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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21> 억장과 억장 ; 억의 뜻

  • 박기철
  •  |   입력 : 2021-07-05 19:48:1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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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만 해도 백만장자는 엄청난 거부였다. 1970년대에 ‘육백만 달러의 사나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그 만큼 엄청난 돈을 들여 재활시킨 남자라는 뜻이었다. 백만장자는 최소 일백만 달러를 가진 부자다. 10억 원 정도다. 6백만 달러라고 해봐야 100억 원이 안된다. 물론 큰 돈이다. 하지만 웬만한 아파트 한 채가 10억원이 넘는 요즘 시대에 백만장자는 큰 부자가 아니다. 이제는 억만장자가 부자다. ‘Six Million Dollar Man’은 ‘Six Billion Dollar Man’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억만장자(Billionaire)는 10억 달러를 가진 부자다. 우리 돈으로 대략 1조 원이다. 그냥 부자가 아니라 거부다. 연매출 1조 원도 큰 회사인데 개인 재산이 1조 원이라니? 그런 대부호가 우리나라에도 여럿 존재한다. 세계 최고부자는 1조를 넘어 수백 조, 수천 조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조가 만 개나 있는 1경 원 재산의 슈퍼-울트라-하이퍼-메타 리치도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도 믿겨지질 않는다.

   
가슴 속 억장(臆臟)엔 달까지 억장(億丈) 길이의 마음
어쩌다 오십여 년 만에 백만장자가 억만장자로 팽창하였을까?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압축팽창 시대다. 가장 많은 수가 열(10)에서 온(100)이 되기까지 수만 년, 온에서 즈믄(1,000)이 되기까지 수천 년, 즈믄에서 드먼(10,000)이 되기까지 수백 년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드먼이 백 개나 있는 백만(1,000,000)이 그 천 배나 되는 10억(1,000,000,000)이 되기까지는 수십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부자의 대명사가 백만장자에서 억만장자로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1960년생인 필자는 그런 압축적 팽창의 시대를 여실히 살아온 세대다. 가히 숫자의 폭발적 인플레이션이었다.

억(億)의 만 배인 조(兆)가 있어도 아직 현대인에게 억은 가장 많은 수를 상징한다. 지구 역사가 46억 년이니 억 단위는 가장 긴 세월이다. ‘억 소리난다’에서 억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억(億)이 아닐까? 억수로 퍼붓는 비는 빗방울이 억 개나 쏟아붓는 세찬 비가 아닐까? 경상도 말로 무척(very much)을 뜻하는 ‘억수로’는 억수(億數)보다 이 억수(億水)에서 유래한 말이 아닐까?

   
그런데 ‘억장이 무너진다’는 무슨 뜻일까? 억장(億丈)이라? 한 자가 약 30cm인데 그 열 배인 한 장(丈)은 약 3m다. 억장은 3억m이니 30만km다. 지구 둘레 약 4만km보다 8배 가까이 길며 달까지 거리인 38만km에 가깝다. 억장이 무너지기 전에 그만한 길이의 뭔가를 쌓아 올리는 것부터 불가능하다. 아무리 과장법 표현이라도 억장은 너무 길다. 그래서 필자의 개인적 주관적 자의적 사견으로 풀자면 억장은 억장(臆臟)같다. 가슴 억(臆) 내장 장(臟)인 가슴장!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단다. 가슴에 담긴 복잡다단한 사람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30cm 한 길=한 자=한 척=한 뼘에 불과한 가슴 속 마음이다. 한 사람 몸속 미세혈관을 다 이으면 10만km가 넘는다는데 우리 가슴 흉부에 담긴 미묘하며 다양한 감정들을 하나로 잇는다면 그 길이가 억장(億丈) 정도 되지 않을까? 머리에서 가슴까지 길이가 세상에서 가장 멀며 길단다. 그래서 억장이 억장(億丈)이라면 이해가 간다. 이 억장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우리 가슴장인 억장 속 감정들의 길이를 백만장(百萬丈) 정도로 줄이면 어떨까? 가슴 속 마음을 좀더 단순하게 하여 단순하게 살자는 뜻이다. 요컨대… Simple life!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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