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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1> 영국 故 에드워드 휠러

어린 딸에 보낸 색동 한복, 70년전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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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년생 나의 아버지

- 소년병 입대·2차 세계대전 참전
- 오페라 즐기는 등 음악사랑 유별
- 군 제대 뒤 유엔군으로 한국행
- 1951년 해피 밸리 전투서 전사

# 15개월이던 딸, 이젠 72세

- 로스 씨, 父 유품 대신 한복 간직
- 한국, 유엔기념공원 등 2번 방문
- 묘비·사진 보고 고마움의 눈물도
- 손자 이름에 아버지 그리움 녹여

지난달 12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이스트렌프루셔. 고즈넉한 시골 마을 풍경을 간직한 이곳에 한국전쟁의 아픔과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고 에드워드 휠러 씨의 딸인 리엔 로스(여·72) 씨가 그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냈다.

“영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이었다. 한국이 어디에 있고 어떤 나라인지 잘 알지 못했다. 영국 정부가 당시 한국의 겨울 날씨조차 제대로 몰라 영국군은 겨울옷을 챙기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겨울 양말 등을 보냈는데 제대로 전달됐는지도 알 수 없었다.”
리엔 로스 씨가 2013년 방한해 부산 남구 대연동의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아버지의 묘비 앞에서 아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오페라 즐기던 아버지 한국전 참전

로스 씨가 가진 아버지의 기억이 많지는 않다. 로스 씨가 생후 15개월 때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 그래도 돌아가신 어머니, 주변 친인척이 전해준 이야기와 함께 아버지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해 그를 추억하고 있다. 로스 씨는 아버지가 글래스고에 정착한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1922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어머니인 제인 멀그루 씨와 결혼해 글래스고에 정착했다. 14살의 나이에 아버지는 소년병으로 입대했고 왕립 얼스터 소총부대에 복무하면서 특공대 훈련도 받았다.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해 전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점령군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로스 씨가 어릴적부터 어머니 등에게서 들어 기억하는 아버지는 여러 악기를 연주할 만큼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특히 오페라를 좋아해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전사했을 때 나는 겨우 생후 15개월에 불과해 잘 알 수는 없지만, 가족이 해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추측할 수 있다.”

휠러 씨는 군대를 제대해 예비역이었지만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지자 영국 정부는 유엔군으로 참전하기 위해 그를 다시 불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는 1951년 1월 4일 경기 양주 인근에서 벌어진 해피 밸리 전투에서 결국 전사했다. 해피 밸리 전투는 1·4 후퇴 직전 남하하던 중공군에 맞서 국군과 미군의 철수를 엄호하던 영국군이 맞붙은 전투다.

“1951년 1월 5일인가 6일쯤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가 집에 도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의 개인 물품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고 해피 밸리에서 가매장됐던 아버지가 시간이 흘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것 같다.”

■아버지의 한복 선물… 손자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

리엔 로스 씨가 지난달 영국 글래스고의 이스트렌프루셔 자택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한복 선물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휠러 씨가 전사한 뒤 한국에서 로스 씨의 집으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어린 소녀가 입을 법한 색동저고리와 한복이 담겨 있었다. 로스 씨는 국제신문 취재진에게 이를 직접 꺼내 보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거나 생일 선물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취재진이 방문한다고 해 오랜만에 꺼내 세탁했는데 색이 갑자기 번져서 난감했다. 새것처럼 보여주고 싶었는데 슬프다.”

이어 로스 씨는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복을 입었던 기억을 이야기하며 다시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그는 2007년 국가보훈처와 2013년 주한 아일랜드대사관 초청 등으로 두 차례 방한했다. 두 번째 방한 때 기억은 남달랐다. 로스 씨의 아들이 일 때문에 서울에 머물고 있어 함께 한국을 여행하며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었다. “아들 부부가 호주에 정착했는데, 회사 일 때문에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 아버지가 전사한 경기 양주에 함께 방문했고, 유해가 안장된 유엔기념공원도 찾아갔다. 나에게도 특별했지만, 아들에게는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돼 중요한 여행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이름인 ‘에드워드’를 갓 태어난 손자에게 물려준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손자의 이름을 에드워드로 지었는데, 아버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아버지의 이름이 오랫동안 남을 수 있어서 중요하기도 하다. 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직도 아버지를 더 알아가고 싶다.”

■“아버지에게 매일 그리웠다고 말하고 싶어”

리엔 로스 씨 집에 걸려 있는 아버지 에드워드 휠러 씨의 사진과 훈장들.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가 작지는 않았다. 외동딸이라 외로움은 더했다. 아버지가 전사한 뒤 어머니 조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넉넉한 삶은 아니었다. 특히 어머니는 한국전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은 아버지 없이 평생을 살았고, 어머니도 남편의 공백 속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쟁 포로로 잡혀가 몇 주 정도 있다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로스 씨도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모든 게 허사였다.

“어머니의 가장 큰 소원은 언젠가 아버지의 묘지를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한국에 방문하는 게 불가능했다. 어머니는 결국 1979년 돌아가셔서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가 방한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어딘지 몰랐던 게 가장 컸다. 한국이란 나라에 관한 정보가 전무했고 런던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편이 있었을지 몰라도 용감하게 떠나긴 어려웠다.” 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할 때도 한국이 사계절 따뜻한 나라라고 생각한 정도였던 것 같고 영국 정부도 이를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로스 씨의 아픔과 고통은 유엔기념공원에서 조금 누그러졌다. “유엔기념공원 제2 기념관에 방문했는데 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있어 고마웠다. 유엔기념공원 측이 전쟁 희생자를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줘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견딜 수 있게 도와줬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발전한 한국을 보면서 한국에서 자유나 평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다는 사실도 아버지의 희생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끝으로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전했다. “아버지가 나의 세 아이의 할아버지가 돼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아버지에게 매일 그리워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과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협조를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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