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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53> 의태 최승애 화백

청록산수(고구려~고려시대 유행한 화풍) 기법 계승 … 안견의 ‘몽유도원도’ 현대적 재해석

  • 손균근 기자 kkshon@kookje.co.kr
  •  |   입력 : 2022-08-07 20:00:15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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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틀무렵 빛 닿은 잎새에 감명
- 선과 색을 풀잎처럼 잘게 쪼개
- 산수 그려내는 ‘풀점묘법’ 터득
- 韓 아름다운 여명의 산하 담아
- 깊고 강렬한 색채로 희망 전해

- 캔버스와 서양화 물감 등 사용
- 동양화 표현의 지평 넓히기도

한국화하면 많은 이들은 수묵(水墨)을 떠올린다.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등 사대부의 문인화가 그림의 영역까지 잠식했다. 색을 엷게 입힌 수묵담채(水墨淡彩)를 생각하는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 단원 김홍도 등의 풍속화에서 익숙해졌다. 그러면 고구려 고분의 강렬한 원색은 어디로 갔나. 고려까지 한국화의 주류였던 강렬한 색채의 청록산수(靑綠山水)는 조선의 문인화에 밀려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의태 최승애(68) 화백은 청록산수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최 화백은 한국의 산수를 그만의 독창적 표현기법인 ‘풀점묘’로 담아낸다. 최 화백의 독특한 풀점묘법은 선과 색을 풀잎처럼 잘게 쪼개 산수를 그려내는 화법이다. 최 화백이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연유이다. 최 화백의 연작 시리즈 ‘몽유도원도’에 관해 장준석 미술평론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가버린 옛것을 오늘의 시간으로 되돌려 현대적·창의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고 했다. 장 평론가는 ‘한국 현대미술의 여명’(학연문화사)이라는 평론집에서 이중섭, 천경자, 박수근 등 대가와 함께 최 화백을 엮었다.

최승애 화백이 충북 청주시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붓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ilro12@kookje.co.kr
“아직도 고향 거제도가 아른거린다”는 최 화백을 지난달 25일 청주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났다. 최 화백은 청록산수를 현대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조선 시대 채색화를 섭렵하면서 풀점묘법을 터득한 과정과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자신의 도화지와 캔버스로 불러들인 배경을 설명했다. 최 화백의 그림은 유난히 밝고 깊은 색조로 사랑받는다. 최 화백은 한국의 산수를 통해 평화와 사랑, 희망과 위안을 전 세계인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독창적 풀점묘법은 어떻게 탄생했나.

▶내겐 아침 햇살, 특히 동틀 무렵의 빛이 닿은 나뭇잎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인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풀잎과 거기에 맺힌 이슬방울이 여명으로 반짝이는 모습은 하나의 점에서 또 다른 점으로 쪼개지고 다시 그 빛들이 하나가 된다. 풀점묘법은 오랜 세월 동안 아름다운 산수를 온전하게 그림으로 구현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 끝에 저만의 테크닉이랄까 표현 기법으로 완성됐다. 최근 화단에서 저의 풀점묘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주목받으면서 질문을 가끔 받는데, 어릴 적 고향에서 시작된 여정이 작품세계를 구현하는 기법 내지 기술로 완성됐다. 제가 사실 눈이 좋은 편이다. 지금도 양쪽 다 2.0이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원거리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게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모든 화가의 작업은 만만치 않다. 밤을 새워 그릴 때도 많다. 특히 풀점묘법으로 도화지와 캔버스를 채우는 것은 수천, 수만 번의 저만의 점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최 화백의 그림은 지문 같아서 절대로 위작이 불가능하겠다고 말한다. 색채 연구도 게을리할 수 없다. 저의 기법을 독창적이라고 한다. 색을 보다 잘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하고 이전에 사용하지 않은 것을 배합하기도 한다. 나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도전을 한다. 저에게는 나름의 이노베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저의 또 다른 연구과제는 보존이다. 이 작품이 100년이든 200년이든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구현된 색상이 화학적인 반응 등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보존성에 관한 연구도 한다.

-‘몽유도원도 21’ 연작으로 유명하다. 계기가 있나.

▶조선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도원을 안견에게 말해 그리게 한 그림이 몽유도원도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에 없고 일본 덴리(天理)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분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반환되지 않고 있다. 몽유도원도는 전 세계적으로 옛 한국화의 대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저도 진품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몽유도원도를 본 안평대군의 시문에서, ‘이 세상 어느 곳이 도원인가 그림으로 그려 놓고 보니 참으로 좋을시고 여러 천 년 전해지면 오죽 좋을까…’라고 말씀했다는 기록이 있다. 1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몽유도원도에 제가 얼마나 심취했던지 꿈을 꿨다. 내가 사는 집에 어떤 동자가 호박죽을 쑤어왔는데, 아마도 안평대군이 아니었나 싶다. 그 뒤에는 안견 선생님이 등에 조그만 조각배를 지고 오셨다. 그즈음에 한국 산수의 정수인 몽유도원도를 21세기에 되살려보자고 생각하던 차였다. 풀점묘법으로 몽유도원도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여정이 그때 시작됐다.

-한국화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저의 그림 소재는 한지도 있고, 서양화에 쓰는 캔버스도 있다. 저의 그림은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으로만 그리지도 않고 서양화의 물감도 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저의 작품에 대해 동서양의 만남이라거나 한국화의 새로운 도약이라고 평가한다. 과분하다. 더 노력하라는 응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제가 작업을 게을리할 수가 없다. 한국 산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어 작업에 매달린다. 특히 색채의 깊이를 더하는 노력에 대해 동양화 표현의 지평을 넓혔다는 느낌은 스스로도 든다.

-끊임없이 추구하는 작품세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내 작품세계는 변화해 간다. 작품에 생명력이 부어지고 인류의 평온을 바라는 마음을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 내 작품세계의 마지막 단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계문명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이 소외되고 있다. 4차 산업시대, 인공지능, 미디어의 홍수, 이런 것에 인류가 떠밀려 간다. 인간은 자연과 산수가 주는 아늑한 향수랄까, 고향의 평온과 같은 것이 절실하다. 인간은 그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제 작품은 그것을 궁극적으로 추구한다.

-작품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

‘몽유도원도’ 2021년 작. 최승애 화백 제공
▶작품을 접하는 이들의 몫이지만 제 작품은 주로 여명의 산수를 담고 있다. 따뜻하고 맑고 푸르다.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무릉도원’으로 승화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에서 용기와 희망을 품기를 바란다. 제 작품이 해가 뜨는 여명을 담고 있는 것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기 원하기 때문이다. 제 작품에 가끔 비구상적인 학이 등장한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지에 제가 기증한 200호의 작품 이름이 ‘평화를 향한 백학의 찬란한 비상’이다. 러시아 민요에도 ‘백학’이 있다. 백학은 평화를 위한 염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전쟁은 비극이다. 인류가 아름다운 한국의 산수화에서 위로를 얻고 평화의 소중함을 느꼈으면 한다. 풀점묘를 통해 펼쳐진 회화에서 꿈과 희망, 공존번영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어떤 미술평론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 앞에서는 암울하고 비극적인 것은 소멸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고향에서 추억도 많을 것 같다.

▶거제도 밤바다에 시거리(그믐이나 달이 뜨지 않았을 때 바다에서 파도나 돌, 모래 등의 자극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플랑크톤을 이르는 방언)라는 게 있다. 밤바다에 살짝 안개가 낄 때 바닷물을 만지면 금색, 은색 물결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 물에서 친구들과 수영하면 황홀했다. 절벽에서 다이빙하면 물이 차가워지고 귀가 아플 때까지 내려갔다. 물 밖으로 솟아오를 때의 기분을 도시 사람은 모를 거다. 제가 지금도 쓰는 호가 ‘의태’인데, 아버지께서 서울의 유명한 작명가가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라며 지어준 이름이다. 초등학교까지 최의태로 살면서 친구들에게 ‘이태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중학교부터 호적 이름인 최승애로 불렸다. 아호를 호로 쓰게 된 셈이다. 고향에는 작품 기증이나 전시회 등으로 가끔 들른다. 아버지의 과업을 이어받아 제 여동생이 지금은 약국을 하고 있다. 제부도 그곳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다.

-부울경의 문화예술 발전도 중요한 과제다.

▶지역 화단에 대한 중앙의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하다. 출향 화가와 교류도 더 늘려야 한다. 그리되면 지역 문화예술계가 좀 더 자신감 있게 밖으로 나가고 교류하면서 더 발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지역의 후배가 예술적 재능을 키울 기회를 줘야 한다. 여러 작품을 접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은 자기가 사는 공간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제가 서울대병원 등 여러 곳에 작품을 기증하지만 고향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작품을 기증하는 것도 이런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기증한 ‘평화를 향한 백학의 찬란한 비상’이 그곳을 찾는 많은 관람객에게 감동을 준다고 해 가슴 뿌듯하다. 많은 분이 감명받았다는 글도 남긴다고 하더라. 미래의 후배들이 나를 뛰어오르기를 기대한다.


◇ 최승애 화백은

▷1954년 경남 거제 출생 ▷학력 : 거제 장승포초, 해성중, 해성고 졸업,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미술학과 졸업, 홍익대 미술대학원 동양화과 수료 ▷수상 2020 월간 문예사조 신인상,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세계미술축전 우수작가상, 2015 대한민국미술대전 최우수상 비구상부문 대상 ▷경력 : 한국미술협회 자문위원(2019), 제3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비구상부문 심사위원(2018.6~), 제24대 한국미술협회 직능별위원회 미술교육이사(2017.3~), 미술과비평 운영위원(2016.11), 제16회 대한민국 기독교미술대전 운영위원(2016.1), 제32회 무등미술대전 운영위원(1980), 청주국제공예비엔나레, 남송미술관 나는 화가다 선정작가 ▷작품 소장 : 서울대병원 본관, 숙명여대,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 금보성아트센터, 향암미술관, 청주시청, 거제시청, 거제희망복지재단, 호주브리스밴주지사관,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등

※김일출 Systems Wisdom Korea 대표이사의 휴가로 손균근 서울본부장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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