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곶이는 강명식(91) 지상악(87) 노부부(사진)가 52년간 가꿔 온 꽃의 천국이다. 노부부는 천주교 신자로 처음 만났다. 경남 진주 출신인 강 할아버지가 예구마을 출신인 지 할머니를 만나러 온 1957년 공곶이를 처음 접하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1969년에는 아예 이곳에 정착했다. 52년이 흐른 지금도 처음 지은 오두막 자리에 살고 있다. 오두막은 태풍 매미 때 소실돼 그 자리에 다시 조그만 집을 지었다.
꽃과 평생을 함께해서 그럴까. 노부부는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인다. 강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아직도 장난기가 가득하고, 할머니의 얼굴은 온화하다. 노부부는 여전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꽃과 나무를 정성스레 보살핀다. 다른 것이 있다면 3년 전부터는 환갑이 넘은 큰아들이 함께 공곶이를 가꾼다는 것이다. 공곶이는 요즘 시기에 샛노란 수선화가 장관이다. 노부부의 정성으로 오랫동안 자란 종려나무와 손수 쌓은 돌담은 그 운치를 더한다. 공곶이 앞 몽돌해변과 어우러져 비경의 극치를 보여준다.
지금은 거제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지만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노부부가 이곳에 자리 잡을 당시에는 예구마을로 들어오는 길조차 제대로 없었다. 노부부는 척박하고 방치된 땅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웠다. 가파른 산비탈을 깎고 또 깎아 계단식 토지로 만들었다.
강 할아버지는 “해가 뜨면 온종일 일하고 어두워지면 몸을 쉬었지만, 내일 어떻게 또 나무와 꽃을 가꿀까 늘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입장료를 받지 않아 돈벌이가 되지 않아도 노부부의 표정에서 달관의 여유가 느껴진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52년 간 가꾼 결과가 지금의 공곶이다. 2대가 정성을 쏟는 공곶이의 변신은 현재진행형이다. 박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