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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人 도심갈맷길-세 가지 이야기 <상> 거칠산국 역사길

동래 군림한 가야, 왜군에 맞선 수영의용 … 시간을 거슬러 걷는 길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1-05-31 19:45:24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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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읍성~수영사적공원 10㎞
- 산·하천 끼고 아스팔트 걸어야

- 거칠산국 기원전후~6세기 전반
- 복천동과 연산동에 고분군 조성

- 온천천 낙민파출소 앞 이섭교비
- 조선시대 애민·울력 담긴 비석

- 배산성지 신라시대 조성 추측
- 수영사적공원 역사 콘텐츠 가득

갈맷길 시즌2(천리길)의 도심갈맷길 15개 코스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는 ‘거칠산국 역사길’이다. 동래읍성과 복천동고분군, 동래부 동헌, 동래패총, 이섭교비, 연산동고분군, 배산성지를 거쳐 수영사적공원에서 마무리된다. 총연장 10㎞로 꽤 길다. 산과 하천을 끼고 있음에도 딱딱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도로를 걸어야 하는, 걷기가 만만찮은 구간이다. 해당 코스는 동래·연제·수영구 등 3개 구에 걸쳐 있다.

‘거칠산국 역사길’ 코스가 나온 만큼 거칠산국에 관해 짚고 넘어가자. ‘삼국사기’의 거도(居道) 열전(列傳)에 탈해 이사금 재위 당시 거도가 거칠산국(居漆山國)과 우시산국(于尸山國)을 쳐서 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거칠산국은 지금의 부산 동래지역으로, 우시산국은 울산으로 보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거칠산국은 신라에 편입돼 거칠산군(居漆山郡)이 되었다가 신라 경덕왕 때 동래군(東萊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결국, 거칠산국은 신라에 병합되기 전 동래에 있던 고대 정치체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배산 정상에서 바라본 연산동고분군 일대. 복천동고분군의 수장층 묘역을 옮겨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조성한 것이다. 국제신문DB
■ 6세기 전반까지도 ‘가야의 땅’

동래읍성 역사관, 내주축성비가 있는 동래읍성 북문에서 복천박물관으로 내려오면 복천동고분군(야외전시관)과 만난다. 복천동고분군은 경주의 대형 고총 고분군과,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 도항리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과 함께 남부지방을 대표하는 고분군 중 하나다. 기원전후부터 5세기대까지 주로 조성된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복천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무기와 철갑옷·투구(갑주), 토기, 장신구 등 무려 9,800여 점. 이 중 무기류, 갑주류가 많이 주목받았는데,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가야의 면면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복천동고분군 야외전시관에서는 구덩식 돌덧널무덤(석곽묘) 53호분(5세기 중엽)과 덧널무덤(목곽묘)인 54호분(4세기 말)의 내부를 볼 수 있다. 53호분에는 덧널무덤 방식의 부곽이 있는데, 순장자로 추정되는 사람 뼈의 흔적이 조사됐다. 54호분도 순장의 흔적이 확인됐다. 무덤의 주인공은 둘 다 강력한 권력을 지녔던 셈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면 무덤 자리가 부족하기 마련이다. 결국, 복천동고분군의 주인공들은 고분군이 있는 마안산 구릉 일대에서 직선거리로 약 2㎞ 떨어진 배산의 구릉지대를 새로운 수장층 묘역으로 지목했다. 연산동고분군이다. 그동안 연산동고분군에서 고총 고분 18기, 중·소형 고분 136기가 조사됐는데, 전체적으로 1000기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복천동고분군을 이은 연산동고분군은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5세기 중엽 신라의 경주로 영남의 패권이 옮겨간 상황이었지만, 연산동고분군의 수장층은 여전히 동래지역에서 독자 세력을 유지했다. 이 시기 “경주 세력과도 교류관계를 가지면서도 전기가야의 복천동 세력을 계승한 가야의 일원이란 강한 정체성 아래 있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 애민·울력 정신 담은 이섭교비

온천천 연안교 쪽 낙민파출소 앞에 서 있는 이섭교비(利涉橋碑). 이섭교는 말 그대로 ‘다리를 건너는 데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동래(동래읍성 남문)와 좌수영을 잇던 이 다리에는 애민, 울력의 정신이 담겼다. 비석에 적힌 내용을 보자. 온천천에 놓은 이전 나무다리는 쉽게 썩었고, 자주 고쳐 만드는 바람에 백성에게는 큰 민폐가 됐다. 그래서 인조 12년(1634년) 겨울 동래부의 뜻있는 몇 사람이 사람을 모으고 재물을 거두는 등 돌다리 만들기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고, 백성들 역시 스스로 이 작업에 뛰어들어 다음 해 봄 마침내 온천천에 돌다리를 놓게 됐다. 큰물에도 다리는 멀쩡했고 수레바퀴가 젖는 일도 없었다. 이런 긴요한 교통로를 울력의 힘으로 만들었으니 비석을 세워 기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섭교는 아름다운 무지개다리였다. 4개의 홍예가 다리 아래를 수놓았다. 하지만 어느 날 이 다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일제 강점기이던 1930년 무렵에는 비석마저 지금의 동래금강공원인 일본인의 별장에 옮겨지는 수모까지 겪었다. 지금의 자리로 돌아온 것은 2012년이다.

■ 배산성을 쌓았던 주인공은?

이섭교와 연산동고분군을 지나 배산(해발 256m)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부산시 기념물 제4호 배산성지가 있다. 배산성지의 북쪽에서 온천천이 수영강과 합류하고, 더 북쪽에는 금정산이, 남서쪽에는 황령산이, 동쪽에는 장산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마디로 전략적인 요충지다. 더욱이 배산 북쪽에 연산동고분군이, 온천천 너머에는 복천동고분군이 있다.

배산성지는 2009년 정밀측량조사, 2016년 시굴조사, 2017~2018년 두 차례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자세한 모습을 드러냈다. 2017년 1차 조사 당시 영남 최대 규모의 집수지 2기가 조사됐는데, 2호 집수지에서 부산 최초로 ‘을해년(乙亥年·555년, 615년, 675년 중 하나)’이 새겨진 목간이 출토됐다. 또 두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잔존높이 4m의 성벽과 기반보축 시설이 확인됐다.

배산성지는 학술조사 이전에는 거칠산국의 유적인 것으로 추측됐지만, 성벽과 배수지의 축조 양식 등으로 미뤄볼 때 신라 때인 6세기 중반 ~ 7세기 초반 조성 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 ‘수영 25 의용’의 기록 ‘정방록’

배산에서 수영사적공원으로 향한다. 백산 정상의 첨이대, 수영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옆 좌수영 선소 유허비, 그 인근의 무민사, 좌수영성지와 25의용단 관련 역사·문화 콘텐츠를 잔뜩 품고 있는 곳이다. 좌수영은 조선시대 동남권 해역 방어를 맡았던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의 줄임말이다. 수영(水營)이란 지명은 여기서 비롯됐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에 두 곳, 전라도에 두 곳 등에 수영, 즉 해군기지를 뒀다. 좌수영성은 상비 병력만 2만 명에 달했을 만큼 대규모 수군 주둔지였고, 243년간 지금의 자리에 있었다.

이런 좌수영이었건만,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게 허망하게 무너졌고 군사는 뿔뿔이 흩어졌다. 왜란 기간 7년 내내 좌수영은 왜군 세상이었다. 이 와중에 남은 수군과 성민 25명이 압도적인 전력의 왜적에 맞서 싸웠다. 훗날 광해군 원년(1609년) 동래부사 이안눌은 좌수영 성민의 청원에 따라 ‘수영 25 의용’의 사적을 모아 기록했다. 나라가 공인한 공적 조서인 셈인데, 이것이 ‘정방록(旌榜錄)’이다. 정방록의 원본 자체는 아니어도 ‘수영 25 의용’의 가문에 전하는 내용이 최근 잇달아 확인(국제신문 지난 3월 3일 자 2면 등 보도)됐다. 1986년 부산 남구청이 펴낸 ‘남구향토지’에서 ‘김가정방록(金家旌榜錄)’을, 수영 25 의용의 15세손이 보관하는 전주 최씨 족보에서 ‘최가정방록(崔家旌榜錄)’을 찾아냈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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