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같은 년 죽여서 바다에 던져도 아무도 몰라.”
1979년 10월, 서울에서 일하던 방모(여·65) 씨는 ‘부산에 큰 시위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행 버스에 올랐다. 그달 19일, 지나가는 시민에게 ‘현 정부는 반(半)독재다’고 말했다가 계엄군에 연행됐다. 물고문에 이어진 살벌한 협박은 지금도 그를 괴롭힌다. “지금도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제 얘기를 알게 될까 여전히 겁나요.”
“고문 경찰관이 지금 여기 있다면 바로 죽여버릴 겁니다.” 같은 달 18일, 당시 부산 신선중 3년 김효영(55) 씨는 마산에 놀러 갔다가 부마민주항쟁을 목격했다. 신기한 마음에 시위대를 따르다 경찰 매질에 머리가 깨졌다. 붙잡힌 뒤 그는 난데없는 방화 혐의를 쓰고 죽도록 맞았다. 43일 만에 석방된 그는 중학교 복학조차 거부당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망친 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항쟁 당시 군경에 검거된 부산 마산 시민은 공식적으로 1563명이다. 부산의 경우 그해 10월 18일 0시 이전 검거 상황을 토대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날 이후에도 부산에는 항쟁 여진이 꿈틀거렸고,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이도 적지 않았다. 실제 피해자는 공식 통계보다 더 많다.
이들 전부 구속·즉결심판·훈방 여부와 관계 없이 불법으로 구금당했다. 짧게는 나흘, 길게는 보름 가까이 근거 없이 철창에 갇혔다. ‘김일성과 만났느냐’ 같은 헛소리에 답하지 않은 대가로 혹독한 고문에 시달렸다.
피해자들은 자신을 피투성이로 만든 ‘유신의 하수인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입 모은다. 그러나 현재로선 가해자가 누군지조차 파악되지 못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발포 명령자 등 가해자 수색에 사활을 거는 것과 대조적이다.
부마항쟁진상규명위원회 차성환 위원은 “41년 전 고문 가해자들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피해 진상규명과 치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부마민주항쟁 당시 검거 인원 |
지역 |
구속 |
즉결심판 |
훈방 |
합계 |
부산 |
61명 |
526명 |
471명 |
1058명 |
마산 |
59명 |
125명 |
321명 |
505명 |
전체 |
120명 |
651명 |
792명 |
1563명 |
자료 = 부마민주항쟁 진상조사보고서 ※부산지역은 1979년 10월 16~17일, 마산지역은 그 달 18~19일 기준. 이날 이후 검거된 시위자는 군·검·경 집계에서 제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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