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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의 페미니즘을 읽다<5> 20년간 여성인권을 위해 싸워 온 김수정 변호사

'아주 오래된 유죄' 작가...법무법인 지향 소속

호주제 낙태죄 양심적병역거부 위헌 결정 이끌어

지난해 대한변호사협협회 변호사 공익 대상 수상

  • 류제성 부산시 감사위원장
  •  |   입력 : 2021-06-26 08: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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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변호사
4회 방송은 <아주 오래된 유죄 -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여성을 위한 변론/한겨레출판>의 작가,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님과 함께 했습니다. 김 변호사님은 20년간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소수자·약자를 위한 변론에 매진해 왔습니다. 특히 보통의 변호사들은 평생 한 건도 받아내기 힘든 위헌 결정을 호주제, 낙태죄, 양심적 병역 거부 등 세 건에서 받아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고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에는 대한변협으로부터 변호사 공익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떻게 20년간 한결같이 인권과 공익을 위한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요? “여성들의 싸움은 가끔 승리하지만, 많은 경우 여전히 패배”하는 싸움이고 “법정 싸움은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의 최후의 싸움이고 승리의 기약도 없이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싸움”(11쪽)인데 말이죠. 저의 질문에 김 변호사님은 자신은 평범한 법무법인에서 일반적인 법률업무로 밥벌이하는 변호사일 뿐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가 아니다, 다만 꾸준히 하다 보니 다양한 사건을 많이 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 소수자·약자와 관련한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직업으로 변호사를 택했고, 무엇보다 포기하거나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싸움을 이어나가 끝내 사회도 변화시킨 당사자들이 있었고, 이들과 연대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법무법인 지향의 동료들이 있어서 꾸준히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김 변호사님 자신이 여성으로서 직접 겪은 부당한 차별, 무시, 모욕도 여성인권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가 되게 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생각해보면 여성으로서 나는 늘 긴장된 삶을 살아왔다. 학생일 때도, 어른이 되어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뒤에도, 언제 어디서 내가 여성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성희롱·성폭력에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나의 능력이 저평가될까 봐 긴장하고 또 긴장하며 살아왔다. … 어디 나뿐인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뒤, 연극계·문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이어진 여성들의 성희롱·성폭력 피해 사실 고발과 이에 연대하는 해시태그 미투운동을 보며 나는 격려의 박수를 치기보다 속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전히 여성의 삶은 고단하다는 사실, 그리고 오직 위안이 되는 것은 ‘나도 겪었다’고 외치는 슬픈 연대라는 사실 때문에”(44쪽)

김 변호사님은 나이, 경력, 직업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고 어느 정도 알려지기도 해서 이제는 면전에서 대놓고 무시당하는 일은 잘 없지만, 자신에 대한 인정은 성중립적인 인정이 아니라 늘 “여자가 이렇게 똑똑해?”, “여자가 여기까지 왔는데 역시나 별로 일을 못하네.” 식의 평가 속에 노출되는 삶을 살아왔다고 합니다. 이제 직접 당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직접 당하는 것과 똑같은 모욕감을 느끼고, 사회 초년생이거나 소수자의 경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바로 항의하기 어렵고, 막상 당시에는 당황해서 혹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힘을 이용해서 참지 않고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오래 싸워왔으니 여성인권은 향상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없어졌을까요. 김 변호사님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내가 꿈꾸던 미래는 새로운 것이 가득한 세상이었는데, 막상 맞이한 건 아주 오래된 것들이 더욱 썩고 부패해 냄새가 진동하는 미래였다”(27쪽). 책 출간을 즈음한 인터뷰에서는 호주제 폐지, 낙태죄 폐지 등 법과 제도의 양적 변화는 많이 있었지만 성별 임금격차, 높은 비정규직 여성 비율, 여전한 일터에서의 성희롱·성폭력 등 여성의 신음소리는 계속, 너무 많이 들리고 있고, 의식 전환이 양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사회적 박탈감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경우도 많아 여성 인권의 질적 변화를 느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김 변호사님은 좌절과 비관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른 새벽, 희망의 좌절보다 희망의 실현을 믿고 싶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보다 공감의 언어가 훨씬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믿고 싶다.”(53쪽) 이렇게 믿어야 하는 이유는 “여성들의 싸움은 돌을 굴려 산 정상에 올려놔도 내일 다시 또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스의 절망과는 다른 것”이고, “같은 싸움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같은 싸움은 없다. 포기하지 않은 싸움에는 늘 한발 전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12쪽)일 것입니다(12쪽).

여성인권을 위한 20년간의 법정 투쟁기

   
김 변호사님은 2018년 낙태죄 위헌소송 대리인단의 일원으로 헌재 공개변론에서 한 최후변론 원고를 한겨레신문에 기고했고 이를 본 출판사가 ‘여성을 위한 변론’이라는 주제로 책을 집필할 것을 제안했는데, 여러 번 고사했으나 부족하지만 법정에서 마주한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글로 쓰고 공유하는 것이 변호사로서 마지막 변론이 아닐까 생각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20년 전 수지 김 사건부터 최근 디지털 성착취물 사건까지 김 변호사님이 20년간 직간접적으로 변론에 참여한 여성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사건과 법적 쟁점 전반을 다룬 여성인권 투쟁기이자 한국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낸 보고서입니다.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법적 쟁점이지만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 가독성이 높습니다. 자신을 법정 드라마의 멋진 영웅으로 과시할 만도 하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존엄을 잃지 않는 당당한 여성을 주연으로 드러냅니다. 피해자들의 끔찍하고 비참한 사연을 소재화하지 않고 함께 분노하고 눈물 흘리면서 또 다른 피해자를 낳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합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책의 1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는 성희롱·성폭력, 디지털 성범죄, 아동성매매 등을 다룹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공감하고, 가해자를 걱정하고 배려하며 피해자의 행실을 비난하고, 가해자의 성욕을 부추겼고 결사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린 수사·재판 관행과 성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한 수많은 평범한 남성들이 ‘조주빈’을 키웠고 피해자를 양산해 왔다고 지적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사건은 ‘56년만의 미투’로 널리 알려진 최말자님의 재심사건입니다. 재심을 청구하기 56년 전, 재판부는 성폭력에 저항하다 혀를 깨물어 절단되게 한 최말자님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기는커녕, ‘젊은 청년을 불구로 만들었다, 사춘기 처녀가 자유의사로 따라간 것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소치이다, 남자로 하여금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착각과 키스 충동을 불러일으킨 도의적 책임이 있다,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어 130일간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하고 실형을 선고하였고, 심지어 재판과정에서 ‘어짜피 이런 험한 일 당한 처녀가 혼인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남자도 불구의 몸으로 혼인이 어려울 것이니 둘이 혼인하라’고 지속적으로 설득했다고 합니다. 반면 가해 남성은 강간미수나 강제추행으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흉기를 들고 최말자님의 집에 침입해 생명을 위협했음에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최말자님보다 경한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앞서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 <디어 마이 네임>에서 보았던 바대로 한국에서도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판결이 최소한 56년 이상 계속되어왔던 것입니다. 최말자님은 그 억울함을 평생 풀지 못하고 70을 넘긴 나이에 미투 운동을 보고 자신의 피해를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내 후손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여성단체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최근 대법원은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있어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면서 피해자의 진술을 일단 의심하고 ‘피해자다움’이라는 상을 세워 놓고 그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을 배척하지 말라는 판결을 일관되게 선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김 변호사님도 어렵지만 재심청구를 해 볼만 하다고 기대를 가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재심재판부는 지금 기준으로는 과거 판결이 부당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당시 시대상황상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위법한 재판이 아니라고 하였고, 그러면서도 최말자님을 위로하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런 판결을 했을까요. 여기 존엄성이 침해되어 고통받는 구체적 인간 앞에서, 그런 터무니없는 판결을 뒤집지 않고 유지해서 얻는 공적 이익이나 가치가 과연 무엇일까요.

그러면서 굳이 사족은 왜 달았을까요? 비록 재심청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자신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최말자님은 판결에 분노하면서도 꿋꿋이 싸우고 있고 그 옆에 김 변호사님이 있으니 결국 너무나 늦은 정의이지만 결국 이루어지리라 믿어 봅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최근 정창국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대법원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남발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는 기사가 보도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판결이 논리적·법리적으로 부당한지, 하급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한 사건의 비율이 다른 사건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에 대한 통계적 근거는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한 ‘레깅스 사건’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은 피고인이 버스에서 내리려고 레깅스를 입고 서있는 피해자의 뒷모습을 몰래 8초 동안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불법촬영죄로 기소된 사건입니다. 정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엉덩이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하지도 않았고 통상적인 시야에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한 것에 불과하다, 레깅스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흔히 입는 옷이다, 피해자가 신고 직후 수사기관에서 한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진술로는 피해자가 느낀 감정을 불쾌함이나 불안감을 넘어 성적 수치심을 나타낸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 자신이 드러낸 신체라도 의사에 반한 성적 대상화를 거부할 자유가 있음을 확인하면서 “성적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분노 공포 무기력 모욕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고 이를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만으로 협소하게 볼 경우 “피해자가 느끼는 다양한 피해 감정을 소외”시키고 피해자로 하여금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왜 부끄러움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느껴야 할까요? 정 부장판사의 판단과 대법원의 판단 중 어느 판단이 상식적인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논리적, 실증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대법원 판결을 비난하는 현직 판사도, 그 주장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이론적 근거가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 하는 보도하는 언론도 너무나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들리는 비명

2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들리는 비명>은 가정폭력, 호주제, 배드파더스 초상권 침해 주장 사건, 결혼 이주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다룹니다. 가장 친밀하고 안전한 공간이어야 할 가정에서도 여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저는 막연히 가정폭력은 후진적인 범죄이고 웬만큼 배우고 최소한의 교양을 갖춘 남성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여성도 당하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 변호사님은 최근 워낙 극악하고 잔인한 성폭력 사건이 다수 발생해서 상대적으로 가려질 뿐 지금도 심각한 가족폭력은 계속되고 있고,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아동들이 자라서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엄마에 대한 원한으로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는 폭력의 대물림도 자주 나타나고 있음에도, 가정폭력 관련법은 여전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가족 구성원 개인의 인권 보호보다 건강가정 회복이라는 목적이 우선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언어적 장벽으로 자녀와의 원활한 소통도 어려울 정도로 취약한 상태에 있는 결혼 이주 여성은 동등한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상적이고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성차별적이고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구조와 인식이 여전한데, 가정폭력이라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현저하게 줄어들거나 없어질 리가 없겠지요. 저의 안이한 인식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미 위헌결정으로 폐지된 지 오래인 호주제를 책에서 또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김 변호사님 자신이 위헌결정을 받은 사건이라 자랑하고 싶어서? 호주제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이성애 중심주의, 정상가족 이데올리기는 강력히 남아 작동하고 있습니다. 일인 가족, 법률혼 없는 동거, 동성 가정, 한부모 가정, 무자녀 가정 등 현실의 가족 형태는 많이 변하고 있고 그에 따른 인식도 눈에 띄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실시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6.3%가 “혼인 혈연에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할 경우 가족으로 인정한다”고 답했고,, “함께 살지 않아도 정서적 유대를 가진 친밀한 관계이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48.5%, 20대 응답자의 58.1%가 동의했으며. 비혼동거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7%가 동의했고, 연령대별로는 20대 89.7%, 30대 81.0%, 40대 74.3% 등 높은 찬성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주거, 고용, 건강, 의료, 사회안전, 사망, 질병, 재난 상황 등 전 분야에 이성애 결혼, 혈연 중심을 ‘벗어난’ 다양한 동반자관계는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장유유서의 전통이 무너진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처럼, 다양한 생활공동체를 인정하고 법적으로 보호하자는 주장에 대해 가족이 해체되고 성도덕이 땅에 떨어진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러나 “호주제가 폐지되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성평등한 세상의로의 한걸음 전진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104쪽)이었듯이 다양한 가족구성권의 인정은 우리 사회를 보다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도구’로만 존재하는 여성의 자궁

3부 <‘도구’로만 존재하는 여성의 자궁>은 낙태죄, 미혼모, 입양, 난자 체취 문제 등을 다룹니다. “도대체 여성의 몸은 왜 또 이리 쓰임이 많단 말인가. 왜 하필 여성만이 난자를 배출하고 자궁이 있단 말인가. 여성의 몸, 여성의 자궁, 여성의 출산 능력은 경외의 대상이면서도 왜 이리 하찮게 취급되는가.”(182쪽)

그간 국가는 국가의 인구조절 목적에 의한 낙태, 가족의 대를 잇기 위한 낙태는 사실상 공공연히 조장·허용하면서도 오직 여성의 선택에 의한 낙태만은 처벌해왔습니다.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로서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자신의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숙고를 거친 “전인적(全人的) 결정”임에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희생되어야 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태아와 모는 엄연히 별개의 생명체이면서도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인 매우 독특한 관계”이고 “임신한 여성의 안위(安危)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 방향을 달리하지 않고 일치”하기에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 보호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아 모와 태아의 관계를 ‘가해자 대 피해자’로 설정해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생명권, 건강권도 태아의 생명권도 보호하지 못한다는 여성들의 주장이 마침내 헌재를 움직였습니다(헌재 2019. 4. 11. 2017헌바1270).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더 이상 낙태죄는 처벌되지 않지만 대체입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지난 해 8월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가 낙태죄 폐지 권고를 하면서 “여성이 평등·건강·안전·행복하게 임신·임신중단·출산할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하여 태아가 건강·안전·행복하게 출생·성장할 수 있는 여건 조성으로 법·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재생산권을 말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여전히 낙태를 범죄시하는 개정안을 제출했고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습니다.

폭력과 차별없이 성적 정체성, 성행위의 여부·상대방·방법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사할 권리로서의 성적 권리와 임신 여부, 시기, 방법, 자녀 수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행사할 재생산 권리를 폭넓게 보장하는 입법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용서받은 자들 뒤에 용서한 적 없는 이들

4부 <용서받은 자들 뒤에 용서한 적 없는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미군 기지촌 위안부, 군대 내 성희롱·성폭력, 여성 노동, ‘수지 김’ 사건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잘 알지만, 미군 기지촌 위안부에 대해서는 생소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우리 정부는 “외화 획득과 국가예산 절약”을 위해, 한미동맹을 위해 여성을 미군을 위한 성매매에 동원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강제로 성병 치료를 했습니다. 성병 치료를 안 해 주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병 치료는 결코 위안부 여성의 건강관리를 위한 적법한 조치가 아니었습니다.

보건증을 소지하지 않거나 보건증에 성병 검진 도장이 없으면, 성병에 걸린 미군이 성행위 상대로 위안부를 지목(콘택트)하기만 하면, 무조건 수용소로 끌고 가 감금하고 성병 감염 여부에 대한 확인도 없이 페니실린 주사를 놓았습니다(토벌). 페니실린 주사는 그 자체로 매우 고통스러운 통증이 따르고 부작용도 심해 쇼크사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고 이 때문에 페니실린 주사 놓기를 꺼려하는 의사들을 위해 면책 조치도 강구되었습니다. 기지촌 위안부로 추정되는 인원이 무려 30만 명이라고 합니다. 비록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의 하급심에서 승소판결이 있었지만 기지촌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이자 현재진행형의 문제입니다.

4월 재보선 이후, ‘이대남’ 현상에 깜짝 놀란 정치권에서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자고 합니다. ‘여자도 군대가라’는 주장이 난무합니다. 최근 공군 부사관이 성폭행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또 발생했습니다. 최소한의 인권 보장조차 되지 않는 군대를 그냥 내버려 둔 채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김 변호사님은 묻습니다.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이 철폐되고, 성평등한 사회가 된다면 여성이 군에 입대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자, 대한민국이여 여성을 징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221쪽) 무엇보다 남북관계, 외교, 안보, 평화, 군축, 적정한 병력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한 나라의 군사제도를 단지 당장의 여론을 의식한 표 계산으로, 한쪽이 힘드니 다른 쪽도 다 같이 힘들자는 식의 비이성적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책의 말미에 김 변호사님은 2019년 9월 10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던 한국도로공사의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강제 해산에 맞서 상의를 탈의하고 저항하자, 사측 구사대와 경찰들이 성적 비하와 조롱을 하는 것을 보고 2001년 처음 변호사가 되어 일하던 법인에서 진행했던 ‘수지 김 사건’을 떠올렸다고 씁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나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수지 김은 남편 윤태식에게 살해당하고도 하루아침에 호스티스 출신의 행실 나쁜 여자, 여간첩이 되어 조롱과 모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과거 많은 여성이 집안 남자의 성공을 위해 헌신해야 했다. 종종 그들의 헌신은 행실과 품행의 문제로 손가락질받는 삶으로 이어졌고, 잊히고 버려졌다. 시종일관 찬사로 이어지는 남성의 헌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취급되었다. 여성이 어떻게 살았고, 무엇이 되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헌신을 했던, 투쟁을 했든, 엄청난 성취를 이루었든 ‘여성’이라는 자체, 그것이 문제다.”(243쪽)

책의 후기는 짧고도 강렬합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책의 후기로 이 말 외에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여성을 위한 변론은 끝나지 않았다.”>

“미투운동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고 서로 연대하며 싸우고 있고, 부끄러움 따위 던져버리고 가슴을 드러낸 채 여성이 당하는 부당함을 알리고 있”고,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244쪽)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김 변호사님도 그만둘 수가 없지 않을까요.

함께 사는 세상에서 한쪽이 불행하면 다른 한쪽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페미니즘은 다 같이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사상이자 운동이라고 말하는 김 변호사님의 포기하지 않는 투쟁을 지지하며 글을 맺습니다. 류제성 부산시 감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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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0이 대통령,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청문요청안 재가
  1. 1“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2. 2삼성중공업, 올해 LNG운반선 20척 수주. 글로벌 경쟁력 입증
  3. 3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4. 4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5. 5최태원, 9440억 규모 SK 지분 매각 결정…노소영 재산분할액과 같은 규모
  6. 6신한은행 해킹 서버서 “‘중국어 AI 침투도구’ 흔적 발견”
  7. 7국민·하나·부산은행도 당했다…금융권 해킹 피해 확산(종합2보)
  8. 8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9. 9"건보료 재정누수 심각…1000만원 초과 고액체납 2배 급증"
  10. 10신한銀 2만5000명 고객정보 털렸다…당국 조사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4. 4‘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5. 5시민이 만든 '부캉이' 공공 자산으로…부산시, 상표권 독점 막는다
  6. 6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7. 7김해시민 민생회복지원금, 2주 만에 지급률 80% 돌파
  8. 8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9. 9“택시부제 풀었더니 매출이 쑥”…밀양시, 시범운영 거쳐 전면 해제
  10. 10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3. 3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4. 4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인도에 져 은메달…8연패 무산
  5. 5성적 부진·단장 공백·감독 결별·구단주 경고…김해FC ‘사중고’
  6. 6자존심 지켰다…남자 양궁 리커브 단체전서 금메달
  7. 7LoL 대표팀, 대만 꺾고 아시안게임 금메달…무실 세트 제패
  8. 8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9. 9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10. 10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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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안 된 '경찰시대'
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교통취약지 ‘버스형 콜택시’ 도입, 울주 전역 도시가스 공급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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