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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3 <2> 10월의 트라우마- 당시 경남대 학생 정인권 씨

“항쟁 불씨 댕긴 ‘죄’로 고문… 입대·복학 뒤에도 감시 당해”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0-10-22 19:46:50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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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학년 당시 유신의 폭압성 체감
- 집회 연설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 배후집단 지시받은 주모자 낙인
- 5박6일 기절때까지 두들겨 맞아

- 검찰도 얼굴 가래 뱉으며 굴욕줘
- 군대조차 보안대 인근 부대 복무
- 복학했는데도 군인 가끔 찾아와

- DJ 보좌관하다 회의감에 귀향
- 치유못한 상흔에 분노조절 못해

“날 고문한 경찰들, 그 새끼들한테 보복하지 못한 게 너무 울분이 치미는 거야. 그놈들이 지금 어디 사는지도 알아봤는데…. 그때의 모욕이 갈수록 사람을 미치게 해.”

41년 세월에도 아물지 않은 국가폭력의 상흔을 더듬으며 정인권(62) 씨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1979년 10월 18일, 경남대 국제개발학과 2학년이던 그는 경남 마산(현 창원시)에서 부마민주항쟁에 불씨를 댕긴 ‘죄’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은 내면 깊은 곳에 대못을 박았다.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가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듯, 항쟁에 처음 열기를 불어넣었던 그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 분노에 오랫동안 신음했다. 지난 17일 경남 진주시 지수면 어느 산속에 자리한 외딴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때 치욕을 도저히 못 참겠어”

   
부마민주항쟁 당시 경남대에서 선동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모진 국가폭력에 사달린 정인권(62) 씨가 ‘통닭구이’ 고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손과 양발을 묶은 뒤 무릎 아래로 막대기를 집어넣어 두 책상 사이에 매달아 물고문 등을 자행하는 것을 말한다. 김민훈 기자
정 씨는 항쟁이 터지기 한 달 전부터 동료들과 시위를 계획했다. 대학 교과서조차 압수해 불태우는 경찰을 보며 유신정권의 폭압성을 체감했다. 김영삼 의원 제명 사건, YH 여공 사건 등이 잇달아 터지자 ‘더는 가만 있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섰다. “중간고사일인 22일 즈음에 시위하려고 했죠. 그런데 16일에 일어난 부산의 항쟁 소식이 17일 전해진 겁니다.”

다음날인 18일 경남대는 부산발 항쟁 소식으로 들썩였다. 도화선만 마련된다면 금세 폭발할 듯했다. 이날 경남대는 휴교령을 내려 학생의 귀가를 독촉했다. 그러나 이미 학생 수백 명이 교정에 모여 있었다. 터질 듯 말 듯 한 긴장이 계속됐다. 그런 가운데 정 씨가 학생들 앞에 섰다. “선배 장정욱 씨가 농담 삼아 ‘네가 한 달 준비했으니 나서보라’고 했어요. 조금 망설이다가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3·15 영령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자’.” 학교는 순식간에 ‘유신 철폐’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온 마산 시민이 ‘독재 타도’를 부르짖었다.

그는 도망쳐야 했다. 붙잡히면 고문당할 게 빤했다. “일단 대구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이대로 잠적하면 부모님이 제 소식을 알지 못하니, 포항 부모님 댁에 상황을 말씀드리러 갔습니다. 거기서 경찰에 잡혔죠.” 경찰에게 정 씨는 ‘사태의 주모자’였다. 경찰은 그가 배후 집단의 지시를 받아 항쟁을 일으킨 것으로 조작하려 했다.

“날 고문한 놈 얼굴을 지금도 기억해요. 얼굴이 곰보야. 못되게 생겼어.” 마산경찰서에서 그는 5박 6일 얻어맞았다. “서장실에서 의자에 묶인 채 과장이란 사람에게 2번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맞았죠. 그러곤 지하 취조실로 끌려갔어요. (얼굴이 얽은 경찰관이) 양팔과 양발을 묶어 무릎 사이에 쇠꼬챙이를 끼우고는 책상 사이에 매달았습니다. 그러곤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콧구멍에 물을 들이부었습니다. ‘통닭구이’ 고문이라고 하죠.”

정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고서야 고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굴욕까지 끝난 건 아니었다. 마산교도소로 이송된 그는 검찰의 행패에 치를 떨어야 했다. “마산지검 공안부장이 유리 재떨이로 머리를 때리면서 엄청난 모욕을 줬어. 아, 돌아버리겠더라고. ‘더러운 놈’이라면서 가래침을 얼굴에 뱉었다고.” 침착하게 41년 전을 회상하던 정 씨는 점차 격앙돼갔다.

그는 일상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노가 폭발한다고 했다. 누군가를 때려 다치게 하거나, 과하게 술을 마셔 불미스러운 일을 초래한 적도 왕왕 있었다. 불쾌한 일을 마주하면 그날 당한 모욕이, 해소되지 못한 그때 분노가 불쑥 튀어나오는 탓이라고 한다. “그놈들이 고문할 때 ‘네가 여기서 살아남아도 평생 불구다. 빌빌거리며 살다 죽게 만들어놨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조졌단 말이야. 그게 잊히겠어요? 내 눈에 띄는 날 죽은 목숨이야.”

■“죽을 때까지 감시받는구나”

정 씨의 정신에 짙은 흉을 지게 한 국가는 그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몇년간 그를 요시찰인물로 감시했다. 늘 누군가가 그의 등 뒤를 주시했다. “1981년 입대했는데, 논산훈련소에서 혼자 2주를 더 대기했어요. 한참 뒤 나를 데려가는데, 육군본부 중앙문서관리단이었어요.” 군의 기밀문서를 마이크로필름으로 만들어 보관하는 부대였다. 정 씨는 아무런 뒷배도 없는 데다 ‘빨갱이’ 낙인까지 찍힌 자신이 왜 이곳에 배치됐는지 알 수 없었다.

제대를 한 달 앞두고서야 진실을 알았다. “부대 바로 앞에 보안대가 있었어요. 거기서 석 상사란 사람이 오더니 박 대통령 유고 관련 요주의 인물이라 코앞에서 일거수일투족 감시한 거라더군요. 결코 놔주지 않는구나, 죽을 때까지 감시받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석 상사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앞으로 낯선 자가 접근해 친절을 베풀 거다, 냄새가 난다 싶으면 이야기를 전하는 식으로 도와달라. 배후조직이 이런 식으로 날 포섭해올 거란 말이었죠. 어차피 넌 나가서도 감시 대상이다. 너도 산전수전 겪었지 않나, 너와 관련 없이 비밀리에 조사할 거다면서요.”

이 시기는 전두환 정권이 학생 프락치를 이용해 시위를 차단하던 ‘녹화사업’이 자행되던 때다. 실제 정 씨는 복학 이후 한 달에 한 번꼴로 군 인사로 보이는 자가 건네는 ‘안부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께름칙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후배들이 학생운동 합류를 권해도 응할 수 없었다. “나는 보안대에서 24시간 감시하는 사람이잖아요. 나와 만나면 너네들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지 모른다, 아는 체하지 말라며 거절했죠. ‘겁보가 됐다’며 욕을 좀 먹어야 했습니다.” 졸업 후 김대중 전 대통령 보좌관으로 잠시 일했던 그는 이내 마산으로 돌아가 작은 공장 등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정 씨는 자신처럼 국가폭력의 후유증에 몸부림치는 이들을 치유하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유신의 하수인들을 찾아야 합니다. 독일은 나치 가담자를 지금까지 처벌하지 않습니까. 항쟁 관련 단체는 피해자의 응어리를 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일회성 보상으로 끝이 아니라, 그들의 현 생활 실태를 파악하고 즉각적인 도움을 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상처는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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