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의 한 조선소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던 노동자 2명이 황화수소 등에 노출돼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2019년 수영구 공중화장실에서 황화수소 누출로 여고생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지 2년도 안 돼 비슷한 일이 발생해 부산시의 관리에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황화수소, 왜 역류했나?
사하경찰서는 지난 26일 오전 11시4분 사하구 구평동의 한 조선소 건물 옆 1층 화장실에서 40대 A 씨와 20대 B 씨가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해당 조선소의 협력업체 직원들로 화장실에서 고농도의 황화수소와 암모니아를 마셔 쓰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방에 따르면 사고 당시 화장실에서는 황화수소 농도가 안전수치(15ppm)의 16배를 넘는 250ppm으로 측정됐다. 경찰은 가스 냄새가 많이 나 여러 차례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업체 측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황화수소는 흡입하기만 해도 질식을 일으킬 수 있는 독성 가스다. 2018년 사상구의 폐수처리 업체에서 작업 도중 발생한 황화수소에 중독된 근로자 3명이 숨졌다. 2019년에는 수영구 민락동 회센터의 지하 공중화장실에서 한 여고생도 황화수소에 노출돼 의식을 잃은 뒤 61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부산환경공단 등 유관 기관은 유독가스의 역류를 방지하는 장치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고가 난 화장실은 별도의 정화조 없이 분뇨를 곧바로 분류식 오수관거로 보내도록 설계됐다. 이 경우 냄새나 가스가 관을 타고 다시 화장실로 유입될 확률이 매우 낮다.
그런데도 역류가 발생한 데는 크게 2가지 가능성이 거론된다. 먼저 양변기의 분뇨를 받는 지관과 주 오수관을 잇는 지점에 설치되는 역류 방지 패킹이 탈락한 경우다. 이때는 분뇨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해 양변기 아래에 쌓여 썩게 돼 가스 차단이 불가능하다.
배관의 트랩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언급된다. 배관 트랩은 배수관으로부터 오염 물질이나 냄새가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설계인데, 배관 안에 일정량의 물이 고이도록 해 이 물이 가스의 유입을 막는다. 모종의 이유로 배관에 문제가 생겼다면, 가스를 막아내지 못했을 수 있다. 관계 기관은 역류가 발생한 구체적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28일 합동으로 사고 현장을 점검한다.
●민간 화장실, 점검 필요성 커도 대책 無
해당 화장실은 사하구 등 지자체의 지도 점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자체는 화장실이 아니라 화장실에 딸린 정화조 등을 점검한다. 그런데 해당 화장실은 정화조가 없었다. 이번 사고처럼 정화조가 없더라도 가스 역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인명사고 예방은 개인의 성실한 관리에 맡겨져 있다. 김태석 사하구청장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공중화장실부터 시작해 관내 전체 화장실을 점검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관리 감독의 필요성은 민간 영역에 더욱 절실하지만, 시의 대책은 공공 영역에만 국한됐다. 시는 2019년 수영구 사고를 계기로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하수관거로 직접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오수처리시설이나 정화조가 없으면 가스가 화장실 배수구로 유입되는 일이 사실상 차단된다.
2019년 9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공중화장실 배수설비 연결 정비방안 수립 용역을 시행한 시는 121곳의 화장실 중 분류식 오수관거가 설치된 56곳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공중화장실 등 공공에서 관리하는 화장실만 해당된다. 이번 사고가 난 화장실처럼 민간이 운영하는 곳은 애초부터 사업 대상에서 빠졌다. 합류식이 깔린 곳의 하수처리시설 점검 또한 기장군·강서구의 마을 단위 오수관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시 관계자는 “민간의 화장실은 엄연히 개인 소유의 재산이기 때문에 정화조 폐쇄 등을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지열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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