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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노의 삼성차 인수 조인식. 국제신문DB |
삼성자동차가 IMF 구제금융 위기 속에 청산되지 않고 르노삼성자동차로 인수되기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2000년 3월 부산지법 수석부장판사로 부임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성차를 ‘신의 한 수’ 같은 조정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살려냈다. 그해 6월 말까지 정리계획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파산될 수밖에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채권단(은행들)은 6000억 원의 정리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프랑스 르노그룹과 교섭을 벌였고 삼성물산은 3000억 원의 공익채권(삼성차 판매·연구부지 대금)을 정리계획에 넣어달라고 법원에 신고했다. 르노는 인수가격을 6000억 원으로 정해 공익채권 3000억 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르노의 매수는 불가능했고 삼성차의 파산은 불가피했다. 김 전 재판관은 “최악의 경우 채권단과 삼성물산은 삼성차 공장 부지를 팔면 1조 원에 달해 아무런 피해가 없지만 부산 경제와 국가에 미치는 손실은 40조 원으로 추정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부산·경남지역 삼성차 1~3차 부품협력업체는 1125개 사, 직원은 5만여 명에 달했다. 그러면서 “1999년 삼부·청구를 비롯한 파이낸스 사태로 피해자 2만 명, 피해액 3200억 원에 달하는 등 부산 경제가 최악인 상태에서 삼성차마저 파산되면 수많은 실직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어 법원이 중재에 적극 나섰다”고 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판사가 앞으로 정치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심은 전혀 없었다. 오직 삼성물산과 채권단이 1000억 원 안팎씩 양보하면 부산은 40조 원의 손해를 막을 수 있다는 애국심의 관점으로만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최현진 편집부국장 namu@kookje.co.kr
◇ 삼성자동차 빅딜 및 조정 일지 |
96년 4월 26일 |
삼성차 부산 신호공장 기공식 |
98년 12월 2일 |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 삼성차 빅딜 추진 발언 |
12월 7일 |
청와대 정·재계간담회, 삼성차-대우전자 교환원칙 확인 |
99년 1월 21일 |
삼성 대우 회장 승지원에서 회동, 빅딜 조속 마무리 합의 |
1월 22, 23일 |
김대중 대통령, 양 그룹 회장과 연쇄회동 조기합의 촉구 |
2월 3일 |
양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선 인수·후 정산 합의 |
2월 14일 |
삼성차 근로자 생존권 협상 완전 타결 |
3월 22일 |
양 그룹 회장 승지원 및 힐튼호텔 회동서 잠정인수 합의 |
5월 12일 |
정부 고위관계자 대우전자 빅딜 배제 공론화 |
6월 30일 |
삼성, 삼성차 법정관리 신청 및 이건희 회장 사재 2조8000억 원 출연 발표 |
12월 30일 |
부산지법, 삼성차 법정 관리 개시 |
2000년 3월 20일 |
부산지법 조정 착수(언론의 법원 질타 요구)-삼성물산과 채권단이 각각 1000억 원 안팎씩 양보하면 국가, 부산은 40조 원의 손해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 |
4월 11일 |
3차 조정회의. 법원 최종조정안 제시하고 4월 20일까지 수용 촉구 ①삼성차가 파산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아래 ②프랑스 르노그룹 이외에는 인수 희망자가 없어 르노가 인수하려는 가액 6000억 원을 채권단 6 대 삼성물산 3의 비율로 나눠 가져라 |
4월 17일 |
법원의 조정권고결정 송달 -관계자에 대한 배임 형사처벌 가능성을 해소 |
4월 19일 |
삼성물산 긴급이사회 열어 조정안 수락. 채권단도 수락 |
4월 27일 |
삼성차 매각협상단 프랑스로 가서 협상 최종 타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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