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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경단녀, 하루 열시간 글쓰며 스테디셀러 작가 우뚝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17> ‘플루토 비밀결사대’ 한정기 작가

  • 고영삼 동명대 교수
  •  |   입력 : 2022-12-27 19:28:53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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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살에 직장 관두고 결혼 생활
- 삶의 의미를 놓고 고뇌와 방황
- 우연히 시작한 창작활동서 희열
- 4년 공부 끝 동화 작가로 등단

- 공부 욕심에 38살에 대학 진학
- 플루토 시리즈로 인기작가 대열
- 늘 읽고 공부하며 좋은 글 열망
- 진부한 일상 깨고 스스로 비상


◇ 한정기의 인생Tip

안정된 삶에 안주하지 말라. 비상의 순간을 위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뛰어들어라
한정기 작가가 기장군 힐튼호텔 내 서점 이터널저니에서 독자 팬과 작가 지망생들을 만나 강연하고 있다.
세상이 모르는 사실 하나. 경단녀의 세계다. “사회적 무능력자가 된 것은 아닐까?”, “이대로 살다 마는 것일까?” 출산과 육아에 한 십 년 이상 빠져 있다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한 아동문학 작가다. 경단녀 용어도 없던 시절부터 경단녀였던 그녀는 비상한 노력 끝에 이제 한국 아동문학계의 한 경지를 틀고 있다. 그녀의 경단녀 탈출 비결은 무엇일까?

-작가님은 어떤 책을 쓰셨나요?

▶저는 추리모험동화 ‘플루토 비밀결사대’ 등 이제까지 스무 권 정도 책을 출간했습니다.

-아동문학의 스테디셀러 작가라고 들었습니다.

▶‘플루토 비밀결사대’는 5권 시리즈물인데 총 10만 부정도 발행되었어요. 덕분에 저는 스테디셀러 동화작가가 된 셈인데, 그 외에도 위인전 ‘강감찬’은 약 3만 부, 그리고 ‘사거리 문구점의 마녀할머니’, ‘나는 브라질로 간다’는 각각 2만 부를 눈앞에 보고 있어요. 그 외 1만 부에서 5000부 정도 되는 책이 10권 가까이 되죠.



독자들은 플루토라고 했을 때 알아챘을 것이다. 맞다 바로 한정기 작가다. 아마 1995년부터 2015년 사이에 출생한 아이들은 저마다 플루토를 읽었을 것이다. 2014년 플루토는 EBS에서 16부작 어린이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된 적도 있다. 오랜 기간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용기를 일으키는 원천이었다.



-경단녀 출신이라고 하던데요?

한정기 작가(오른쪽)가 2005년 황금도깨비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글쎄요. 저는 1960년생인데, 여상을 졸업하고 금융기관에 취직해 있던 중 부모님이 주선한 공무원을 만나 스물네 살에 결혼했죠. 당시의 문화가 그러했죠. 여자는 대학보다는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것. 그런데 어느 순간 현실의 삶에 문득 회의감이 들었어요. 남편과 두 아이, 아무 불만이 없는 생활이었는데, 큰아이가 초등생 3학년 때였던가요? 가슴 속에 어떤 회오리바람이 일었어요.

-회오리바람요?

▶‘나는 뭐 하러 이 세상에 왔을까?’라는 질문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흔들었어요.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랄까요? 서른 중반이었는데, 한밤중에도 잠이 깨어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남편도 아이도 위안이 되지 못했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에서 새로운 세상을 확인했었어요. 한밤중 홀로 일어나 식탁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훤해지곤 했어요. 그때 느껴지는 희열이 참 좋았어요.

-그래도 스승 없이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나요?

▶자신의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빠져 있던 중 백영현 선생님께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그러다 백 선생님을 통해 다시 김재원 선생님을 소개받았습니다. 몇 년 동안 그분들도 놀랄 만치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백일장에 당선되더군요. 김재원 선생님은 제게 동화 쓰기를 권했고, 199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작은 불꽃’이란 동화가 당선되었습니다. 신춘문예에 등단하고 추리문학관 김성종 선생님을 만났는데 대가이신 김성종 선생님이 저에게 추리동화를 써보라 권하더군요.



미친 듯한 글쓰기 공부 4년 만에 그녀는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인생이모작의 시작이었다. 36세 때였으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인생이모작은 시작도 방법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 어쨌든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루 코엘류가 말한바 그녀는‘과거의 당신이기를 멈추고 당신 자신이 된 것’에 성공했다.



-그 뒤 작가 생활은 어땠나요?

▶글쓰기 기법보다는 글의 내용에 대한 고통이 오더군요.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38세 때였으니, 남편의 도움이 컸지만 늦깎이였지요. 살림 살며 대학 공부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배움의 즐거움에 깊이 빠져든 시간이었습니다.

- 그리고는요?

▶대학을 졸업하던 2002년부터는 정말 무섭게 글을 썼습니다. 하루 열 시간 넘게요. 퍼내도 퍼내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샘솟아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더군요. 고삐 풀린 경단녀랄까요. 그래서 나온 게 ‘플루토 비밀결사대’(2004)였습니다. 2005년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에 당선된 거죠. 평론가들로부터 ‘방정환의 추리 동화 ‘칠칠단의 비밀’을 마지막으로 끊어졌던 추리동화의 맥을 잇는 작가가 나왔다’는 평을 들었고, 당선 사실이 중앙일간지 문예면 톱으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에 쓴 동화 ‘큰아버지의 봄’이 5·18 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플루토는 그 뒤 5권 시리즈로 나와 총 10만 부 스테디셀러가 되는 성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작가 한정기는 그 뒤에도 한국극지연구소와 국제신문이 주도하는 예술가남극체험단(2006), 그리고 한국해양연구원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극기 해양체험을 통해 아동문학적 상상력의 저장고를 넓히는 행운을 잡았다. 또한 부산아동문학상(2007), 동서문학 작품상(2017) 등을 받기도 하고, 최근까지 부산아동문학인협회장 등을 하며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영광 뒤에 남모르는 고통도 많았지요?

▶말로 다 못 하죠. 쓴 글이 다 출판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섯 권 출판된 플루토만 해도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것을 합하면 여덟 권을 썼습니다. 쓰고, 또 쓰고, 또다시 쓰고…, 글쓰기는 창의적인 작업이다 보니 남모르는 고통이 심해요. 2012년 플루토 시리즈를 완성하고 나서 한동안 탈진한 것처럼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정말 쉴 새 없이 글을 써낸 뒤였지요. 부산문화재단이 제공한 감만 창작촌에 입주했던 2013년부터 저는 2년 넘게 길고 긴 슬럼프에 빠졌어요. 단 한 자도 써나갈 수 없더군요. 글이 안 써지니 몸도 아프기 시작했고, 갱년기 순환장애와 겹쳐 조울도 심해지고 무척 힘든 시간이 있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작가님의 인생이모작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끄럽지만 일단 꾸준한 공부와 끈기입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지겨운 시간을 견디며 앉아 있어야 합니다.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죠. 잘 써지면 잘 써지니까, 앉아 있어야 하고, 안 써지면 잘 써질 때까지 앉아 버텨야 하죠. 안 써진다고 일어나버리면 글은 영원히 쓸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글이 안 나올 때 ‘그동안 내 안에 고여 있는 글을 다 퍼냈으니 이제 맘 편하게 먹고 다시 차오르길 기다리자.’ 하루에도 수십 번 나 자신을 다독이며 중얼거렸습니다. 대학 때 교수님께서 ‘작가는 창조주와 같은 존재’라고 하셨어요. 창조주는 견딜 줄도 알아야죠. 그 경험 이후 저는 작가로서 저의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되더군요. 그렇게 보내고 나니 새로운 이야기가 찾아오더군요. 제법 히트 친 청소년소설 ‘깡깡이’, 동화 ‘사거리 문구점의 마녀할머니’ 는 슬럼프 관리 이후 나온 자식들입니다. 저는 인생이모작 길의 중간 중간에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분들이 저의 인생에 자극과 영감을 주셨고, 저는 그것을 놀랄 정도로 흡수했었죠.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올해 봄 김해 무척산 아래 전원주택 마을로 이사를 했습니다. 남편과 이른바 인생삼모작을 시작했습니다. 결혼 사십 년, 작가 생활 26년입니다. 이곳에서 텃밭 가꾸고 꽃과 나무를 돌보는 일이 정말 좋습니다. 삶의 이치를 배우고 깨닫는 생활입니다. 소박하고 검소한 자세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겁니다. 적게 쓰고 아껴 쓰는 게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환경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부하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 지구 환경과 함께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작가로 살고 싶습니다.



부산을 배경으로, 부산 아이들의 이야기로 사랑받아온 작가 한정기. 왜 동화를 쓰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세상살이 오욕칠정에 휘둘리다 보니 순정을 지향하는 동화 세계가 더 좋기 때문이란다. 온갖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즐거움도 동화작가가 갖는 선물이다. ‘사거리 문구점 마녀 할머니’에 있는 한 구절. “건강한 음식은 건강한 사람을 만들어주고 건강한 사람은 누구나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젊은 시절 가정주부로서 자존감 바닥이었던 한정기는 늘 읽고 공부했다. 그리고 치열히 글을 씀으로써 진부한 일상을 깼다. 비상해왔다. 이젠 스스로 마법을 부리는 경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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