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창원 걸쳐 있는 우곡저수지
- 주변 1.5㎞ 정비해 둘레길 조성
- 느긋하게 걸으면 30~40분 소요
- 산 그림자와 어우러진 맑은 물
- 도열한 아름드리 벚나무 군락 등
- 빼어난 풍광에 방문객 연신 찰칵
요즘 지자체마다 쓸모없이 방치하다시피 했던 저수지 주변을 명품 둘레길로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른바 ‘저수지의 재발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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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그림자가 잔잔한 수면에 내려앉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우곡저수지의 둘레길(우동누리길)을 시민이 걷고 있다. 우동누리길은 김해시와 창원시에 함께 걸쳐 있다. 박동필 기자 |
저수지는 농촌의 도시화에 따라 주변의 논밭이 사라지면서 사실상 버려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저수지를 끼고 새롭게 단장된 둘레길이 코로나19 시대를 이겨낼 비대면 운동시설로 탈바꿈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우동누리길은 1.5㎞ 우곡저수지 주변에 만들어져 준수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경계구역상 반은 김해, 반은 창원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아침이나 저녁이 되면 ‘김해 사람’과 ‘창원사람’이 만나 나란히 길을 걷는 풍경이 연출된다. 행정구역상 경계를 넘나들며 둘레길을 돌면 흥미가 배가 된다고 전한다. 산과 물과 사람이 어우러진 경치에 반해 탐방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연신 스마트폰 셔트를 누른다. 우동누리길은 그런 곳이다.
쉬엄 쉬엄 걸으면 30~40분 걸린다. 이 곳은 정병산 아래의 빼어난 풍광 덕분에 ‘꽤 잘 만들어졌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병산 그림자 어른거리는 저수지
진영읍 서천마을에 차를 댄 뒤 둘레길에 접어들면 ‘잘 왔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시원한 저수지 풍경은 답답한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가슴에 ‘힐링’을 선물한다.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정병산의 그림자가 저수지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 바람결에 저수지 물 위로 잔잔한 파문이 일자 산 그림자는 산산이 부서진 뒤 모습을 감춘다.
저수지는 수정처럼 투명하고 맑아 신비롭기까지 하다. 도심 속 한쪽에 꽁꽁 숨겨둔 비밀스러운 ‘왕의 정원’을 본 기분이랄까.
둘레길을 따라가다 만난 과수원의 단감나무는 아직 푸른빛이 채 가시지 않은 씨알들을 가득 품은 채 따사로운 볕을 쬐고 있다. 까마귀 소리가 창공을 가득 채울 무렵, 저만치서 낚싯대를 어깨에 둘러맨 ‘꾼’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화가가 물감을 묻힌 붓을 들면 그 자리에서 멋진 풍경화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산수화의 소재들이 빨랫줄처럼 널려 있다.
■시 경계를 넘나드는 둘레길
둘레길이 작은 교량으로 바뀌고 그 너머에 미니 운동기구들이 소담스럽게 탐방객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계속 길을 가니 30년은 족히 됨직한 벚나무 군락이 울퉁불퉁한 몸통을 자랑하며 도열해 있다. 숲이 아름드리 나무로 성장한 것은 마르지 않는 저수지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탐방객 머리 위로 퍼져가는 비비새의 청아한 목소리에는 어느덧 가을의 향기가 묵직하게 실려있다.
정자를 지나자 휘늘어진 버드나무를 건너 맞은편으로 향하는 덱이 펼쳐진다. 김해 진영에서 창원 동읍으로 넘어가는 경계다.
70대의 노부부는 놓칠세라 서로 손을 꼭 잡고 경계점에 놓인 덱을 조심스레 걸어간다. 노부부의 모습이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원래 이쪽 둘레길은 몇년 전 창원시가 먼저 만들어 놔 한쪽에만 둘레길이 있었다. 이번에 김해시가 나머지 반쪽에 길을 만드니 짝 잃은 거울이 합쳐지듯 온전한 저수지길이 완성된 것이다.
그늘이 별로 없는 김해 쪽과는 달리 창원 쪽에는 초록의 양산처럼 그늘이 많아 걷기에 편했다.
풀숲 저만치에서 쓰르라미 떼가 연신 구슬픈 곡조를 연주하고 있다. 대지를 달궜던 여름도 어느덧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선선한 바람이 소매 속으로 파고든다. 제방 둑길을 지나 다시 진영읍으로 경계를 넘어오면 정확하게 둘레길을 한 바퀴 돌게 된다.
■마을의 전설이 잠긴 저수지
둘레길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저수지는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서천마을 신연일(70) 이장은 “원래 저수지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70년 전에 일제에 의해 저수지가 조성되면서 사라졌다”고 들려줬다.
그는 “어릴 적 나보다 몇 살 많은 누님한테 들은 얘기다. 저수지가 수몰되면서 떠난 주민은 저수지 아래 진영 서천마을 등으로 흩어졌다”고 회고했다. 그 당시 저수지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정병산 자락을 파헤쳐 조성됐다는 것이다.
저수지에 고인 물은 아랫마을 들녘으로 내려가 농작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신 이장은 “지금도 저수지는 농사용 기능을 하지만 이젠 우리 마을과 인근 동읍 주민의 힐링 장소로 더 유명해졌다”며 “나도 아침마다 둘레길을 걷는다. 공기가 너무 좋아 인근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도 가족의 부축을 받은 채 휠체어를 타고 돈다”고 들려줬다. 이곳 저수지 주변 거주자도 많이 바뀌고 있다. 과거 농사를 짓는 주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공기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근 도회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