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폭풍으로 나무가 뽑혔다.’ 강한 바람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고구려 모본왕 2년(서기 49년)에 시작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모본왕은 그해 폭풍이 불고 우박이 내리는 악천후가 이어지자 가을에 사신을 보내 백성을 진휼(賑恤·흉년에 백성을 도움) 했다. 신라·백제와 고려시대에도 비슷한 기록이 나온다. 큰 바람에 기와가 날아간다거나 문이 무너져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기와도 날려버릴 강한 바람은 마땅한 방재 도구 하나 성치 못했던 삼국시대 백성들에겐 더없이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가히 그 위력이 현세의 태풍과 견주어 마땅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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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하이선’이 부산 인근을 통과한 지난 7일 오전 큰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부산 영도구의 한 회사를 덮치고 있다. 국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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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해마다 평균 3.4개의 태풍이 상륙하거나 영향을 미친다. 태풍의 진로에 따라 피해 규모가 변한다. 강풍 반경과 강수량의 분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을 지나는 태풍은 계절에 따라 진로가 나뉜다. 여름철에는 남부에서 중부지방까지 태풍의 영향권 아래에 들고, 가을철이 되면 부산·울산·경남 지역이 태풍의 주 영향권에 들어간다.
지난 30년간 부울경에 영향을 준 가을 태풍은 총 31개. 이동경로는 각기 다르다. 일반적으로 가을 태풍은 ▷남해안에 상륙하여 해안을 지나는 경로 ▷남해안에 상륙한 뒤 경남 내륙 또는 경북 내륙을 통과하는 경로 ▷대한해협을 지나는 경로 ▷일본을 통과하는 경로로 나뉜다. 남해안에 상륙해 경남 내륙을 통과한 가을 태풍으로는 2018년 제25호 태풍 콩레이가 대표적이다. 남해안에 상륙 후 해안을 따라 진행된 태풍은 2016년 차바가 있다.
가을 태풍은 강력하다. 태풍 발생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9월 초 정점을 찍어 태풍 형성에 유리한 조건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력한’ 혹은 ‘위력적인’이란 수식어는 주로 가을 태풍 앞에 붙곤 한다. 대표적 사례로 2003년 발생한 제14호 태풍 ‘매미’를 들 수 있다. 남해안 상륙 후 경북 내륙으로 빠지는 진로를 택한 매미는 9월 10일부터 3일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며 50~200mm, 많은 곳에는 470mm가 넘는 많은 비를 내렸다. 최대 순간풍속은 53.4m/s에 달해 건물 외부 간판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130명의 사상자를 낸 태풍 매미는 역대 재산 피해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루사인데, 마찬가지로 8월 31일 가을 초입에 발생한 가을 태풍이었다.
그래서 여름철 태풍과 장마라는 악기상의 고비를 넘기고도 기상청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특히 해안과 인접해 가을 태풍의 영향권 안에 자주 드는 부울경은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선박·수산·제조·농어업 등 바다 날씨나 강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이 밀집해 있어 정확한 기상정보 제공에 대한 기상청의 역할과 소임이 막중하다. 더군다나 최근 가을 태풍의 발생은 증가하고 있다. 지난 30년 평균 0.9개의 가을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반면, 최근 10년 평균으로 보면 1.2개로 늘었다.
이에 기상청은 태풍의 발생부터 소멸까지, 끊임없는 분석을 통해 태풍정보를 발표한다. 올해부터는 태풍 발달 전 열대저압부 정보를 통해 강풍 반경, 강도 등을 포함한 5일 상세예보를 실시 중이다. 한반도 영향이 예상될 때는 열대저압부 약화 이후 온대저기압으로의 변질까지 전주기 태풍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태풍이 한반도로 접근할 때에는 기상 속보를 이용해 매시간 태풍의 중심 위치와 기압, 최대풍속 등을 신속히 알리는 중이다.
폭풍우 등 연이은 악천후로 마을에 흉작이 들자, 가을날 급히 사신을 보냈다는 모본왕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삼국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역사의 환난 속에서도 우리 왕조는 꾸준히 날씨를 기록하고 백성을 돌보았다. 이는 모두 애민(愛民·백성을 사랑함)의 정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국민을 섬기고 기상재해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일은 기상청의 소명이 되었다. 앞으로도 기상청은 신속하고 정확한 태풍 정보를 제공해 국민 안전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박광석 기상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