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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마을' 혁신을 찾아서 <26> 남해 가천마을

다랑논 옛 모습 잘 보존…국가명승·세계적 관광지로 떴다

  •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  |   입력 : 2021-01-24 19:28:4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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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유의 마을 풍광 덕분 입소문
- 2000년께부터 관광객 몰려와
- 주민 스스로 ‘명승’ 지정 요청
- 전통문화 지키려 개발 최소화
- 연간 20만~30만 명 찾는 명소돼

- 암수바위·밥 무덤에 스토리텔링
- 달빛 걷기 등 체험 행사 운영
- 마을 농산물 온라인 판매까지

전국 최고의 힐링 마을로 꼽히는 경남 남해군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 이곳에는 척박한 섬마을에서 억척같은 삶을 살아온 조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유의 다랑논 풍광 덕분에 전국에 다랭이마을로 더 잘 알려졌다. 주민도 이제 마을의 공식 명칭을 가천마을에서 다랭이마을로 변경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2005년 문화재청이 국가 명승 제15호로 지정한 뒤부터 연간 20만~30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다. 최소한의 편의시설은 어쩔 수 없었지만, 주민은 개발의 유혹을 이겨내고 옛 모습을 지켜낸 결과 이제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
   
마을 위를 지나는 1024번 지방도 인근에서 내려다본 가천마을 모습. 주택과 108층으로 된 다랑논 너머 햇빛을 받은 바다가 반짝인다.
■개발 붐 일 때 “개발 억제”

남해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가천마을은 30~40년 전만 해도 개발이라고는 엄두도 못 낼 시골 마을이었다. 가천마을에는 깎아지른 듯한 비탈에 축대를 쌓고 흙을 채워 만든 다랑논이 108층 680여 개에 달한다. 농부가 벗어둔 삿갓 밑에 논배미가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그만큼 작은 논이 많았다는 말이다. 전기와 전화는 19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들어왔고, 자갈길이었던 도로가 포장된 건 마을이 알려져 관광지화되면서 외지인의 출입이 잦아진 10여 년 전이다. 수돗물도 4, 5년 전에야 들어왔다.

   
이처럼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던 마을은 2000년께부터 특유의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2002년 농업진흥청으로부터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멀리 짙푸른 바다가 카펫처럼 깔려 있고 층층으로 된 논이 사계절 옷을 바꿔 입는 풍경에 매료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다음 해인 2003년에는 농협이 팜스테이마을로 지정하면서 관광 농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하루 수천 명이 몰려 골목과 다랑논 일대를 채우는 바람에 주민 생활에 제약을 받을 정도였다.

관광객이 몰리고 개발 유혹이 뻗어오자 주민은 마을 회의를 열어 개발을 억제하기로 결의하고 문화재청에 명승 지정을 신청했다. 경쟁력 있는 마을을 만들려면 보존이 최선이라며 개발 행위를 법으로 막겠다는 각오에서다. 당시에는 개발 붐을 타고 ‘관광지=개발’이라는 등식이 당연시되었지만, 가천마을은 전통을 고집하며 개발을 최소화해 더 유명한 관광 명소로 부상했다. 이런 주민의 노력에 힘입어 가천마을은 남해군을 넘어 우리나라 농촌 관광의 새 모델이 됐다.

■‘어디에도 없는 풍경’에 스토리를

   
마을 중심부에 있는 재앙을 물리쳐준다는 밥무덤.
가천마을은 부채처럼 펼쳐진 다랑논이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해 관광지로는 으뜸이지만, 사는 주민은 불편하고 힘겹기 짝이 없다. 소득이 될 만한 작물이라고는 쌀과 마늘이 고작이고, 다른 채소류는 자급자족하는 정도였다. 남해가 기온이 따뜻해 다른 마을에는 ‘대학나무’라는 유자나무를 심어 자녀 학자금으로 충당한다지만 가천마을은 바람이 거세 유자나무가 자라지도 못한다. 축산이나 특용작물 재배도 어려웠고, 마을 코앞이 바다지만 조개류를 채취할 갯벌이 없을뿐더러 파도가 거칠고 조류가 심해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선착장을 설치할 수 없을 정도다. 교통수단이 시원찮던 시절에는 인근 오일장도 걸어서 한나절이나 걸려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

이런 악조건의 다랭이마을이 가장 한국적이고 전형적인 농촌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되면서 받은 사업비 1억 원으로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써레질, 모내기, 마늘 심기, 벼 수확, 논길 걸어보기, 달빛 걷기 등의 체험행사를 운영했다. 정성 들여 기도를 올리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암수 바위와 마을의 액운을 막아준다는 밥 무덤, 당산나무 등도 스토리텔링해 참가자들의 흥미를 더했다.

초기에는 수익금 전액을 재투자해 마을 안길을 포장하고 새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차츰 주민들은 ‘우리 마을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마을을 관통하는 산책로를 만들고, 마을 뒷산 6만6000여 ㎡(2만여 평)의 편백림에는 산책로와 방갈로 등을 갖춘 휴양시설을 만들었다. 농협 팜스테이 마을로 지정되면서 받은 사업비도 주차장을 확보하거나 체험객의 불편을 덜어주는 시설을 설치하는 데 먼저 사용했다. 주민이 자신의 불편은 감수하고 관광객 중심의 체험 환경 조성을 우선한 것이다. 문화재청에 명승 지정을 신청해 2005년 1월에 제15호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경관농업 보존 위한 노력

   
다랑논에 얽힌 삿갓배미 전설을 소개하는 안내판.
경관농업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한다. 사단법인 다랭이논보존회를 만들어 무분별한 개발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했다. 680여 개의 논에는 농사만 지을 수 있게 했다. 휴경 논은 주민이 공동으로 관리한다. 그래서 200여 개의 펜션, 민박집, 카페 등은 다랑논과 일정하게 떨어진 곳에 밀집해 있다. 주민이 생산한 농산물은 마을에서 가판을 마련해 관광객에게 판매하고, 온라인 판매도 함께한다. 도시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5~10㎏ 소포장을 주로 하며, 단골에게는 계절에 맞는 제철 농산물을 보내주는 예약제도 한다.

여행가 박영종(60) 씨는 “우리 선조의 고통과 애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다랭이마을은 전통문화의 보존이 개발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며 “다랑논을 만든 선조나 이를 보존하려는 주민의 억척스러운 노력이 감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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