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병산 자락 526명 거주 서구2
- 산복도로 윗·아랫동네 갈등 빚다
- 주민힘으로 마을 살리기로 합심
- 도로 개통·벽화 제작·난간 설치
- 뒷산 주렁주렁 열린 단감 활용
- 단감주·단감 식초 등 시판 예정
- 봄엔 벚꽃축제로 관광객 유치
- 우물 물동이 난타 공연도 호평
늦가을이 되면 경남 김해시 진영읍 야산에는 둥근 단감이 탐스럽게 익어간다. 진영읍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단감의 고장이다. 일제강점기 1927년 진영역장이던 일본인 요코자와가 단감나무를 들여와 심은 것이 국내 단감 재배의 시초다. 진영읍의 산동네인 서구2마을은 이 일본인 역장이 거주했다는 내력을 지녀 단감마을로 불린다. 마을의 진산인 금병산(해발 272m) 산줄기 위에 마을이 올망졸망 걸터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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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의 벽화가 눈길을 끄는 진영읍 단감마을 마을길 바닥에 그려진 찬새내골 문구. |
궁벽한 산동네는 2014년 동네 마당발로 통하는 변애자(여·60) 씨가 이장을 맡은 뒤 변하기 시작한다. 단감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상수도가 없던 시절 식수원이었던 마을 내 천연 우물이 마을의 상징물로 등장한다. 동네 아낙들은 바가지로 물동이를 두드리는 국내 유일의 ‘우물 난장’ 공연을 탄생시켰다. 주민이 전통 방식으로 손수 빚은 단감주는 시판을 앞두고 있다. 고즈넉한 산동네가 바야흐로 세련된 문화 마을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단감·생명수 샘솟는 우물이 상징
총 251가구 526명이 사는 마을 복판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 단감밭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단감 수확은 끝났고 까치밥 몇 개만 매달려 있다. 심용주(74) 마을만들기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 마을은 단감을 최초로 국내에 가져온 일본인 역장이 거주한 곳으로, 단감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곳”이라며 “마을 뒷산 대부분이 단감밭으로 단감이 주민의 주 소득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숨을 몰아쉬며 산동네를 오르는 동안 심심할 틈이 없다. 단감을 주제로 한 갖가지 벽화와 볼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우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우물이 있어 이 마을은 찬새내골로 불린다.
심 부위원장은 “예전 한 시간에 6동이가 나올 정도로 수량이 풍부한 읍민의 식수원이었다”고 자랑했다. 1970년대에는 새벽부터 물을 긷기 위해 늘어선 물동이가 끝이 없었다.
상수도가 없던 시절 생명수를 가진 복 받은 마을이었던 셈이다. 이 마을은 1920년대까지 서당이 있어 서재골로도 불렸다.
■변신을 시도하는 마을… 축제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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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는 마을 여인 조형물이 있는 우물. |
이 마을은 20년 전 산복도로가 생기면서 형태상 아래·윗동네로 나뉘게 됐다. 이즈음 형편이 나은 아랫마을과 살림살이가 어려운 윗마을 간 갈등도 불거졌다. 주민 김규선(여·60) 씨는 “이장의 중재로 주민은 다툼을 중단하고 마을을 살리기로 했다”며 “생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마을 내 도로를 개통하는 데 주력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털어놨다.
철길 주변 낙후 마을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행복 W-Line 프로젝트’ 사업에 공모해 사업비 1억8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산 아래 낭떠러지에 안전 보행 보조시설인 난간을 설치하고, 칙칙했던 골목은 벽화가 그려지면서 한결 산뜻해졌다. 김애리(여·38) 씨는 “당시 선진지 견학 목적으로 방문한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둘러보고 주민이 더욱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주민은 산복도로 2㎞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상품으로 삼기로 하고 2017년 봄부터 벚꽃축제를 열고 있다. 김 씨는 “국수, 단감 말랭이를 팔고 막걸리, 식혜도 빚어 내놨다. 첫해 쇠고기국밥 500그릇을 팔았고 이듬해부터 1000그릇을 팔았다”며 활짝 웃었다. 10월에는 우물 난장 가을 음악회를 개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문화·예술 마을로 변신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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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처음으로 연 우물난장 가을 음악회 모습. |
단감마을은 나아가 김해시 마을 만들기 공모에 당선돼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5억 원을 지원받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단감마을의 명성에 걸맞은 단감 문화마당(행복나눔터)을 건립하며 지역 농산물 개발 및 시판에도 뛰어들었다. 김해시 박현우 건설과장은 “서구2마을 주민의 열의에 큰 감동을 받는다. 단감을 활용해 고추장과 조청, 민속주, 식초, 말랭이 등을 전통 방식으로 제조해 시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낙들의 활동 무대였던 우물가를 테마로 만든 우물 난장도 이 마을을 대표하는 문화 공연으로 떠오른다. 변 이장은 “우물 난장은 일종의 난타 공연이다. 우물에서 사용하던 바가지 물동이를 두드려 소리를 낸다. 2017년부터 진주 등에서 여러 차례 공연해 호평받은 바 있다. 우리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공연이 되도록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만 있는 우표전시관도 관광자산이다. 진해에 살던 우표 수집가가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만든 전시관으로, 희귀 우표 수천 점을 만날 수 있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