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릭비’ 전성기 시절 돌연 탈퇴
- 6년 방황했지만 음악 못 놓아
- 밴드 ‘애쉬그레이’로 재기 도전
- 받아주는 곳 없어 2년간 버스킹
- 음악은 인정 받았지만 생활고
- 아버지 임종 지키지 못 해 후회
- 고향 부산에 내려와 창업 도전
- 전문가들 만나 끊임없이 공부
- 2018년 애완견 케어 업체 설립
- “조급해 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
- 3~4년 배우면서 입지 쌓을 것”
20여 년 전 꽃미남 밴드 아이돌 ‘클릭비’는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부산의 기타천재로 알려졌던 노민혁(39)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클릭비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2002년 노민혁은 돌연 탈퇴를 선언했다. 음악을 그만둔 건 아니었다. 버스킹 1세대 밴드 ‘애쉬그레이’로 거리를 누볐다. 그의 인생 전환점은 아버지의 사망. 방황하던 그는 2018년 펫 헬스케어 기업 ‘아워테리토리’를 세웠다. 낮에는 애견 카페에서 손님을 맞고 밤에는 상품을 포장한다. 그가 청년과 나누고픈 인생 경험은 ‘뭐든지 건너뛰면 결국 다시 돌아와서 배워야 한다’는 것. 조급해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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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워테리토리 대표가 된 노민혁이 창업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찬영 PD |
■기타 신동에서 아이돌이 되다
부산이 고향인 노민혁은 아버지의 권유로 여덟 살 때부터 기타를 쳤다. 아버지는 ‘누군가 자신의 재능을 키워줬다면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기에 교육열이 강했다. 하루 7시간씩 기타를 치던 아들은 록의 기대주로 성장했다. 부산의 크고 작은 축제 무대 출연은 물론 인기 TV프로그램 ‘신인간시대’에까지 출연해 전국구 기타 신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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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클릭비로 활동하던 시절의 노민혁(맨 왼쪽). DSP 미디어 제공 |
1999년에는 젝스키스·핑클로 유명한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클릭비로 데뷔했다. 그러나 메인보컬이 되길 원했던 아버지는 실망했다. 당시 노민혁은 “클릭비가 성공하면 나가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
3집까지 대박이 나자 노민혁은 정말로 클릭비를 떠났다. “인지도를 쌓고 있는데 나가면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니까 성공할 때까지 있겠다고 했어요.”
긴 방황이 시작됐다. 가요계에서는 그를 한물간 연예인쯤으로 여겼다. 록계는 ‘배신자’라고 했다. 독기로 가득한 그는 낮에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밤에는 술에 취해 잠들었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6년을 보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무대에 올랐어요. 청년기에는 기획사가 모든 것을 해줬습니다. 제가 스스로 해야 하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클릭비를 탈퇴후 ‘내가 다해야 하는구나. 그 누구도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줄 사람은 없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재 속에서 피어나는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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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드 애쉬그레이에서 버스킹을 하던 시절의 노민혁(맨 오른쪽). 노민혁 제공 |
재기를 위해 결성한 밴드 애쉬그레이를 온전히 받아주는 기획사는 없었다. 노민혁은 결국 거리로 나섰다. 버스킹이라는 단어조차 없던 때여서 용기가 필요했다.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점차 늘면서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만 2년 넘게 버스킹을 했다. 노민혁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기분이었다. 노래를 부르다 쫓겨나 자리를 옮기면 사람들도 우리를 따라 왔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은 여전했다. 결국 부자의 연이 끊어지고 말았다. 노민혁에게는 속상하지만 자유롭게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재 속에서 피어난 불꽃’이라는 애쉬그레이의 뜻처럼 그는 어둠을 헤치고 인디 음악계에서도 다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아버지가 간암 선고를 받았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부자는 병원에서 눈물의 화해를 하고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렸다. 노민혁은 아버지만을 위한 무대도 준비했다. 이를 위해 서울로 출발하는 날 새벽에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가 왔다. 급박한 순간에도 노민혁은 택시 대신 버스를 탔다. “늘 돈에 쪼들렸어요. 병원비 때문에 안 하던 기타 레슨도 했지만 힘들었죠. 결국 5분이 늦어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늘 후회가 됩니다.” 그는 입관 직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아버지 제가 이렇게 안 보내려 했는데…, 엄마는 그렇게 안 보낼 게’ 그 말만 미친 듯 반복했어요. 그때 결심했죠. 딱 35살까지 4년만 더 음악을 해보고 안되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돈 벌자. 근데 4년, 금방 가더군요.”
■펫 헬스케어로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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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민혁은 현재 펫 헬스케어 기업 아워테리토리와 카페 미미에토를 운영하고 있다. 노민혁 제공 |
2016년 부산으로 돌아온 노민혁은 무작정 해운대구에 있는 1인 창조비즈니스 센터를 찾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묻고 또 물어가며 창업을 준비했다. 아이템은 반려동물 헬스케어로 정했다. 경쟁이 적지 않은 시장이지만 반려견을 오래 키운 덕에 스스로 필요성을 느꼈다.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끝없이 공부했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여서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무대포 정신으로 헤쳐나갔다. “몰라서 창피한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것이 창피한 거잖아요. 전문가들을 만나 묻고 묻고 또 물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2018년 아워테리토리를 창업해 대표가 됐다. 지난해 3월부터는 애견 동반 카페 미미에토도 운영 중이다.
인생의 희비를 이른 시간 안에 겪었던 경험 때문인지 노민혁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3, 4년은 배우면서 탄탄하게 입지를 쌓아가려 합니다. 뭐든지 건너뛰면 결국 다시 돌아와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년 창업가 중에서도 한 번에, 빨리 성공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무너지는 분이 많은데 천천히 헤쳐나가자고 하고 싶어요.”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제작지원 : B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