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원도심 산복도로 주택이 국지성 호우에 잇따라 무너지고 있다. 주택은 물론 이를 지지하는 옹벽마저 낡고 약해져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도미노 피해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서구 초장동 한 주택. 이곳은 지난 8일 오전 5시30분께 집 뒤 축대가 무너지면서 부엌 안까지 돌과 바위가 쏟아져 들어왔다. 집에서 잠을 자던 A 씨는 “처음에 누가 문 두드리는 소리인 줄 알고 깼는데 순식간에 굉음과 함께 바위가 집안을 덮쳤다”며 “다른 곳에 이사 갈 수도 없는 처지라 축대 보수가 된다 해도 비 올 때마다 가슴을 졸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불안하기는 이웃도 마찬가지다. 사고 현장 바로 옆집 역시 뒤 축대가 일부 밀려 나와 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박임남(85) 씨는 “옆집 사고 이후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다. 옹벽의 빈 공간에 물이 차서 무너질까봐 매일 걱정이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동구 수정동에서는 호우에 옹벽이 무너져 주택 일부가 붕괴됐다. 당시 주택 파편과 생활가구가 쓸려 내려가면서 아랫집 주민 29명이 긴급 대피했다. 앞서 지난달 23일에도 동구 안창마을 주택 옹벽이 붕괴돼 주민 8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주택 붕괴 위험이 산복도로에 상존한다는 점이다. 산복도로 주택은 대부분 한국전쟁 전후로 형성됐다. 도시계획이 없던 시절 경사지를 깎아 옹벽 위에 계단식으로 다닥다닥 붙여 지어진 것. 지금처럼 정확한 설계에 따라 토압을 견딜 수 있게 성토하지 않아 지반이 약한 데다 50~60년이 지나면서 옹벽 내부에 빗물이 유입됐고, 인근 배수시설 역시 완전하지 않아 옹벽 붕괴로 인한 주택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동아대 장준봉(토목공학과) 교수는 “물에 사람이 들어가면 몸이 뜨듯이 흙도 물이 들어가면 부력에 의해 입자 간 작용하는 힘이 적어져 지반이 받는 저항력이 약해질 수 있다”며 “옹벽에 작용하는 토압 외에 배수 불량으로 인해 작용하는 수압이 높아지면 옹벽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으니 산복도로 환경에 맞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9일까지 접수된 부산 지역 옹벽·축대 붕괴 사고는 총 16건으로 이 중 6건(37.5%)이 원도심 산복도로 구간서 발생했다. 동구가 4건이었고 서구와 영도구가 각 1건이었다.
집중호우 때마다 산복도로가 붕괴 위험에 노출되자 동구는 지난해 12월 취약계층이 옹벽 등 위험시설물 안전점검을 받고자 할 때 그 비용을 지원하는 ‘취약계층 재해위험옹벽 등 시설물 안전관리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신설했다. 하지만 대상자가 먼저 신청해야 해 실제로 혜택을 받는 경우가 없었다. 이에 낡은 위험 옹벽에 한해서는 관할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판단, 안전진단을 하도록 하는 조례를 준비 중이다.
동구의회 이상욱 의원은 “산복도로는 사람으로 치면 노인으로,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며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조처가 시급한 곳은 취약계층 여부와 무관하게 구청이 선제적으로 안전진단을 진행하도록 조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