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대법원은 김대근 부산 사상구청장의 공무집행방해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2019년 8월께 날아든 정체불명의 메일 한 통에서 시작됐다. 발신인은 대뜸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김 전 구청장이 저지른 부정을 고발하겠다며 기자에게 만남을 청했다. 반신반의했다.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발신인은 선거캠프 핵심 관계자였다. 그는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했지만, 곧바로 증거를 건네지 않았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그를 향한 답답함이 균형을 이룰 무렵 비로소 약 12분 분량의 녹취 파일을 받았다. 재생 버튼을 누른 후 그의 주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고스란히 녹음돼 있었다. 오로지 후보자 토론회를 피하겠다는 일념 아래 김 전 구청장과 선거 캠프 관계자들은 주도면밀하게 고의 교통사고를 모의했다. 충돌 시점과 장소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을 넘어, 사고 직후 갈 병원과 예기치 못한 부상자 예방 방안도 논의했다. 심도 깊은 대화는 김 전 구청장의 “그래 합시다”는 말로 끝났다.
가슴 뛰는 특종을 잡았다는 두근거림보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몇 번이고 녹음 파일을 돌려 들었다. 상대방 후보의 검증이 두려워 거짓 교통사고가 필요했겠느냐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시간에 지역 현안을 파악하고 정책을 다듬었다면 2년에 걸친 ‘구청장 리스크’로 구정이 정체되고 직을 잃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고의 교통사고는 계획에 그쳤지만, 김 전 구청장의 토론회 공포는 집요했다. 알고 지내던 의사에게 ‘급체’라는 옹색한 병명이 적힌 허위진단서를 선관위에 제출해 끝내 토론회에 나가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아, 이중장부로 치밀하게 관리했다. 비록 김 전 구청장은 지역 현안에는 어두운 후보였지만, 정치 신인답지 않게 한국 정치의 어두운 부분에는 무척이나 밝았다. 혐의를 인정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녹취와 증거물”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1심 재판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죄를 뉘우치고 선처를 구하기보단 녹취 파일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카드를 빼 들었다.
김 전 구청장의 변명에 1심 재판부는 단호했다. 정치자금법 위반이 그의 운명을 결정 지을 거란 예상과 달리 법원은 토론회 불참과 그 과정에 주목했다. 당시 재판부는 “선거인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돕고자 도입한 토론회를 무력화했고, 알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에서 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장의 선고 이유를 듣는 김 전 구청장은 생각지 못한 전개에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쳤지만 그는 어떤 혐의도 벗지 못했고, 형량도 줄지 않았다.
대법원의 최종적 단죄가 이뤄졌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특히 김 전 구청장은 구청을 떠나며 진심 어린 사과 대신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남기고 떠났다. 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비롯해 정치권의 반성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한다. 줄 세우기가 아닌 능력 있는 이를 공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토론회를 회피하는 이를 엄벌해야 한다. 여야는 사상구청장 수성과 탈환에 매몰될 게 아니라, ‘제2의 김대근 사태’를 막을 대책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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