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7개 과제 신규 조사 예정
- 당시 시위대 총기로 조작 가능성
- 항쟁 전후 상담지도관실도 대상
- 실태파악 위해 기간 연장 필요성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위원회)가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신규 과제를 지정해 조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은 오는 12월을 끝으로 공식 종료될 예정이라 활동 연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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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시위 현장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한 사제 총기. 국제신문 DB |
위원회는 항쟁 진상규명 신규 7개 과제를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박정희 정권 산하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항쟁의 진실을 조작하고 시위를 탄압한 구체적 과정에 초점이 맞춰졌다.
눈길을 끄는 과제는 ‘마산 사제 총기 사건’의 진상이다. 그해 10월 18~19일 마산(현 경남 창원시)에서 항쟁이 일어난 직후인 20일, 최창림 당시 마산경찰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총기를 근거로 “배후에 조직적 불순세력이 개입된 징후가 농후하다”고 발표했다. 18일 밤 10시 마산시 창동 황금당 골목 시위 현장에서 누군가 총기를 발사했고, 이를 본 시민이 그를 추격하자 총을 버리고 도주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시위대 속에서 항쟁 참여자를 쏴 군중을 흥분시킨 뒤 당국에 발포 책임을 전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시위대에 ‘불경’ 딱지를 붙이기 위한 조작이었다는 것이 현재 평가다. 경찰이 공개한 총기는 길이 15㎝(총신 10㎝)로 사인펜만 한 크기였다. 손잡이가 없이 스프링 고리를 젖혀 발사하는데, 당시 회견에서 총기를 본 기자들은 ‘엉터리’란 반응을 보였다.
쟁점은 어떤 경위로 사제 총기가 항쟁의 배후 세력을 조작하는 데 동원됐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실마리가 될 만한 중앙정보부 자료가 최근 새롭게 발견됐다. 502보안부대는 그해 10월 19일 민간인 황모 씨가 만년필 형의 길이 10㎝짜리 총기와 실탄을 발견해 신고했다는 문서를 만들었다. 당시 경찰이 발표한 총과 보안대 문건에 기록된 총이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경찰이 군으로부터 총기에 대한 정보를 받은 뒤 이를 시위 여론 악화용으로 조작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위원회는 또 항쟁 전후 각 대학에 설치된 ‘상담지도관실’의 구체적 역할을 조사할 예정이다. 상담지도관실은 1970년대 등장한 직책인데 상담을 명분으로 운동권 학생을 관리했고, 부마항쟁 때 ‘시위 세력 색출’에 가담했다고 기록돼 있다.
문제는 위원회의 공식 활동 기간이 곧 끝난다는 점이다. 2014년부터 진상 조사 보고서 발간 작업을 시작한 위원회는 지난 6월 활동 기간이 종료됐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까지 진상 조사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활동 기간 3년 이내 연장과 조사 인력 확충을 골자로 한 ‘부마항쟁보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위원회 관계자는 “기존 과제와 신규 과제를 마무리하는 데 3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활동 연장 필요성을 설명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