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최근 원자폭탄 피해자의 범위를 늘리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낙진 구역’ 밖에서 피폭을 당한 사람도 피폭자로 인정해야 된다는 이른바 ‘검은비’ 소송 판결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달 원폭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 상고하지 말 것을 법무성과 후생노동성에 지시했다. 앞서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미군의 원폭 투하 당시 국가가 인정한 피해지역을 벗어난 곳에 있다가 피폭 당한 84명이 히로시마현을 상대로 제기한 피폭자 건강수첩 교부 불허 처분 취소 항소심에서 국가 측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방사능에 의한 건강피해가 부정될 수 없는 점을 입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원고가 피폭자에 해당한다는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 소송은 1945년 미군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1976년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낙진이 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히로시마시 피폭 중심지에서 북서쪽으로 길이 19㎞, 폭 11㎞으로 설정(특례구역)했다. 특례구역 안쪽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무료 건강진단 등의 혜택을 줬다. 하지만 피폭 중심지에서 약 8~29㎞ 떨어진 곳에 있던 히로시마 주민들은 낙진을 맞고도 피폭자 관련 법안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건강수첩을 받지 못한 피폭자들은 2015~2018년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갔고, 지난해 7월 29일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미군이 원폭 투하 이후 히로시마에 설치한 원폭상해조사위원회(ABCC·현 방사선 영향연구소)는 일본 원폭 투하 직후 보고된 피폭자 9만4000여 명과 일반인 2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수명조사(LSS)를 진행한다. 하지만 ABCC의 연구에는 낙진으로 인한 피해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원폭 투하 당일부터 낙진이 내렸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ABCC가 낙진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피해를 축소하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