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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경의 부산 사람 인생사 <7> 꽃을 피워온 남자, 김근옥 씨

유엔공원 지키는 꽃·나무의 아버지, 그의 삶이 곧 그곳의 역사다

  • 김가경 시민기자
  •  |   입력 : 2021-10-14 19:30:14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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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년 차 정년 앞둔 공원 관리사
- 대부분 꽃 직접 키워 옮겨 심어
- 장비제작·시설정비 만능 재주꾼
- 후임자에 줄 기록노트만 수십권

- “나무도 사람처럼 함께 줄어들어
- 이곳서 일하며 참으로 행복했다”

장마 끝 무렵, 집 근처 유엔기념공원(부산 남구 대연동)으로 산책을 갔다. 묘역 주변으로 나무들이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올 때마다 숙연함이 더해졌다. 추모관을 지나 메타세쿼이아 길을 한 바퀴 돌다가 나도 모르게 연못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늘 대여섯 마리 거위가 노닐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몸짓이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과 닮아있어 마음이 평화로워지곤 했는데.
조경과 개·보수 공사를 비롯해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보살피고 가꾸는 일을 지난 23년간 맡아온 김근옥 씨가 공원의 나무를 그윽이 바라본다.
유엔기념공원에 오면 늘 궁금한 게 있었다. 사계절, 공원을 잘 가꾸는 분이 누구인지. 거위의 행방도 물을 겸 평소 눈여겨보았던 비닐하우스 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김근옥(62·부산 사하구 구평동) 씨를 만났다.

“꽃을 직접 키우시는가 봐요?”

비닐하우스를 보며 물었더니 웬만한 일년초 꽃들은 그곳에서 키워서 공원에 옮겨 심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나온 것은 흙이고 잔디고 나무고 버리는 게 별로 없어요. 나무도 고사하기 전 꺾꽂이를 해서 키우는 중이고요.”

같은 종이라도 외부에서 사와 키워보면 개화 시기부터 기존 식물과 다르다는 것이다. 각국 묘비 옆에 사각으로 각을 잡아 키우는 영산홍은 그가 가장 애정을 많이 가진 식물. 그런 영산홍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 가지를 꺾어 키우고 있는데 후에 고사한 데가 생기면 옮겨 심을 거라고 했다. 60년간 호위무사처럼 변함없이 참전용사들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의 대를 이을 비법이 거기 있었다. 김근옥 씨가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 공원을 사랑한 ‘맥가이버’

유엔기념공원 직원들이 함께 공원을 가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처음엔 감천(부산 사하구)에서 차량 정비를 했어요. 동료가 여기서 일했는데 시설팀에서 직원을 모집한다고 해 지원했어요. 이후 조경 일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98년도였으니, 근무한지 어느 새 23년. 올해 말 정년을 맞는다고 했다.

“조경 일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고, 시골에서 자라 몸에 밴 게 있었나봅니다.” 김근옥 씨의 고향은 전라남도 완도에 있는 섬마을 섭도. 자연산 풍란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 “동네사람들이 봉숭아처럼 흔하게 난을 키웠어요.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난을 키웠고요.”

부모님도 연로하시고 형제들과도 나이 차이가 많아 친구처럼 풍란에게 마음을 준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선친께서 솜씨가 좋으셨어요. 고향에서 호미며 낫이며, 목선도 만들고 집도 짓고, 어려서부터 그 일을 봐와서 형제 모두 손재주가 좋습니다.”

11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1979년 18살에 홀로 부산으로 오게 되었다. 다대포에 김과 미역 양식을 하는 작은집이 있어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미닫이 방 한 칸 얻어 사는데 부모님이랑 바로 위 누나가 보따리를 싸 들고 오셨더라고요.” 그 단칸방에서 부모님 모시며 차량 정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기술 배우는 야간학교를 다녔어요. 돈이 없어 라면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었지요.” 그때 라면만 먹지 말고 밥을 먹으라는 의사의 충고가 아직도 생각난다고 했다. 김근옥 씨가 유엔공원에 처음 왔을 때는 나무에 물을 주는 급수차가 없어 ‘고무다라이’에 물을 받아 주었다고 한다. 이후 정비공장에서 익힌 솜씨로 급수차는 물론 농약살포기, 청소장비 등을 직접 만들며 시설물을 늘려왔다.

도로공사, 울타리공사, 화장실공사 등 그가 초반부터 꾸준하게 한 일은 공원을 찾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 부대시설을 정비하는 일이었다. 창고를 보니 작은 예초기부터 잔디 깎는 대형 차량까지 수십 대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수입품이 대부분인데 지금도 그의 손으로 다 고친다고 했다. 가장 뜻깊었던 일은 시멘트였던 묘비 받침 2300개를 화강석으로 바꾼 일. 사무실을 비롯해 모든 동료의 노고로 이룩한 사업이었다.

“겹벚꽃 같은 아름드리 나무도 가지치기 하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면, 나이든 사람 키 줄 듯 줄어들고 있는 게 보여요. 위에서부터 조금씩 내려앉고 있는 거지요.”

몇 백 년 살 것 같아보여도 때가 되면 고사한다고 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게 그로선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다. 50년 된 무궁화가 있는데 식물학회에서 천연기념물 타진을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 살펴보니 그 무궁화도 속이 비어가고 있었다. 잘 가꾸어도 공원 환경 또한 인공적이라 산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나무보다 수명이 짧다고 했다.

꽃이 피는 시기는, 현충일과 6·25, 10월 24일 유엔의 날, 11월 11일 턴투워드부산(Turn Toward Busan) 기념식에 맞춘다고 한다. 턴투워드부산(Turn Toward Busan)은 11월 11일 11시 전 세계가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하는 애도 행사다.

■ 소중한 기록노트 수십 권

김근옥 씨가 후임에게 전하려고 성실히 써온 기록 노트.
한 폭 산수화 같은 소나무는 해마다 가지치기를 할 때 분재의 대가이신 박명섭(90·부산 동래구) 선생님을 모셔 도움을 받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놓친 부분은 없는지 나무 상태도 점검한다. 박명섭 선생이 키우던 나무를 기증받아 공원 한 편에 작은 동산을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김근옥 씨는 틈이 나면 제주도 수목원이나 광주 5·18 묘역, 현충원 등으로 답사를 간다. 거기서 현장 작업자와 만남은 필수. 후임자에게 전해줄 기록 노트가 수십 권. 수종별 전지 시기와 개화 시기 등을 기록해 왔다고 한다.

“빠르다 하면 늦추고 늦다 하면 당기고, 경험으로 조절해온 기록 노트예요. 정해진 날에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면, 이 일은 안 됩니다. 정답이 없으니 여기는 여기에 맞게 하는 게 정답이지요. 장미도 보면 직간성이 있고 반 횡간성이 있고 완전히 누워서 피는 것이 있어요. 여기서는 대부분 반 횡간성을 써요. 줄기가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살짝 휜 줄기의 꽃이 더 예쁩니다.”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공원을 가꾸어온 그에게서 공원과 인생을 통찰하는 아름다운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사람도 그렇듯 식물도 휘어짐의 미학이 중요하다는 것.

“여기는 공중으로 지나다니는 것은 구름하고 새 밖에 없습니다.”

전기, 수도 시설 모두 매립 형태로 되어 있는데 세월이 너무 흘러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해결하지 않은 부분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건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예산이 없어 그 일을 못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가 눈에 밟히는 일을 두고 퇴직할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뒤늦게 거위의 행방을 물었다. 배설물 때문에 민원이 자꾸 들어와서 진주에 있는 거위농장에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거위는 십 오륙년 전, 경산 거위농장에서 김근옥 씨가 직접 사왔다고 했다. 키운 정이 아직 있는지 트럭에 실려 보내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김근옥 씨의 인생사를 듣는 자리는 유엔기념공원의 역사를 듣는 자리가 되었다. 정년을 앞둔 김근옥 씨에게 소감을 묻자 여기서 일하는 동안 참으로 행복하였노라고 답했다. 더불어 사무실직원과 같이 일해온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미리 전했다.

시민기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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