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관련
- 부산 판결문 81건 분석 결과
- 사망자 발생 기소된 54곳 중
- 1곳 무죄·53곳 벌금형 그쳐
- 양형기준도 없어 ‘솜방망이’
지난 4월 21일 오전 부산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 건물 11층에서 콘크리트 타설 설비가 추락했다. 50대 노동자 A 씨는 같은 층에서 전선 배관 작업을 하다가 무너진 설비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동료 노동자 3명도 다쳤다. 시공사는 대기업 S건설사였다. A 씨는 이곳에서 타인을 위한 보금자리를 짓다가 정작 자신의 보금자리로는 영원히 돌아가지 못했다.
지난 6월 20일 오후 같은 대기업 S건설사가 시공하는 부전~마산 복선전철 공사 현장. 지하 터널에서 폭발이 일어나 40대 노동자 B 씨가 숨졌다. 터널 내부의 물을 빼내려고 배수구를 만드는 작업을 하던 중 폭발로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누구도 B 씨의 ‘퇴근’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재범률 97%, 부산에서만 일주일에 1명꼴로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범죄. 바로 산업재해(산업안전보건법 위반)다. 피해자는 대부분 하청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름 모를 노동자는 오늘도 산업 현장에서 떨어지고, 깔리고, 끼이고, 갇혀서 죽는다. “일하다 죽지 않게….” 그저 가족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노동자의 외침은 공중으로 흩어진다.
국제신문은 2017년부터 올해 5월까지 부산지역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81건의 판결문을 모두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사망자가 발생한 57건에서 기소된 기업(법인)은 54곳이었다. 이 가운데 53곳은 벌금형(150만~2000만 원), 나머지 1곳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산재 사망 사고로 처벌받은 기업이 노동자 1명의 ‘목숨값(벌금)’으로 낸 돈은 평균 567만 원.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가장의 무게’ 치고는 한없이 가볍다.
여기에다 전체 81건의 판결에서 법정에 선 203명(법인, 자연인 합계) 중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단 1명도 없다. 81건 중 19건은 안전관리 담당자 등만 처벌받고 기업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노동계는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원청 기업과 사업주를 무겁게 처벌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기업을 처벌하는 유일한 수단은 벌금형인데, 현행 양형 기준에는 벌금형 규정이 아예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권태성 부산고용노동청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과실치사상 범죄군으로 분류된다. 사망 사고를 개인 과실로 보고, 사업주가 안전 설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며 “국민 법 감정에 맞게 새로운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범 신심범 임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