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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지킨다던 형 뜻 못꺾어…사망통지서 한장만 돌아왔다”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9> 한국군 故 박지호 씨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2-11-07 20:07:29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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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대에 다니던 엘리트 큰형
- 친구들과 참전 의기투합하고
- 부산 거제동 넓은 공터에서
- 군사훈련 받던 게 마지막 기억

- 무사귀향 가족 염원도 덧없이
- ‘창녕서 사망했다’ 무심한 통지
- 모친은 안드시던 술에 기대고
- 희망 잃은 가세는 점점 기울어

- 유엔공원에 형 잠들어 있다는
- 무려 70년 만에야 찾아든 소식
- 이렇게 가까이 있었을 줄이야…
- 이제야 건네 본 ‘마지막 인사’

“큰형이 전쟁에서 황망하게 전사해 집안이 풍비박산 났죠. 큰형을 그렇게 앗아간 전쟁이 원망스러워요. 큰형이 살았다면 당시 법대를 다닌 엘리트였으니 판사·검사가 됐을 텐데 말이죠.”
박애지 씨가 2020년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고 박지호 씨의 묘비를 가리키며 사진 촬영을 한 뒤 인사하고 있다.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제공
부산 북구에 사는 박애지(82) 씨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큰형 고 박지호 씨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가족 모두 큰형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그가 큰형을 다시 만난 장소는 70년 뒤 남구의 유엔기념공원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큰형에게 절을 올리고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일본을 떠나 부산으로

박애지 씨의 큰형인 고 박지호 씨의 증명사진. 김진룡 기자
그의 가족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기 전 일본에 살았다. 6남매 모두 일본에서 태어났고, 막내였던 그는 장남인 큰형을 잘 따랐다. 당시 아버지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인삼 무역 일을 하면서 가족 형편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광복을 앞두고 일본 내 분위기가 흉흉했다. 당시 일본에 살았던 조선 아이들이 일본말로 ’일본 망해라’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해 일본 경찰에게 잡혀가기도 했다. 일본 경찰은 조선인 부모가 시킨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모도 함께 잡아갔다.

“광복이 얼마 남지 않았던 걸 일본도 알았는지 조선 사람이 일본에 더 살기 힘든 환경이었다. 걸핏하면 조선인을 잡아가는데 우리 가족도 이런 이유로 결국 한국행을 택했다.”

광복을 3개월 앞두고 그의 가족 모두 부산으로 넘어왔다. 그가 처음 기억하는 부산은 ‘똥 밭’이었다.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해 화장실이 급했던 사람들이 부둣가 여기저기서 용변을 해결한 것이다. 그의 가족은 현재 어묵 공장으로 바뀐 중구 부평동 한 시장 골목에 자리 잡았다. 어머니가 식당을 하면서 집안을 돌봤다. 부산에서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았지만, 가족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큰형의 한국전쟁 참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다. 당시 부산은 최후방이었지만 서울 다음의 대도시라 공습의 공포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6남매 중 나이가 어린 3명은 외할머니가 있는 경남 밀양으로 피란을 떠났다. “전쟁이 터지자 막내 3명이 이동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밀양에서도 포격 소리가 들리자 한 달 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갔다. 근데 부산에 와보니 큰형이 전쟁에 참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큰형이 전쟁에 나간다는 소리에 그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따라나섰다. 서구 구덕운동장에 큰형을 포함한 젊은 청년이 입대를 위해 모였고, 연제구 거제동의 한 너른 공간으로 이동해 줄을 쳐놓고 제식훈련 등을 했다. “시멘트 바닥에 줄을 쳐놓고 큰형이 제식훈련 하는 것을 구경했다. 내가 겨우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뭘 알았겠나. 그냥 큰형이 간다고 하니 따라갔다.”

마침내 큰형이 전장으로에 떠나는 날, 집 인근 시장 상인들이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라’ ‘잘 갔다 오라’ 등 태극기에 응원의 메시지를 적었다. 큰형은 이 태극기를 가지고 참전했다. “당시 큰형이 친구들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데 공감했고, 그래서 떠난 것 같다. 아버지는 별 이야기가 없었지만, 어머니가 엄청나게 말렸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큰형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큰형은 낙동강 인근 전선에 투입됐다. 동네에서 같이 간 청년이 10명 정도 됐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이 다시 돌아와 ‘박격포탄이 떨어져 큰형이 행방불명됐다’고 전했다. 나중에 사망 통지서가 집에 도착했는데, 1950년 9월 10일 경남 창녕 인근에서 전사했다는 것만 전했다. “전사 당시 큰형이 미군 소속이었는데, 아마도 대학도 다니고 영어도 좀 할 줄 아니 미군 쪽으로 간 것 같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카투사인 것 같다. 그런데 큰형의 전사 소식이 알려지자 갑자기 집안 꼴이 엉망이 됐다.”

■70년이 지나 다시 만난 큰형

큰형의 전사 소식이 알려지자 그의 어머니는 평소 입에도 안 대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 집안 형편을 눈여겨본 동네 점쟁이들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어머니에게 ‘큰형이 안 죽었으니 굿을 하면 돌아온다’고 말했고 돈을 받아 갔다. 점쟁이가 ‘형이 살아있다’며 제정신이 아니었던 어머니를 더 아프게 했다. 이후 어머니가 큰형의 영혼결혼식까지 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돈을 낭비하기 시작해 가세가 엄청나게 기울었다.”

어머니는 임종을 앞두고도 장남이 돌아올 것이라 끝까지 믿었다. 어머니는 결국 향년 98세의 나이로 2008년 영면했다. “큰형이 돌아올 것이라 끝까지 믿은 덕분에 어머니가 100살 가까이 오랫동안 사셨던 것 같다. 어머니가 노년에는 치매를 앓았지만, 큰형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는 전쟁을 원망했다. 한국전쟁이 동족상잔의 아픔이기도 했지만, 그의 가족에게는 법대를 다니며 전도유망했던 큰형을 앗아간 비극이었다. “큰형이 전장에 나가지 않았거나 살아 돌아왔다면 판·검사가 됐을 것 같고 집안도 평안했을 것 같다. 전쟁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돌아오길 애타게 바랐던 큰형의 소식은 2020년, 무려 70년이 지나 들을 수 있었다. 그해 8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큰형이 유엔기념공원에 묻혀있다’는 연락을 그에게 했다. “국내 어딘가 묻혀 있으리라 생각했던 큰형이 부산 한 가운데 있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유엔기념공원을 찾아가 형의 묘비를 확인했다. 그제야 큰형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이제는 매년 큰형의 제사를 지내거나 큰형이 보고 싶을 때 이곳을 방문한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과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협조를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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