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도심 빈집 작업실로 활용하려
- 우연히 동네 찾은 박보은 대표
- 낡고 쇠락한 이미지 쇄신 위해
- ‘낮은 건물과 밤풍경’ 로고 제작
- 수건·가방·컵 등 굿즈도 만들어
- 마을 어르신과의 유대감 형성
- 공동체 활성화 위해 각종 활동
- 최근 주민 10명 인터뷰집 준비
- 동네 정체성 형성에 온 힘 쏟아
부산 중구 영주동은 ‘부산의 달동네’를 상징하는 지역이다. 원래 초량왜관의 일본 전관 거류지로, 조선 사람은 살지 않았던 곳이다. 그러다 구한말 부산항이 열리면서 전국의 상인과 항만 노동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국 전쟁 때는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이 더해져 판자촌 마을을 이뤘다.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강제 철거 및 이주가 일어난 아픔을 간직한 동네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강제 이주지였던 금정구 서동에는 당시를 떠올리는 노인이 더러 남아 있다. ‘고바이(비탈길의 일본말)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영세한 동네’. 비단 당대 이곳을 살아간 이들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영주동의 모습은 부산사람 모두에게 늘 이처럼 기억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영주동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이곳 역시 삶의 소중한 기억이 반짝이는 ‘나의 마을’이다.
지난해 영주동에 뿌리를 내린 로컬 크리에이터 단체 영유아(Young You Are)는 이 달동네가 얼마나 빛나는 곳인지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여기에 마을에 예술과 문화를 더해, 이곳을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마을 깊숙이 스며든 청년 예술가
영유아는 영주동이란 공간에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른바 도시 브랜딩이다. 영주동에 대한 인식을 ‘원도심의 흔한 고지대 달동네’에서 ‘산복도로에서 바라본 부산항과 부산대교의 반짝이는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로 바꾸는 게 이들의 일이다. 이를 위해 영유아는 영주동의 특징을 시각화한 로고(사진)를 만들었다. 낮은 건물이 동네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는 점, 그 덕에 작은 창문으로도 동네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형상을 그렸다. 여기에 따뜻한 계열의 색 4가지를 선정해 채색했다. 이 모든 걸 종합해, 창문 너머로 다채로운 색의 낮은 집들 너머로 하늘이 빛나는 모습의 ‘영주동 심볼’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로고는 수건이나 에코백 머그잔 라이터 등 영유아가 만드는 다양한 굿즈에 활용되고 있다. 굿즈는 영유아의 자회사 격인 ‘로크 스튜디오’를 통해 판매 중이다.
이런 활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영주동 공동체의 활성화다. 영유아는 이곳 주민을 대상으로 주기적인 독서·영화 모임이나 아침 식사 행사 등을 열고 있다. 주민과 함께 마을에서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챌린지’, 지역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진 촬영 교육 및 마을 사진 전시회 등도 개최했다. 최근 들어서는 마을 주민 10명의 영주동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담은 인터뷰 북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영유아 박보은(23) 대표는 “누군가 선뜻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게 주민에게는 낯선 경험이었을 거다.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나중에는 웃음을 보이며 행복해하셨다”며 “이렇듯 공동체에 뿌듯함을 안기는 게 영유아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작업 공간과 생활 기반이 구분되는 다른 단체와 달리, 영유아는 이 마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박 대표는 영주동에 정착한 이후 주민협의체에 가입해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주민이 함께 진행할 만한 기획 사업을 궁리한다. 동네 어르신들과의 견해차 탓에 기획을 놓고 ‘지지고 볶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느 사람 사는 곳이 그렇듯, 제사 음식을 나눠 먹거나 함께 술잔을 부딪는 것으로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고 한다.
■우연히 맺은 인연…
영유아가 영주동에 정착한 건 우연이었다. 지난해 7월 부산문화재단은 원도심의 빈집을 활용해 청년 예술가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청년 마을 놀이터’ 사업의 희망자를 공모했다. 작업실을 구하는 비용에 어려움을 겪던 영유아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사업에 응모한 영유아는 그렇게 한 때 동네 교회의 사택으로 쓰였던 지금의 공간에 입주하며 영주동과 인연을 맺게 됐다.
영주동의 일원이 되기 전 영유아는 부산의 공간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실제 사진과 일러스트를 합성하는 매트 페인팅(Matte Painting) 기법을 이용해 부산의 풍경과 유명 영화의 한 장면을 합쳐 가상의 새 공간을 만들어냈다. 산과 바다가 모두 있는 부산은 공간을 표현하려는 예술가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매우 훌륭한 소재였다. 여러 전시회를 통해 이 같은 작업의 결과물을 선보여 호응을 얻은 것을 계기로 영유아는 부산이라는 로컬을 작품의 원료로 쓰기 시작했다.
어쩌다 시작된 인연이지만, 이제는 영주동을 알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영주동에 자리한 다른 단체들과도 협업하고 있다. 지난달 17일부터 20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1 부산디자인위크’에 이웃의 다섯 단체와 함께 ‘부산도시현장지원센터’ 부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산리협동조합’은 건강한 요리 양념 5종 선물세트, ‘인파크 커피’는 쿠키와 더치커피, ‘글마루도서관’은 글마루 랜덤 북 패키지, ‘게네랄파우제’는 영주동 블렌딩 커피인 ‘우리 영주’, 영유아는 영주동 로고를 넣은 다양한 상품을 전시·판매했다.
박 대표는 “처음 이곳에 입주할 당시 면접에서 ‘왜 지원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작업 공간이 없어 카페를 전전하기 싫다, 커피로 작업 시간을 사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영주동을 잘 알지 못했다”며 “이제는 지역주민과 여러 단체 등과 네트워크를 맺으며 영주동을 떠나기가 겁나는 처지가 됐다. 영유아가 영주동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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