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3 <6> 10월의 트라우마- 시민 정정업 씨

“구류로 입시도 못 치러” 서울대 꿈꾼 청년은 무직자가 됐다

  • 김해정 기자 call@kookje.co.kr
  •  |   입력 : 2020-11-29 20:15:57
  •  |   본지 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친구들과 독재 정권 분노 공유
- 마산 창동서 시위 참여했다 체포
- 곤봉·군횟발로 무자비하게 맞아
- 눈가·뒤통수엔 그날의 흔적 가득

- 힘든 집안 사정 탓 대학 꿈 접어
- 아르바이트 전전하다 상경 택해

- 가족들 작년에야 참여 사실 알아
- 아들이 잘했다고 칭찬해줘 뿌듯
- 머리엔 아직 유리조각 남아있어
- 이제는 병원 찾아 빼야겠다 생각

부마민주항쟁 참여자 정정업(61) 씨는 10월이 되면 등이 쑤신다. 41년 전 군홧발에 짓이겨졌던 통증이 이맘때면 되살아난다.

정 씨의 얼굴에는 한때 깊이 팼지만 이제는 아문 듯한 흉터들이 듬성듬성 있다. 눈가에 3개, 뒤통수에 5, 6개다.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처박힌 채 군홧발에 밟히면서 박힌 유리 파편들의 흔적이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끝났지만, 그 상흔은 정 씨의 몸에 남아 있다.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에서 만난 정 씨는 인터뷰 내내 담담했다. 말은 짧았고 무심했다. 그는 41년 전 그날 밤의 폭행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생긴 흉터들을 취재진에게 대수롭지 않게 내보였다. 지금도 그때 박힌 유리 조각이 머리에 남아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날의 상처로 병원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부모님은 정 씨가 항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세상을 떴다. 그의 가족만 지난해서야 겨우 알게 됐다. 정 씨가 고백한 게 아니다.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가 집으로 보내온 우편물 때문에 그의 과거가 드러났다.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정 씨는 “그냥. 말하기 싫었다”고 했다.
   
부마항쟁의 피해자인 정정업(61) 씨를 지난달 15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당시 군인들에게 맞아 머리에 수 십 바늘을 꿰매는 등 아픈 상처를 안고 있었다. 김정록 기자
■“죄인처럼 1년간 감시당해”

정 씨는 마산 창동에서 당시 친구들과 함께 “유신철폐”를 외치며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했다. 정 씨는 “당시 경남대에 재학 중인 친구들과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를 공유했고 자연스럽게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1979년 10월 18일 밤 11시 30분께 남성파출소 앞에서 체포됐다.

정 씨는 “군인에게 결박당해 엎드린 채로 곤봉, 군홧발로 무자비하게 폭행당했다. 거리에 널린 깨진 유리 조각이 머리에 긁히고 박혔다. 평생 살면서 그렇게 맞은 적은 없다”며 “나도 오기가 생겨 ‘널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군인의 얼굴을 노려봤다. 처음으로 살의를 느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그 길로 정 씨는 마산경찰서에 인계됐다. 조사 시간은 30~40분에 불과했다. 정 씨는 “경찰이 조서를 마음대로 꾸몄다. 지장도 강제로 찍었다.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같은 달 25일 즉결심판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류 15일, 유치명령 10일을 선고받았고 22일 구류 끝에 다음 달 8일 마산경찰서 유치장에서 석방됐다.

정 씨는 풀려난 뒤에도 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 씨는 “다음 해인 1980년 3월쯤 30, 40대로 보이는 남자 2명이 날 따라다니더라. 참다못해 그 사람들에게 ‘왜 따라오세요’라고 물어봤다”며 “근처 선술집으로 나를 데려간 그들이 ‘우린 경찰이다. 위에서 1년 동안 널 감시하라 시켰다’고 하더라. 자신들도 감시하기 싫다면서 의식하지 말고 생활하라고 하던데 그게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후 누군가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갑자기 다른 길로 꺾어 도망가기도 했다”며 “시간이 지나니까 어느 순간 시선이 안 느껴졌다”고 기억했다.

■“구류돼 서울대 시험 못 치뤄”

   
정 씨가 아직도 자국이 선명한 부마항쟁 당시 입은 머리의 상처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1979년은 정 씨 삶의 변곡점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이 터진 해이기도 했지만, 정 씨가 재수 끝에 서울대 미대 입시를 코앞에 둔 해였다. 정 씨는 “초등학생 때 전국 미술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학창 시절 받은 상만 십여 개가 된다. 중학교 미술 선생님의 소개로 경남대 미대 교수에게 따로 수업받기도 했다. 그래서 교수님들이 경남대에 입학하라고 꼬드겼는데, 난 서울대에 가고 싶었다”며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웃었다. 그 해 정 씨는 구류된 탓에 서울대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미술학도’였던 정 씨의 삶은 41년 뒤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및 유족신고 사실조사서에 그렇게 ‘무직자’로 남았다.

정 씨는 10여 년간 마산에서 정착하지 못했다. 정 씨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입시를 한 해 더 준비할 수 있는 처지가 안 됐다”며 “대학을 나오지 못해 취업하기 힘들었다. 단기간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고 했다. 결국 그는 상경을 택했다. 친척이 서울로 일자리를 제안하면서다. 이후 정 씨는 동대문, 용산 등지에서 옷장사를 하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내게 남은 머릿속 유리 조각”

부마민주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난해는 정 씨에게도 남다르다. 가족들이 지난해 처음으로 정 씨의 부마민주항쟁 참여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정 씨는 “자식들이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더라”고 뿌듯해했다. 그는 같은 해 처음으로 부마민주항쟁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정 씨에게 부마민주항쟁은 뒤통수에 박힌 유리 조각처럼 남아있다. 그는 “뒤통수를 만질 때마다 뾰족한 무언가가 만져지면서 아프다”며 “그저 젊으니까 괜찮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병원에 간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런 정 씨가 조만간 병원을 찾고자 마음을 먹었다. 정 씨는 “머리에 박힌 유리 조각을 이제는 빼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끝-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려차기남’ 신상 공개한 유튜버…‘사적 제재’ 찬반 격론
  2. 2정체성 혼란? 열등감? 판타지? 정유정 범행동기 미스터리
  3. 3황보승희 정치자금법 수사…與 초선 풍파에 교체론 커지나
  4. 4‘감정노동현장’ 콜센터 취업기 <상> 폭언에 손 덜덜…화장실도 보고하며 가 방광염 달고 산다
  5. 5218만원 받는 ‘욕설 지옥’…부산 청년일자리 민낯
  6. 6[정가 백브리핑] ‘영원한 형제’라던 권성동·장제원, 상임위서 또 이상기류
  7. 7집행위원장 없는 첫 BIFF
  8. 8기세 오른 롯데도 “스윕은 어려워”
  9. 9“휴양지 춤축제 차별화 위해 예술감독 둬야…연극제와 통합도 고려를”
  10. 10소아·산부인과 감소 속 정신과는 2배 늘었다
  1. 1황보승희 정치자금법 수사…與 초선 풍파에 교체론 커지나
  2. 2[정가 백브리핑] ‘영원한 형제’라던 권성동·장제원, 상임위서 또 이상기류
  3. 362년 만에 격상…국가보훈부 5일 출범
  4. 4"선관위·민주당 공생관계 의심"…국민의힘, 선관위 채용세습 맹공
  5. 524일 귀국 앞둔 이낙연 "대한민국 정치 길 잃었다, 할 일 다할 것"
  6. 6민주당 후쿠시마·노동·언론정책으로 대정부 비판 수위 높이지만...
  7. 7민간단체 1.1조 사업서 1865건 부정·비리 적발, 지자체도 전자증빙 시스템으로 개선
  8. 8김기현, 선관위에 "국민의 인내심 시험하느냐"
  9. 9여야 "선관위 국정조사 하자"면서도 기간 범위엔 '이견'
  10. 10이재명 대표 "해운대 바다에 세슘 있다하면 누가 오겠냐"
  1. 1김영득 부산항만산업총연합회장, 바다의 날 기념식서 은탑산업훈장
  2. 2“안전한 수산물 지키기, 시나리오별 대책 준비”
  3. 3생필품 10개 중 8개 올랐다(종합)
  4. 4영남권 민자고속도로 지난해 통행료 수입 저조
  5. 5정부, “가덕신공항 건설, 2030 엑스포 부산 유치와 관계 없이 진행할 터”
  6. 6‘해수욕장 불청객’ 해파리, 올해 여름에도 기승부릴 듯
  7. 7항공기 내 불법행위, 5년 4개월 동안 292건 발생
  8. 8주택담보·전세대출 금리 하단 3%대…가계대출 다시 증가
  9. 9부산엑스포 4차PT 앞두고 대기업들 '힘모으기'
  10. 10“역전세 위험 가구 52.4%…깡통전세는 8.3%”
  1. 1[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려차기남’ 신상 공개한 유튜버…‘사적 제재’ 찬반 격론
  2. 2정체성 혼란? 열등감? 판타지? 정유정 범행동기 미스터리
  3. 3‘감정노동현장’ 콜센터 취업기 <상> 폭언에 손 덜덜…화장실도 보고하며 가 방광염 달고 산다
  4. 4218만원 받는 ‘욕설 지옥’…부산 청년일자리 민낯
  5. 5소아·산부인과 감소 속 정신과는 2배 늘었다
  6. 6오늘의 날씨- 2023년 6월 5일
  7. 7양산시 웅상선 광역철도,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 일부 드러나
  8. 8'호텔 시행사 250억 횡령·잠적' 합천군 부실한 감독 도마 위
  9. 9부산 어린이대공원에 실감형 가상 동물원 조성된다
  10. 10부산 강서차고지 개장 40여일 유예...市 노선변경 재검토
  1. 1기세 오른 롯데도 “스윕은 어려워”
  2. 2‘부산의 딸’ 최혜진, 2년7개월 만에 KLPGA 정상
  3. 3수비의 본고장 정복한 김민재, 아시아 선수 첫 ‘수비왕’ 등극
  4. 4AI가 꼽은 ‘여자 스포츠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
  5. 5맨체스터의 주인은 맨시티
  6. 6만루홈런 이학주 "양현종 투구 미리 공부…독한 마음 가지겠다"
  7. 7"나이지리아 나와" 한국 8강전 5일 새벽 격돌
  8. 8‘봄데’ 오명 지운 거인…올 여름엔 ‘톱데’간다
  9. 9‘사직 아이돌’ 데뷔 첫해부터 올스타 후보 올라
  10. 10박경훈 부산 아이파크 어드바이저 선임
우리은행
‘감정노동현장’ 콜센터 취업기
폭언에 손 덜덜…화장실도 보고하며 가 방광염 달고 산다
사진가 김홍희의 Korea Now
유월 햇살 아래, 그림자는 더 뜨겁게 삶을 노래하네
  • 부산항쟁 문학상 공모
  • 부산엑스포키즈 쇼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