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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정 중 '고준위 특별법' 폐기…방폐장 공론화 절실

김해창 교수의 원전 정치경제학<4>

  •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  |   입력 : 2023-02-11 09: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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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지난 7일 부산 고리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보관을 위한 건식저장시설 건설안 의결을 강행했다. 이에 부산지역 시민단체는 오는 21일 범시민운동본부의 출범을 예고했다.

9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탈핵부산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고리핵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 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확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한수원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제신문DB
지난 8일 부산고리2호기수명연장·핵폐기장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준비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시민 동의 없는 한수원의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 결정, 즉각 철회하라”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한수원이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중간저장시설이 건설되면 사용후핵연료를 지체 없이 반출하는 조건 하에 한시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강조하지만 고리원전의 영구핵폐기장 수순에 지나지 않는다”며 “한수원의 건식저장시설 강행은 원전업계만 대변하는 윤석열 정부의 ‘원전 폭주정책’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 기장군의회 의원들이 이날 한수원 이사회가 열린 회의장 앞에서 지역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인 건식저장시설 건설 추진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였고, 기장군수도 투명한 정보 공개와 주민 동의 없는 건식저장시설 건설은 원천적으로 반대하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 제정된 후에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범시민운동본부 준비위는 정부와 한수원, 부산시에 다음 사항을 요구했다. △한수원은 고리원전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안 의결을 즉각 철회하라 △정부는 중간저장시설 계획조차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영구핵폐기장이 될 건식저장시설 추진을 중단하고, 고준위방폐장 건설 로드맵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라 △정부는 고준위방폐장 마련 없이 추진하는 고리2~4호기 수명 연장을 즉각 중지하라 △부산시는 고리원전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및 고리원전 수명 연장 철회를 위한 시의 의견을 정부와 한수원에 제출하라 △국회 입법에 원전수명 연장과 건식저장시설 추진 등에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주민의 주민투표 실시를 반드시 포함시켜라.

이들은 오는 21일 오후 2시 시청 앞 광장에서 ‘고리2호기수명 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의 깃발을 올리며 시민의 뜻과 힘을 모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모든 활동을 적극 펼칠 것임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탈핵부산시민연대도 지난 9일 오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수원의 건식저장시설 강행을 규탄했다. 시민연대는 “한수원과 산업부는 중간저장 및 영구저장시설이 건설되면 건식 저장시설의 사용후핵연료를 반출한다고 하지만, 영구처분장 건설이 40년 동안 시도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에 건식저장시설이 영구화될 수밖에 없고, 반출하겠다는 것은 거짓이거나 시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연대는 “최근 정치권에서 건식 임시저장시설을 법제화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이 역시 영구 저장시설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므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정부와 한수원이 고리2호기 수명연장 시도를 지금 당장 멈추고 곧 포화할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합의와 계획부터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산일보는 지난 9일 ‘고리원전 건식저장시설 강행, 막가는 한수원’이란 사설을 내놓았다. 요지는 이렇다.

‘주지하다시피 원전과 관련된 계획의 추진은 주민 수용성이 관건이다. 그런데도 한수원이 이같이 막가는 것은 주민의 의사보다 친원전 정책으로 돌아선 정부 권력의 눈치만 보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한수원의 일방적 정책 결정 행태다. 한수원은 원전 건설과 운용 과정에서 주민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원전의 영구 핵폐기장화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임시저장시설을 짓겠다고 하면 어느 지역 주민이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버릴 데가 없으면 전력 사용량에 비례해 지역별로 분산 보관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한수원은 지역 주민을 무시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 것이다.’

국제신문도 같은 날 ‘고리 건식저장시설 “주민 협의”,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는 기사를 내 과거 정부 계획에도 명문화가 안 돼 있었고, 현행 원자력안전법에도 ‘의견 수렴’ 조항이 없다는 관련 법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21년 12월 확정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서도 정부는 의견 수렴 절차를 의무화하지 않은 채 ‘주민 등이 요구하는 경우’로 제한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명문화 여부와 별도로 ‘원전 사업자’로서 적극적으로 의견 수렴에 나서야 하는 한수원이 오히려 ‘주민 패싱’을 해가며 안건 밀어붙이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특히 의견 수렴 절차를 의무화한 여야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약칭)’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속전속결로 이사회에서 안건을 처리한 것은 향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고리원전 방폐장화 안전한가

한수원의 이 같은 건식저장시설 강행은 어떻게 해서 가능할까? 그것은 윤석열 정부의 ‘막가파식 원전폭주정책’에 기인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한수원은 2004년 4월 한전의 발전 부문이 6개 자회사로 나눠질 때 방사성폐기물 관리 책임이 이전돼 책임기관이지만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 시절 공론화 때 단 한번도 고준위방폐물처리장에 관해 어떠한 방향도 제시하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고준위방폐물 영구처분장 계획은커녕 중간저장시설 계획조차 포기하고 고리 월성 영광 울진 등 원전 입지 지역을 사실상 영구방폐장화하고 있다. 게다가 시를 비롯한 원전 입지 지자체가 사실상 이를 방관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임시 건식저장시설 강행으로 고준위방폐장 건설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 자체가 물 건너가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영구처분 또는 중간저장시설 부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방사선 안전관리 등의 기술 기준에 관한 규칙’ 67조를 보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의 위치 및 지질 기준은 원자력안전위 시행규칙 및 고시 등에 규정돼 있다. △인구밀집지역에서 떨어진 곳 △지진 지질학적 특성을 조사 평가한 결과 장해가 없는 곳 △산업 운반 및 군사시설로 인한 인위적 사건의 영향을 평가한 결과 장해가 없는 곳 △시설로부터 방사성물질이 대기로 방출되는 경우의 확산 및 희석 특성을 조사 평가한 결과 주변의 대기환경에 장해가 없는 곳 △해일 회오리바람 태풍 홍수 폭설 폭우 등의 자연현상을 조사 평가한 결과 그것이 중대한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없는 곳 △저수지 댐의 유실과 빗물 등에 의한 하천범람의 영향이 없는 곳 △지표수 및 지하수의 수문학적 특성을 조사 평가한 결과 주변의 수중환경에 장해가 없는 곳 등이다. 과연 고리원전 일대는 안전한가?

●원전지역 영구방폐장화 허용 특별법 폐기해야

윤석열 정부의 원전폭주 와중에 국회의 상황도 심각하다. 현재 국회에 상정 중인 관련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안은 미봉책으로 오히려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시민환경단체는 관련 특별법안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작에 문재인 정부가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통해 신규 원전 건설 금지나 설계수명 만료 원전의 수명 연장 금지 조항을 넣어야 했었다. 현재 원전의 건설허가 취소나 영구정지를 한수원만이 할 수 있게 돼 있는 법을 원안위가 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넣는 방안도 고려했는데 부울경 시민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것은 명백한 국회의 입법적 미비이다.

지금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안’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등 3개의 고준위방폐물 관련 법안이 상정돼 있다. 이 3가지 법안은 모두 ‘부지 내 저장시설’ 조항을 담고 있다. 이들 법안은 원전 부지 내 고준위핵폐기물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안으로 △부지 내 저장시설 건설 과정에서 주민의견 수렴 △저장할 용량에 대한 규정 등을 담고 있으나 원전 지역을 사실상 영구적 핵폐기장을 만드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이다.

김성환 의원과 이인선 의원 법안에는 타부지 사용후핵연료 반입 금지, 중간저장시설 완공 후 이전 조항이 담겨 있고, 김성환 의원 법안은 ‘설계수명 동안 발생할 용량’만 보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인선 의원 및 김영식 의원 법안에는 ‘운영허가 기간 동안 발생할 용량’을 보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노후원전의 수명 연장을 염두해 둔 법안이기에 법안 폐기를 강력히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김성환 의원의 법안 제32조(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설치·운영 등) 6항도 김영식 의원과 이인식 의원이 발의한 수명 연장을 위한 부지 내 저장시설이 내용과 달리 ‘발전소 설계수명 기간 발생하는 양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이 역시 고준위핵폐기물 부지 내 저장을 명문화함으로써 원전 입지지역만 무한 희생을 강요하는 법안이다. 핵폐기물 발생량을 제한하는 기한이 명시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폐기돼야 할 것이다.

한수원이 지난 7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리원전의 건식저장시설에 ‘의도적인 항공기 충돌에도 견딜 수 있는 설계를 적용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중간저장시설에 적용되는 설계 기준이기에 정부가 실질적으로 건식저장시설을 영구적으로 운영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장군수가 “고준위 특별법 제정 이후 추진해야 한다”고 입장문에 밝혔는데 사용후핵연료 방출 시점을 정한다고 해서 핵발전소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이 원전 부지 안에 일단 들어서면 절대 나갈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 아닐까? 윤석열 정부의 원전 폭주에 대한 근본 대책을 국회가 세워야 함에도 영구처분장에 대한 근본적 논의도 없이 ‘부지 내 저장’을 밀어붙이는 여야 의원들의 속내가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못 궁금하고 괘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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