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이면 일본 후쿠시마원전 대참사가 발생한 지 12주년이 된다.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후쿠시마 사고 원자로의 폐로는커녕 원전오염수 해양방출문제가 국제 분쟁으로 번지는 상황이다. 피난 갔던 원전 주변 주민 가운데 1만5000여 명이 아직도 고향을 잃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일본산 농수산물에 대한 세계적인 불신이 아직 있고 수입도 규제하고 있다. 후쿠시마원전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내에 있는 오염수 저장 탱크. 도쿄전력 제공

필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그날 일본 도쿄 출장을 갔다가 동일본대지진을 온몸으로 느꼈다. 오전에 나리타공항에 도착해 도쿄 신주쿠의 한 호텔에 짐을 풀고 세타가야구 주택가의 ‘친환경 놀이터’를 둘러보러 갔는데 오후 2시46분 도쿄 주택가 한복판에서 지진을 맞았다. 후쿠시마와 200km나 떨어진 도쿄에서 그날 느낀 진도가 5강(强) 정도이니 우리나라 경주 지진과 비슷했다. 이를 계기로 후쿠시마를 고향으로 둔 도쿄 요코하마 등 일본 수도권 시민이 만든 탈핵시민모임, 탈핵학자들과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갖게 됐고, 그 뒤 2015년 고리1호기폐쇄범시민운동본부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당시 여야 없이 연대해 노력한 결과 그해 6월 박근혜 정부로부터 고리1호기 영구정지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함께했다.

그렇기에 2023년 3·11을 맞는 심정은 찹찹하다. 윤석열 정부의 고리2호기수명연장 및 원전 입지 내 임시건식저장시설 설치 강행으로 시민은 자다 홍두깨 격으로 앞으로 10년간 설계수명을 다한 노후원전인 고리2~4호기를 10년씩 더 연장하는 ‘원전폭주정책’에 놓여 있다. 지역 시민사회 140개 단체가 뜻을 모아 지난달 21일 시청 앞 광장에서 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 범시민운동본부 발족식을 열었다. ‘고리1호기폐쇄범시민운동본부의 시즌2’가 시작된 셈이다. 후쿠시마원전 대참사에 제대로 된 인식이 있다면 윤 정부가 함부로 고리2호기 수명을 연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억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망각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에는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앞에서 영도주민과 영도 청소년으로 구성된 월간영도기후행동이 104주년 삼일절을 기념하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환경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한겨레신문(3월 2일)은 단독기사로 ‘고리·월성 16개 원전 설계 때 지진 우려 단층 고려 안했다’는 주제로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일어날 수 있는 활성단층(설계고려단층) 5개가 부산·울산의 고리원전과 경북 경주의 월성원전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정부 용역 단층조사를 통해 뒤늦게 확인됐다. 이들 활성단층은 과거 원전 건설을 위한 지질 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원전 설계 때 고려되지 않았다. 월성과 고리에는 원전 14기가 건설돼 있고, 현재 2기가 건설 중이어서 내진 안전성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과 곧이어 들이닥친 거대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수소 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가동 중이던 원자로의 핵분열은 자동으로 긴급 제어됐지만, 전력 공급 중단으로 냉각시스템이 마비돼 핵연료봉이 고열에 노출,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방사능물질이 묻은 수증기가 외부로 유출됐다. 후쿠시마원전은 폐로하는 데만 최소한 4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신문(2016년 3월 6일)은 지진관련사 가운데 원전사고 영향으로 숨진 ‘원전관련사’는 적어도 1368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종래의 원전사고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 세계 학계에 알려진 후쿠시마원전의 5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진과 쓰나미로 일어난 대형사고라는 사실이다. 도쿄대 명예교수인 이시하라 가쓰히코가 경고를 했던 ‘원전지진재해’가 최초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 사고를 일으킨 원자로의 수가 복수였다.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나 체르노빌 원전사고와는 달리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일으킨 원자로는 3개였다. 셋째, 사고 수습에 매우 긴 기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는 사태 수습까지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고, 체르노빌 원전사고도 사고 후 약 2주 만에 수습됐고 7개월 후에는 석관으로 봉쇄를 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장기간에 걸쳐 원전이 제어 불능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인류 최초의 경험이다. 넷째, 피해지역의 광역성이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는 연안지역으로 한정된 반면 방사능오염은 일본 각지로 확산됐다. 다섯째, 오염의 불가역성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주민 전원이 단기간에 도망치듯 피난해 장기간에 걸쳐 되돌아갈 수 없는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 장기간의 공동체 파괴와 생활환경 회복 불능의 불가역성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르면 올 봄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해양수산부가 해양 및 수산물 방사능 조사현장을 최근 공개했다. 해양환경공단 직원이 지난달 27일 부산 앞 바다에서 해수 방사능검사 시료채취장비인 로제트 샘플러(Rosette sampler)를 살펴보고 있다. 해수부 제공

그럼 사고 당시로 돌아가 보자. 후쿠시마원전사고 때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어떠했을까? 일본 정부사고조사위원회가 공표한 후쿠시마원전사고조사위원회의 ‘중간보고(2011년 12월 26일)’ 및 ‘최종보고(2012년 7월 23일)’의 요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 원인은 직접적으로는 지진 쓰나미라는 자연현상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아주 심각해진 배경에는 사전의 사고방지대책, 방재대책, 사고 발생 후 발전소에서의 현장 대처, 발전소 밖에서의 피해 확대 방지책에 대해 여러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있었다. 예를 들면 ①도쿄전력과 원자력안전·보안원 등의 사전 중대사고대책이 미비했던 점 ②쓰나미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해 쓰나미대책이 미비했던 점 ③원자력재해가 복합재해로서 발생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그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점 ④대량의 방사성물질이 발전소 외부로 흩어져 날아갈 것을 예상한 방재대책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 ⑤사고 발생 직후 도쿄전력의 현장 대처가 서툴렀다는 점 ⑥정부와 지자체의 발전소 외부의 피해 확대 방지 등에 결함이 있었던 점 ⑦정부의 위기관리 태세에 약점이 있었다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도 도쿄전력을 포함한 전력사업자나 국가가 일본의 원전에서는 노심용융(爐心溶融, melt down)과 같은 심각한 중대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전신화에 사로잡혀 있던 탓에, 위기가 일어날 수 있는 현실로 보지 않게 됐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일본의 정부사고조사위는 1년 남짓 조사·검증활동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사고 원인에 관해 사실관계의 큰 틀에서는 대부분 해명·검증을 했다. 그러나 원자로 주변의 방사선량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원자로시설 안에 들어가서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 또한 시간·상황적 제약 하에서의 활동이었기 때문에 ①주요시설(원자로)의 손상이 발생했던 장소 ②그 정도, 시간적 경위를 비롯한 피해상황의 상세 ③방사성물질의 누출 경위 ④주민 등의 건강에 끼친 영향 ⑤농축수산물 등과 공기 토양 수질 등의 오염실태 등에 관해서는 충분히 해명할 수 없었다는 점을 과제로 남겼다.

일본 정부사고조사위원회가 지적한 원전사고 발생 이후 일본 정부와 자자체의 대응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에 기초한 긴급 시 대응이 전혀 기능을 하지 않았다. 1999년 도카이(東海)촌 JCO임계사고(1999년 9월 핵연료재처리회사인 JCO에서 임계초과상태로 작업원 2명 사망)를 계기로 그해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이 제정돼 원자력재해 발생 시 현지에 현지대책본부를 설치, 총리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현지 대책본부장을 중심으로 대응한다는 틀이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라 ‘원자력재해대책 매뉴얼’도 현지대책본부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7시3분에 일본 정부는 원자력 긴급사태 선언과 동시에 간 나오토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원자력재해대책본부를 총리관저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후쿠시마현 거점의 오프사이트센터의 통신설비 대부분이 지진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시설도 방사선 대비가 없었기에 이 센터의 시설 자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현지대책본부는 15일까지는 후쿠시마현청으로 이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현지대책본부는 초동단계에서 긴급 시 사령센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원재법은 아주 잘 짜여진 것처럼 보였지만 JCO사고라는 아주 국지적인 사고를 전제로 한 법률이어서 대규모 복합재해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전혀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둘째, 원전 규제 기관이 기능부전 상태에 있었다. 원자력안전·보안원은 발전용 원자력시설에 관한 안전 규제를 담담하고 실용원자로 등의 원자력재해 발생 시에는 원자력재해본부 사무국으로서 재해 대응의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후 긴급사태 대응에서 ①정보수집기능을 적절하게 발휘할 수 없었고 총리관저와 관계 부처가 요구한 필요한 정보를 적시에 적절하게 제공할 수 없었다는 점 ②총리관저에 대해서 원자력재해의 사태 진전과 필요한 대책, 원재법 등의 법령 내용에 대해서 설명·조언을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나, 그 역할을 다 할 수 없었다는 점 ③SPEEDI(신속 방사능영향예측네트워크시스템)정보를 입수하였지만 방출원(放出源) 정보를 얻지 못할 경우 피난에 활용할 수 없다는 해석과 이것을 유효하게 활용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④현지대책본부로의 위임 절차의 미집행 등 원재본부 사무국으로서 해야만 하는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등 많은 미비점을 노출했다. 보안원의 문제점을 상징하는 것이 오프사이트센터의 방사선대책 미비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프사이트센터는 사고 현장에서 약 5km 떨어진 오쿠마정에 설치되었지만 이 센터는 방사성물질을 차단할 공기정화필터가 갖춰져 있지 않았기에 3월 14일 3호기 건물 폭발 후에 상승한 선량 때문에 관계자들이 이 센터에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현장에 파견된 보안검사관·보안원 직원 8명 중 5명이 현지대책본부의 지시를 받지 않은 채 14일 오후 5시경 사고현장에서 탈출했다. 도쿄전력 사원이나 하청 회사 종업원까지 결사적으로 대처 활동을 벌이던 와중에 무책임한 행동을 보인 것이다.

셋째, 정보제공·홍보에도 문제점이 많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과 관련한 홍보는 애초 ①내각관방장관 ②원자력안전·보안원 ③현지대책본부 ④후쿠시마현 ⑤도쿄전력 이상 5자가 각각 독자적으로 하고 있었다. 3월 12일 이후엔 사전에 총리관저의 양해를 얻어 했고, 4월 25일부터는 정부와 도쿄전력의 홍보가 일원화돼 종합본부가 언론 발표를 하게 됐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관한 정보 제공은 신속·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내각 관방장관이 “인체에 즉시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등 알아듣기 힘든 설명이 반복돼 국민의 불안을 고조시켰다. ‘즉시’라는 표현은 ‘현재는 영향이 없지만 장래에는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석될 여지를 남긴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넷째, 지자체의 긴급 시 대응이 미비했고 정보 부족으로 인한 대혼란이 일어났다. 지자체는 국가의 권고·조언 하에 원자력재해의 방지, 긴급사태 대응, 사후대책 등을 구체적으로 실시하는 행정기관이어야 하지만 정부의 피난 지시는 피난대상구역이 된 모든 지자체에 신속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구체성이 빠진 것뿐이었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는 원전사고 상황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이상의 정보를 얻지 못한 채 각자도생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 현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다섯째, 피난구역에 남겨진 후타바병원 입원환자의 피난·구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 가까운 오쿠마정의 후타바병원에서는 3월 12일 이른 아침 피난 지시에 따라 자력보행이 가능한 환자 209명과 병원장을 제외한 병원 관계자가 준비된 대형버스를 타고 피난에 나섰다. 이날 후타바병원에서는 중환자를 비롯해 약 130명의 환자와 원장이, 또한 같은 병원 계열의 간병노인요양시설에 98명의 입소자와 2명의 시설직원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안 재해대책본부는 자위대 등에 구조요청을 해 상당수 입소자 등을 구조했으나 이송 과정에서 20명이 사망했다. 입원환자 파악이 안 돼 있었고, 중환자 정보의 공유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섯째, 지자체에 의한 요드제의 배포를 둘러싸고 후쿠시마현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미하루정은 3월 14일 심야 주민 피폭이 예상되었기에 요드제의 배포·복용 지시를 결정해 15일 오후 1시경, 방재무선으로 주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지역 약제사의 입회 하에 대상자의 약 95%에게 요드제를 배포했다. 문제는 이를 안 후쿠시마현 보건복지부 직원이 이날 저녁 미하루정에 국가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배포 중지 및 회수 지시를 내렸으나 미하루정은 이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국가 지시가 없었다는 이유로 미하루정에 회수 지시를 내린 현의 판단이야말로 부적절한 것이었다.

이처럼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당시 일본은 피해의 확대를 막는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가 정보 부족과 혼란 속에 피해를 막는 데 실패를 거듭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 같은 것도 없는 상태이다.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전신화에 매몰돼 형식적으로 만들어놓은 법이 실제 사고 발생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상황이 불과 12년 전 원전선진국을 자랑하던 일본에서 일어났다. 과연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대비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