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처럼 뜨거웠던 시절의 엄혹했던 화풍은 어느새 캔버스 위에서 차분해졌다. 차분하다 못해 평화롭기까지 하다.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최근 80년 대를 풍미했던 민중화가 출신 이강용(66)작가의 그림들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들이다. 선생의 작품은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의 싯구처럼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읖조리는 듯 하다.

시대적인 아픔과 풍상을 온몸으로 견디며 쌓아온 내공이 불러온 힘일까.

8일 장유3동 남명갤러리에서 열리는 이강용 개인전에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박동필 기자

민중미술계를 호령했던 선생의 작품은 여전히 가볍지않은 진중함이 묻어난다. 동시에 가을햇살처럼 따사로움도, 자유로움도 깃들어 있다.

이 작가는 지난 5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김해시 장유3동의 남명앤스퀘스빌딩내 남명갤러리에서 41번째 개인전을 갖고 있다.

선생은 그동안 마산의 화실에서 작업한 작품 20여 점을 내놓았다.

선생은 “과거는 역사속에 올곧게 묻어두고 저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며 “열기는 식었지만 세상에 대한 관심을 제 작품에 담은 작업은 한번도 게을리 한 적이 없다”며 근황을 들려준다.

눈에 띄는 것은 백두대간, 북한산, 인수봉처럼 명산을 모티브로 한 연작들이다. ‘한성북쪽 북한산’은 붉은 바탕위에 굴곡진 우리 역사와 닮은 산등성이가 힘차게 굽이친다. 백두대간이라는 작품은 산맥이 푸른바탕에 할머니 이마에 난 주름처럼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두막’ 연작도 주목을 받는다.

그는 “우리가 살았던 시절, 오두막은 기억의 한 켠에 남아있는 동화같은 소재요 이야기꺼리가 무궁무진했던 보물창고였다”며 “어린시절 비록 우리 삶이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시절을 꺼집어 내 공유하고 싶었다”며 연작의 배경을 들려줬다.

민중미술 화가로 유명한 이강용 화백이 8일 남명갤러리에서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 담담히 들려주고 있다. 박동필 기자

빨간지붕 오두막, 가로등과 오두막1, 전기줄과오두막.... 작품들은 빛바랜 흑백사진 저편에 남겨진 추억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풀꽃도 꽃이라’는 작품에서는 선생은 병아리같은 작은 꽃들에도 그윽한 미소를 햇살처럼 보낸다.

정규 미술공부를 하지 않은 선생은 마산이 고향으로, 마산공고를 나왔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엄혹했던 시절 80년 대 노동과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집회의 상징과 같았던 걸개그림과 판화의 세계를 접하면서 민중미술가로 활동한다. 홍대, 서울 민중미술팀과 함께 작업을 했으며 작고한 민중미술의 전설 오윤 씨나 장경호 작가와 같은 대가들과 동시대를 살았다.

창원공단에서 노동운동을 주도한 마창노련 집회에서 사용한 걸개그림, 깃발그림, 머릿띠 제작도 늘 그의 몫이었다.

선생은 “민중미술은 그 시대의 산물 이었다. 저의 작품 세계는 한 순간에 머물지 않고 형상미술(민중미술)을 넘어 계속 새로운 세계를 탐닉하고 있다”며 “ 예술은 변형이고 픽션과 넌픽션의 세상이며 현실에 바탕은 뒀어도 상상의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고 본다”고 자신이 추구해온 예술의 세계를 전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도 백두대간과 같은 산시리즈에 몰두할 계획이다. 앞으로 산맥에서 내려와 그 곳에 사는 사람이야기 등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비주류로 살아온 그의 작업세계는 오일 파스텔과 아크릴을 활용해 독특하고 강렬하면서도 세련된 화풍을 만들어 낸다는데 있다.

그는 “오일파스텔로 밑작업을 해서 마지막으로 얇게 얇게 아크릴로 칠해 끝을 맺는 게 나의 제작방식이다. 학원미술이 아닌 비주류로서 한 번도 미련을 가진 적은 없다”고 털어놨다. 한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왔던 선생의 시선이 또 어디에서 머물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