 버스킹 행사에서 액막이타령을 하는 김도경(왼쪽) 대표와 박소산 명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을 다녔습니다. 걷고 걸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위안받는 곳은 산길뿐이었습니다. 1년 넘게 걷고 보니 생각이 정리되더군요. 돈에 넘어졌으니 악착같이 돈을 벌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저의 일이 아니었어요. 결론은 춤이었어요. 춤출 때 제일 행복했었으니 다시 춤으로 일어서자고 결심했죠. 그리곤 저를 위하기보다는 공동체의 문제에 저를 더 사용하자는 각오를 했죠.

-1000일 전국 공연은 그러한 생각과 연결된 것이죠?

▶제게 인생이란 하늘이 제게 주신 역할을 찾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가지려고 하기보다 더 내놓자고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1000일 국토 순례가 구상되더군요. 그래서 가장 먼저 2018년 3월 1일 서울탑골공원에서 학춤 날갯짓을 펼쳤습니다. 주제는 생명과 평화였습니다. 욕망을 다 해 살던 인류는 이제 생명과 평화를 위협받고 있죠. 저는 그날 후로 눈비를 맞으면서도 강원 충청 전라 경상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습니다. 2020년 11월 24일 임진각 공연이 1000일 마지막이었습니다. 중간에 ‘생명평화결사단’,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과 함께 하기도 했죠.



박소산은 이렇게 ‘술 한잔 사주지 않는 인생’을 원망하기보다는 인생을 다독여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쓰러진 바닥에서 쉬이 일어서려고 하지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이를 안고 더 뒹굴었다.



-그래서 어떤 결론을 찾으셨나요?

▶치열히 성찰하고 명상했죠. 50대 초반이었고 늦지 않았습니다. 구도자의 마음으로 학춤을 추었습니다.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수용하는 재탄생 과정이었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춤꾼이 되자는 더 강고한 각오를 했어요. 고마운 것은 이때 김도경 선생을 만난 것입니다. 김도경 선생은 낙동국악예술원을 경영하시며 구포의 전통민요를 발굴·보급하고 계신 신념 굳은 분이신데 저와 합이 잘 맞았어요. 그분의 음(소리)과 저의 양(움직임)이 공명을 일으켜 생명의 파동을 만들더군요. 하늘은 저를 파탄상태에 떨어뜨린 후 이 세상에 난 소명을 알게 해 주시고 또 김도경 선생을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확고한 동지이며 반려자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활동하시나요?

▶이제 노래와 춤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죠. 비록 그동안 코로나로 공연이 힘들었지만 낙동국악예술원 기획 연출가, 김해민예총 연출위원장, 부산민예총 이사, 경남민예총 감사 등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가니 공연초청이 많아지네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구포는 전통민요의 보고입니다. 더 노력해 구포토속민요를 다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날갯짓-학춤’을 통해 생명 평화의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릴 것입니다. 우리 민족 5000년의 역사를 5000명의 날갯짓으로 표현하는 그랜드 공연을 구상 중입니다. 소리와 움직임, 몸살림 + 맘살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뫔짓 연구소’를 설립 중입니다. 돈과 매체에 현혹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생하는 공동체문화 모델을 꼭 만들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이 있다. 박소산의 결은 시대의 정향과는 조금 다른 쪽이다. 자본과의 야합을 기뻐하고 개인의 셈법을 우선시하는 이 가벼운 시대에 박소산 명인은 건강한 일상의 문예를 주창한다. 공동체의 앞날을 더 고민한다. 코로나 전염병의 그 호된 매를 맞고도 욕망을 배가하며 사는 인류가 볼 때 그는 이단자일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다 하며 불안 불행감이 난무하는 ‘빅퀘스천의 시대’, 이 시대엔 그의 춤사위가 오히려 궁극의 해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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