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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청년과, 나누다 3 <3> 여용기 테일러

예순 넘어 다시 잡은 재단가위…청년들, 저처럼 늙고 싶다네요

  • 이동윤 기자 dy1234@kookje.co.kr
  •  |   입력 : 2021-07-11 19:58:08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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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아홉살에 처음 접한 재단의 길
- 광복동 양복점 인수해 승승장구
- 80년대 기성복 유행에 가게 접어
- 막노동·술집 운영으로 생계 꾸려

- 결혼 앞둔 둘째아들 예복 부탁에
- 예순둘 나이로 다시 패션계 복귀
- 최신 양복 트렌드·SNS 공부 덕
- 이젠 전국서 손님 찾는 유명인사

- “40살 터울 동료와도 스스럼없어
- ‘한국의 닉우스터’에 그치지않고
- 남은 인생도 끊임없이 도전할 것”

20년 넘게 맞춤 양복을 고집하던 사장은 1980년대 대기업이 기성복 시장에 진출하자 간판을 내렸다. 술집을 열었으나 망했고 20년 넘게 막노동과 주차요원을 전전했다. 운명처럼 그를 패션업계로 복귀시킨 것은 결혼을 앞둔 아들의 한 마디. “아버지가 예복 만들어주세요.” 다시 가위를 잡은 그는 SNS에서 트렌드를 공부해 미노년(美老年) 트렌드를 창조했다. ‘한국의 닉 우스터’로 불리는 여용기(69) 테일러 이야기다.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 기회는 누구에게든 온다. 60 넘은 나이에 도전한 나를 보라”고 했다. 최근 부산 중구 광복동에서 그를 만났다.
   
20여 년 만에 현업으로 복귀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에르디토의 여용기 테일러가 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오찬영 PD
■인연으로 출발한 재단사의 꿈

여용기의 재단사(史)는 인연으로부터 출발한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여 씨는 고교 진학을 위해 17살에 부산으로 향한다. 사촌누나 집에 머물며 공부했으나 낙방. 기술을 배우려던 그에게 사촌누나는 양복점을 운영하는 지인을 소개했다. “견습생으로 들어가 원단 사오고 양복점 바닥 청소하면서 곁눈질로 선생님들 바느질을 지켜봤죠.”

바느질과 가봉, 미싱하는 법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후 19살에 만난 김범두는 여 씨를 재단사로 키운 스승. 여 씨는 스승을 떠나 22살 광복동의 한 양복점에 취업해 본격적인 재단사의 길을 걷게 된다. 25살에는 양복 1급 기능사 자격도 취득했다. “젊을 때 미래를 준비한다는 생각에 주경야독 했습니다. 자격증이 있으면 양복 기술 학원을 직접 운영할 수 있었거든요.”

기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여 씨가 재단사로 일하던 ‘모모 양복점’ 사장이 개인 사정으로 관두게 된 것. 29살 나이에 양복점을 인수한 그는 하루 다섯 벌의 양복을 주문받을 만큼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이런 호황의 배경에는 당시 분위기도 한몫 했다. 1970년대 광복동은 ‘남한 패션의 메카’로 불릴 만큼 의류 산업의 중심지였다. 웬만한 서울 번화가만큼 맞춤양복의 가격도 비쌌다.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선박이 세계 패션유행도 함께 들여왔어요. 선장한테 외국 패션잡지를 사오라고 부탁하기도 했죠. 수입이 제한 된 외국 원단은 밀수로 들어오기도 했는데 그 만큼 새로운 것을 습득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위기 속에서 얻은 기회

   
모모양복점을 운영하던 1982년 당시 여용기 테일러. 여용기 테일러 제공
영원할 것 같았던 맞춤복 시장은 1980년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제일모직·반도상사와 같은 대기업이 기성복 시장에 진출해 직매장을 늘리고 백화점을 공략했기 때문. ‘양복=맞춤복’이라는 불문율이 깨지자 맞춤 양복점들이 하나 둘 경영위기에 내몰렸다. 여 씨도 9년간 운영한 양복점 문을 닫았다. “양복점뿐만 아니라 양화점·구두방을 운영하던 광복동의 자영업자들이 떠나기 시작했어요. 소상공인이 대기업을 상대하기는 불가능했으니까. 변화의 흐름을 빨리 파악하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한 아쉬움도 컸습니다.”

20년간 청춘을 바친 재단 일을 내려놓자 그의 인생도 흔들렸다. 문 닫은 양복점 자리에 술집을 차렸는데 2년 만에 폐업했다. 아이들을 키우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건설업과 주차요원 생활을 20년 넘게 한 이유다. “터널이 너무 길었어요. 그래도 자식들을 키워야 하니 몸이 망가지지 않게 절제된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그를 패션계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은 둘째 아들의 결혼식. 2014년 여 씨는 아들 예복을 만들기 위해 원단 대리점을 운영하던 친구를 찾았다. “이틀 뒤 그 친구가 전화를 하더니 ‘알고 지내는 양복점에서 재단사를 구하는데 현업에 복귀할 생각 없느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망설이다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죠. 마침내 복귀 했을 때는 당시 유행하던 트렌드를 잘 몰라 애를 먹었어요. 고객이 ‘슬림하게 해 주세요’라고 하면 ‘슬림이 뭐고?’ 라고 되묻기도 했죠.”

예순이 넘어 바느질을 다시 하게 된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맞춰 나가기’. 40살 터울의 ‘젊은’ 동료들과 술 한잔하거나 번화가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최신 트렌드를 공부했다. 지금의 여 씨를 ‘스타’로 만든 인스타그램 사용법도 이때 배웠다. “처음에는 시간을 많이 뺏길까 봐 걱정했어요. 지금은 제가 직접 코디 아이디어도 내 SNS에 올릴 사진을 찍습니다. 젊은 친구들과 패션 트렌드를 함께 이끌어간다는 뿌듯함도 있습니다.”

   
여용기 테일러가 직접 코디해 업로드하는 SNS. 젊은 친구들과 패션 트렌드를 함께 나누는 장으로 활용한다. 인스타그램 캡쳐
■실패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여 씨는 201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 ‘피티 워모’에 참석했다. “바이어들 만나서 내 작품에 대한 평가도 듣고 원단 공부도 하러 직물공장에 자주 갔어요. 그곳에서 만난 사진작가들이 제가 모델인 줄 알았는지 계속 찍더라고요. 나도 직업 모델들 사진을 찍으면서 그들과 어울렸습니다. 큰 시장을 보면서 ‘아직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탈리아를 다녀온 여 씨는 2016년 현재 대표와 함께 ‘에르디토’를 개업했다.

인스타 마케팅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매년 15~20%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여 씨 사진을 보고 방문하기도 한다. 30년 가까이 옷을 만든 여 씨가 생각하는 좋은 옷의 기준은 뭘까. “편안한 옷이 최고입니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여러 사람이 봤을 때 불편함이 없는 옷이라면 뭐든 좋은 패션이죠.”

10년 뒤 어떤 평가를 듣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요즘도 종종 ‘여용기 선생님처럼 늙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몸가짐을 조심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인생이 100쪽 책이라면 저는 70쪽 가까이 왔습니다. 거기에는 성공과 실패가 모두 들어있어요. 고난과 실패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니 쓴 맛을 봐도 크게 좌절할 필요가 없어요. 제 책의 나머지 30쪽이 무슨 내용으로 채워질지는 나도 아직 몰라요. 그래서 도전을 계속할 겁니다.”

이동윤 기자

※제작지원 : BNK 부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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