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100일 넘게 지속되는 가운데 전쟁 여파로 한국으로 피난 온 고려인과 그 가족의 힘겨운 한국살이도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스타니슬라프 박(사진 가운데) 씨와 그 아이들의 모습. 스타니슬라프 박 제공

4일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월 24일 전쟁이 시작된 후 러시아는 100일 만에 우크라이나 국토 5분의 1을 점령했다. 우크라이나 동쪽지역인 돈바스 지역을 둘러싸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며 민간인 사망자 역시 3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내로 들어오는 우크라이나 고려인(19세기부터 광복까지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한민족 동포) 난민 숫자도 증가하고 있다. 고려인 지원단체인 ㈔너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에 피난 온 고려인과 그 가족은 전국적으로 1200명 정도로 파악됐다. 그 중 부산 경남 일대에 29명 정도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부산뿐만 아니라 경남 김해 양산 창녕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김해에 거주 중인 스타니슬라프 박(39) 씨 가족도 그들 중 하나다. 박 씨 가족은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 주 페르보마이크스 지역에서 농업과 토지 임대를 하며 살아왔다. 박 씨는 지난해 5월 혼자 입국해 김해에서 일하고 있고, 박 씨 가족은 우크라이나에 남아 전쟁을 경험했다.

박 씨의 아내와 아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 2월 24일을 잊지 못한다. 이들의 고향은 러시아 국경에서 980km 떨어진 곳이지만 외신에 따르면 현재 이 지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이 교전 중인 지역이다. 박 씨의 아내 라이사(34) 씨는 “국경과 거리가 멀어 폭발 소리 등을 직접 듣지 못했지만, 전쟁 후 아이들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전투기 소리와 매일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심리적 어려움을 느껴왔다. 언제 폭탄이 떨어질 지 몰라 불안한 마음에 한 달 동안 옷을 입고 잠을 청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박 씨의 설득으로 박 씨의 아내는 전쟁이 시작된 후 한 달만에 아이들 4명을 데리고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최저임금이 조금 넘는 박 씨의 월급으로 500만 원에 달하는 비행기 티켓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워 2017년 한국에 먼저 온 누나에게 돈을 빌려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전쟁을 피해 간신히 가족을 한국에 데려왔지만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간단한 옷가지 몇 벌과 몸만 급하게 나온 탓에 수중에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할 수 없었던 박 씨는 급하게 원룸 2곳을 겨우 빌려 3명씩 나눠 지내기로 했다. 하지만 6평 남짓 원룸은 좁고 불편했다. 국제이주기구와 유엔난민기구가 제시한 ‘이재민 임시수용시설 안내서’에는 이재민 1인당 필요한 최소 공간은 3.5~10㎡ 정도다.

스타니슬라프 박(39) 씨가 거주하는 집. 이곳에서 본인을 포함해 3명의 가족들과 함께 산다. 스타슬라프 박 제공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당분간 가족은 박 씨의 외벌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동포비자(H-2)를 가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박 씨와 달리 라이사 씨는 방문동거비자(F-1)로 일을 할 수 없다. 고려인 단체를 통해 지난달 대한적십자사로부터 20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여전히 가족 생계를 이어가기엔 부족하다.

경제적 어려움은 이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가족을 찾아 피난 온 고려인 가족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전쟁으로 이주한 고려인의 경우 외벌이인 가족을 따라 한국에 이주해오는 경우가 많아 가족 전체가 이주해올 경우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치고 있다.

지원 수요는 많지만 실질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달 27일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전쟁으로 피난 온 고려인 가족 215명에게 1억2150만 원을 지원했다. 이마저도 국내 피난 고려인 가족 중 20% 미만에 불과하고 1인당 50만 원이 조금 넘는 액수라 생계를 유지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너머 김영숙 상임이사는 “피난 온 상당수 고려인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 겪는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지원을 안내해주고 있지만 피난 고려인 가족 중 지원을 받은 사례는 극소수에 그친다. 시민단체에 의존하기보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