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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인 시설 인권유린 증언] <5> 영화숙·형제복지원의 가교 부랑아시설 칠성원·덕성원

네트워크 형성된 시설들…아이 주고 받고 채무관계도 얽혀

  • 김성룡 srkim@kookje.co.kr, 신심범 정지윤 기자
  •  |   입력 : 2022-12-11 19:46:44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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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성원 수년간 감금 양성호 씨
- 공무원 손에 끌려가 강제노역
- 엄마 수소문 끝에 찾아와 탈출

- 형제복지원 입소한 안종환 씨
- 성인소대 배정 엄마와 생이별
- 아동시설 덕성원으로 옮겨져
- “원장 아내에 3억 사기도 당해
- 부산 사회복지계 전반의 문제”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의 집결지인 동시에 항구로 외국의 구호물품이 몰려든 공간이었다. 이 때문에 아동복지시설이 난립했고, 공직사회와 결탁해 구호물품 착복과 인권유린을 일삼는 곳 역시 적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부산 최초의 공식 부랑인 수용 시설인 ‘영화숙·재생원’이다. 민간 단체인데도 부산시로부터 부랑인 단속·수용 권한을 부여받았고, 수용 규모에 따라 시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1975년 ‘내무부 훈령 제410호’로 대표되는 중앙정부 차원의 부랑인 단속 지침이 내려지기 훨씬 전부터 부산에서 부랑인 ‘소탕’이 만연했던 이유다. 전쟁 고아는 전국 어디에나 있었지만, 부산에는 일찌감치 공권력을 등에 업은 체계적 전횡이 자리잡았다.

부산 사회복지의 흑역사는 영화숙 이후 ‘칠성원’과 ‘형제복지원’을 거치며 이어졌다. 이들 시설 외의 아동시설에서도 강제노역과 폭력 등의 인권침해가 만연했다. 시설 간에는 자신들만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다. 아이들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돈을 빌려주거나 관리 노하우를 전달하는 일도 잦았다. 옛 집단 인권유린의 주범을 형제복지원과 같은 하나의 시설이 아니라 부산 사회복지 체계 그 자체로 봐야 하는 이유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박인근이 명칭이 바뀐 ‘욥의 마을’ 대표이사에 재취임한 뒤 증축공사를 하고 있는 장애인 요양시설 ‘실로암의 집’. 국제신문 DB
■공무원 손에 이끌려간 칠성원

양성호(가명·58) 씨는 중구 남포동에서 공무원의 손에 이끌려 칠성원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2, 3학년 무렵이었다. 그는 고아도, 부랑아도 아니었다.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서구 보수동에서 살고 있었다. 그 공무원이 왜 자신을 데려갔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빵을 하나 사주면서 ‘잠시만 기다리라’며 부산진구청으로 데려갔다. 볼 일이 있다고 했다. 빵을 먹으며 기다렸더니, 산속에 있는 기역(ㄱ)자 건물로 데려갔다”고 한다.

칠성원은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 있었다. ‘영화숙·재생원’에 이어 부산의 부랑인을 공식적으로 수용한 시설이었다. 칠성원은 양로원과 보육원을 함께 운영했다. 이 때문인지 칠성원의 주 기능은 부랑인 수용이었지만, 양 씨처럼 아동 입소자 또한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 씨는 칠성원 직원과 형들의 괴롭힘을 견뎌야 했다. “나이가 어리니까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엄마한테 가야 한다’고 시설 밖으로 울면서 나갔는데, 제가 도망을 쳤다면서 잡아와선 식당에서 뺨을 치고 발로 걷어찼어요. 형들도 나를 많이 때렸어요. 벽에 붙여 세우고는 겁주면서 때리는 식이었어요.”

하루 일과는 노역으로 시작했다. 양 씨를 비롯한 어린 수용인들은 종일 이쑤시개 머리 부분에 꽃 모양 장식을 다는 일을 해야 했다. 엄청난 양의 꽃 장식을 물풀로 붙이다 보니 손가락이 파일 정도였다고 한다. 양 씨는 “우리가 만든 이쑤시개를 수출하는 것 같았다. 영어로 써진 상자에 보관했었다. 이쑤시개가 불량이 나면 궂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전했다.

가장 괴로운 건 배고픔이었다. 식사는 하루 세 끼가 나왔지만, 기껏해야 쌀죽 정도였다. 양 씨는 배가 고픈 나머지 흙이나 솔잎을 먹기까지 했다. 실제 당시 칠성원은 갑자기 늘어난 사업 규모를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도망가는 아이도 상당했다.

양 씨는 수소문 끝에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 덕에 칠성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1975년께였다. 그는 “어머니 지인이 구청 직원이었다. 그 분이 칠성원 시찰을 나왔다가 나를 보고 어머니께 가르쳐줬다”며 “인권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다 빼앗긴 채 우울한 삶을 강요받아야 한다. 한을 덜기 위해서라도 진상규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형제원서 엄마를, 덕성원서 날 잃어

안종환 씨
안종환(46) 씨는 부산역에서 엄마 품에 안긴 채 형제복지원으로 입소당했다. 해질 무렵 여러 사람과 탑차를 타고 철문을 넘었다는 것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이 안 씨가 엄마를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입소 이후 안 씨는 아동소대, 엄마는 성인소대로 배정됐다. 그날 이후 안 씨는 엄마를 보지 못했다. 성인이 돼 찾아간 형제복지원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1987년 형제복지원에서 ‘덕성원’으로 옮겨졌다. 동래구(현 해운대구) 중동에 자리했던 아동 시설이다. 덕성원은 형제복지원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형제복지원은 전국의 시설과 채무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형제복지원의 재단 자산을 빼돌려 다른 시설에 빌려주는 식이었다. 덕성원 원장 역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에게서 2000만 원을 빌리기도 했다. 당 시 안 씨의 지상과제는 ‘맞지 않고 잠자기’였다. 안 씨는 “형제복지원처럼 원생이 방장을 맡았다. 원생이 원생을 때렸는데, 학교 다녀오면 꼭 집합을 시켰다. 늦으면 방망이로 맞았다. 또 하교 후에는 매일 돌과 흙을 날랐다. 부산시 건축 작업을 지원해줬던 것으로 안다. 공부할 시간은 저녁에 딱 1시간만 줬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지금도 울분이 찬다”고 하소연했다.

성인이 돼 덕성원을 나온 안 씨는 고교 취업 기간 때 모은 돈으로 냉동 탑차를 샀다. 생선 장사를 했는데, 벌이가 좋았다. 현대그룹 정주영 전 회장처럼 자수성가하고 싶은 마음에 성실히 일한 결과였다. 그러다 1997년께 덕성원 원장 아내로부터 연락이 왔다. 법인 관련 소송을 치를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 같은 사람이란 마음에 매달 500만 원씩 돈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총 5년 동안 3억 원을 건넸다. 원장 부인은 ‘장가갈 때 주겠다’며 공증까지 써줬다. 그러나 원장 부인이 돈을 갚는 일은 없었다. 25살 무렵 결혼할 여자가 생겼으니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는 끝내 돈을 내놓지 않았다.

안 씨는 “칼을 사서 형제복지원 소대장이나 덕성원 원장 일가를 찾아갈 생각도 했다. 그들 때문에 나는 평생을 억울함에 시달려야 했다”며 “이건 어느 시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사회복지계 전반에 인격을 말살하고 피를 말리게 하는 작태가 자리잡고 있었다. 시설 수용 피해자 모두를 아우르는 진상규명이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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