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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높이고 차이 줄이자 <1-4> 마음의 틈새- 원도심 ‘아픈 손가락’

동구 ‘자부심’ 원도심 중 최하…삶의 질 높일 브랜드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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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이후
- 중·서·영도구 50대 이상 자부심
- 37.2% → 43.5%로 올랐지만
- 동구는 35% → 32% 유일 추락

- ‘이바구길’ 콘텐츠로 키웠지만
- 열악한 주거 환경·삶은 그대로
- 원주민에겐 별다른 의미 못 줘
- 향후 도시재생 방향 고민 필요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지금의 부산을 있게 한 뿌리. 전쟁과 피란의 경험이 압축된 공간. 그 시절 애환을 기억하는 50대, 60대 이상 주민은 수십 년 살아온 원도심에서 겹겹이 쌓인 세월을 본다. 이곳에서의 고생은 ‘아름다운 성장기’로 남았다. “고생은 했지만, 그때가 참 좋았지.” 시민 대부분이 중·서·동·영도구를 ‘구도심’이라 칭하기를 꺼리고, ‘원도심’이라 부르는 데도 이런 정서가 깔렸다. 한때 부산 그 자체였던 지역에 보내는 일종의 ‘예우’다.
지난 27일 오후 촬영한 부산 동구 좌천동 좌천초등학교 주변 전경. 국토교통부와 부산시는 폐교한 좌천초 맞은쪽에 순환형 임대주택을 조성하는 내용 등을 담은 ‘동구 주거 취약지 도시재생 방안’을 지난 25일 발표했다. 좌천초 유휴 부지엔 문화·복지·교육·주민 편의시설이 포함된 복합 거점 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권혁범 기자
국어사전에도 없는 ‘산복도로’가 원도심 전체를 잇는다. 피란민 정착 이후 산복도로에 형성된 독특한 주거 형태가 아직 그대로 자리 잡고 있다. 역사와 추억이 산복도로를 타고 흐른다. 낡은 원도심에 재개발·재건축 대신 ‘재생’이란 이름의 사업이 집중되는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같음’ 속 ‘다름’

그렇게 추억이 가공돼 온 원도심은 공통 생활권을 이룬다. 특히 50대, 60대 이상 원도심 주민은 번성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비슷한 정서와 의식을 공유한다. 사람이 썰물보다 빠르게 빠져나가는 원도심을 끝까지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원도심 4개 구를 하나로 합치는 논의도 계속됐다. 원도심을 단일 공간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실마리를 잡은 아이디어다.

그러나 원도심 50대, 60대 이상 원주민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동구 쪽에서 ‘틈’이 발견된다. 지난 10년간 도시재생 사업을 전후로 원주민의 자부심이 제법 크게 올랐지만, 유일하게 동구민만 추락했다.

부산시 사회조사 마이크로 데이터를 연도별로 분석해봤다. 그 결과 원도심 4개 구 50대, 60대 이상 주민의 자부심은 2010년 37.2%에서 2015년 42.6%, 2019년 43.5%로 꾸준히 상승했다. 원도심을 제외한 나머지 12개 구·군 주민의 자부심이 2010년 35.8%에서 2015년 43.9%로 올랐다가 2019년 39.7%로 다시 하락한 것과 대조된다. 하지만 원도심 50대, 60대 이상 주민의 자부심이 다 오른 건 아니다. 부산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5060+ 동구민은 2010년 35.1%에서 2019년 32%로 줄어 원도심 평균을 깎았다.

국제신문이 2015, 2017, 2019년 시 사회조사 마이크로 데이터를 토대로 만든 ‘마음의 틈새’ 지표(국제신문 지난 1일 자 3면 등 보도)에서도 원도심 내 엇박자가 확인된다.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거주지에 대한 소속감(정체성), 생활환경 만족도 등을 종합해 수치화한 지표다.

부산 16개 구·군 50대, 60대 이상 주민의 지표 순위(1~32위, 상위권일수록 심리적 격차가 작음)를 비교하면 영도구 60대 이상이 1위다. 중구 60대 이상(6위), 서구 60대 이상(11위) 등도 상당수 동부산 주민보다 높은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동구는 예외다. 동구 50대는 32위로 최하위, 60대 이상은 24위에 그쳤다.

지표의 11개 세부 항목 중 ‘자부심’과 ‘소속감’에서 원도심 주민 간 격차가 두드러졌다. 중구 60대 이상의 자부심은 54.8%로 부산 전체 5060+ 세대 중에서도 가장 높다. 소속감도 65.7%로, 원도심 5060+ 세대 가운데 1위다. 이에 견줘 동구 50대가 자부심을 느끼는 비율은 31.7%로, 원도심 5060+ 세대 중 제일 낮다. 소속감도 45.7%에 그쳐, 다른 원도심 주민과 차이를 보인다.

동구 60대 이상 주민 역시 자부심은 41.2%, 소속감은 55.8%에 머문다. 같은 연령대의 영도구민(자부심 52.7%, 소속감 62.8%) 서구민(자부심 44.3%, 소속감 58.0%)보다 모두 떨어진다.

■재생의 가치 높여야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접근 방법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산복도로에서 살게 된 내력과 산복도로의 역사 등을 복원해 산복도로를 부산의 랜드마크로 만들자… 그들이 위안받고 자부심을 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2010년 6월 국제신문 기획 시리즈 ‘산복도로 리포트’의 전문가 좌담에서 한국해양대 김정하 동아시아학과 교수가 짚은 ‘산복도로 르네상스’ 재생 사업의 본질이다.

지난 10년간 원도심에 일어난 변화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토대 위에서 이뤄졌다. 원도심 대부분은 재개발로 ‘싹 다 갈아엎을’ 수 없는 곳이다. 영세한 노인 인구가 많아 재개발은 곧 원주민의 대규모 이탈을 의미한다. 산복도로 지형이 위험한 데다, 망양로 일원이 고도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층수 높은 아파트를 올릴 수도 없다. ‘피란수도’로 요약되는, 부산은 물론 한국 근현대사가 녹아든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동안 원도심만큼은 개발을 대신할 새로운 도시계획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부산형 도시재생이 그렇게 시작됐다. 2011년부터 올해까지 8차에 걸쳐 810억 원이 투입됐다. 원도심을 위한 ‘최소한의 투자’였다.

동구는 이런 시도가 절실한 곳이었다. 산복도로의 열악함을 떠안은 데다, 원도심이면서도 부산의 정체성을 드러낼 상징이 마땅찮아서다. 동구는 국제시장·부산타워(중구), 태종대·영도대교(영도구), 송도해수욕장(서구) 같은 ‘그 시절’ 부산을 대표할 자산이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도심발전포럼 한 연구자는 “차이나타운이 동구의 자긍심이 되지 못한다. 동구에는 ‘여기가 부산의 중심이자 얼굴’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콘텐츠가 부족하다. 이런 도시 자산 불균형이 마음의 격차로 나타난다”고 봤다. 동구 일대 이바구길 조성이 도시 재탄생의 첨병으로 나선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나 동구는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다. 외부 사람 눈에는 동구의 상징으로 비치는 것이 동구민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선물하지 못했다. 산복도로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원주민 삶의 질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사업을 구상한 부산연구원도 이런 현상에 주목했다. 연구원은 올해 1월 발간한 부산학 연구총서 ‘산복도로의 어제와 오늘’에서 지난 10년간 사업을 평가했다. 원도심 중 동구 사업지는 유독 쓴소리를 들었다. 동구 산복도로 사업을 평가한 부산대 행정학과 최원석 강사는 “동구는 이바구길 조성에 공을 들였다. 이제는 동구의 대표 공간이 됐다. 하지만 이는 외부인이 바라볼 때 얘기다. 조선시대에 호랑이가 출몰했다며 ‘호랭이 이바구길’을 만든다고 해서 주민이 옛 추억을 소환해 오늘을 느낄 수 있나.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만 불렀다. 정작 주민의 생활 여건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했다.

2019년 시 사회조사에서 50대, 60대 이상 동구민은 ‘동구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로 이바구길(20.1%)과 산복도로(17.2%)를 우선 꼽았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이들은 동구의 노후 주거환경 개선책으로 재개발·재건축(40.9%)을 지지했다. 겉으로 보이는 ‘얼굴’은 외부인의 눈을 만족시켜줬을 뿐, 원주민의 주거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해석을 입증한다.

이에 따라 산복도로 르네상스 이후의 도시재생 방향을 놓고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강사는 “동구는 도시재생 기조를 유지하느냐, 재개발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북항 재개발이 돌파구처럼 여겨지지만, 대다수 동구민과는 상관없는 사업이다. 산복도로 주민에게 바다 조망만 해칠 뿐”이라며 “원주민 삶의 질이 얼마나 좋아지느냐가 중요하다. 앞으로의 도시계획은 공동체성을 강화하면서도 삶의 객관적 여건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도 위 408개 점은 올해 6월 20일(공공데이터 포털 등록일) 기준 동구의 동별 공·폐가 위치를 나타낸다. 갈색 선은 구 내 도로망이다. 산과 간선도로 사이에 실핏줄처럼 얽힌 산복도로 주변으로 공·폐가가 밀집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권혁범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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