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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전우여’ 통도사 옛 육군병원 입증할 낙서 나왔다

올해 6·25전쟁 70주년

  • 김민주 기자
  •  |   입력 : 2020-06-21 22:37:53
  •  |   본지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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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1정양원 분원 소재지 추정
- 입·퇴원한 내용, 탱크 그림 등
- 대광명전 곳곳서 기록 발견돼
- ‘정전 웬말이냐’ 등 시대상 반영
- 보존·조사 위한 정부 관심 필요

6·25전쟁 때 경남 양산 통도사에 육군병원이 자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사료가 또다시 발견됐다. 당시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군인들이 남겼던 것으로 보이는 낙서가 경내 법당에서 발견되면서 통도사는 이를 바탕으로 육군병원 소재지로 공인받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6·25전쟁 당시 제31육군정양원 통도사 분원에서 치료받은 군인이 떠나면서 남긴 것으로 보이는 이별사(왼쪽)와 ‘4284년 6월 10일 평양’이라고 새긴 글귀. 영축총림 통도사 제공
영축총림 통도사는 최근 경내 대광명전에서 6·25전쟁에 나섰던 군인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발견됐다고 21일 밝혔다. 칼 등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글귀는 물론, 연필로 쓴 것으로 보이는 비교적 선명한 문구도 포착됐다. 어른 손바닥 정도 크기인 이 기록들은 ‘단기 4284년’(1951년)을 명기하며 당시 통도사에 있던 육군병원에 입·퇴원한 내용을 포함, 이곳에서 치료받은 뒤 퇴원하며 남긴 ‘이별사’, 탱크와 트럭 그림 등을 담고 있다.

통도사 내 육군병원은 ‘제31육군정양원’의 분원으로 추정된다. 본원은 당시 부산 동래에 있었는데, 전쟁 발발로 치료시설이 부족해지면서 양산 통도사에 분원이 설치됐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통도사 고승과 일대 주민의 구전, 경내 곳곳에 남겨진 기록 등 흔적을 통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육군병원 분원이 존재했다는 기록물은 지난해 10월 통도사 용화전에서도 발견됐다. 당시 발굴된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에는 ‘한국전쟁 후 국군 상이병사 3000여 명이 통도사에 들어와 1952년 4월 12일 퇴거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통도사는 ‘1951년 10월 이승만이 제31 육군병원 통도사 분원 장병에게 양말 1600족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동아일보 보도를 확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기록 발견에도 아직 정부 차원의 공인은 받지 못했다.

이번에 확인된 낙서는 제31육군정양원 통도사 분원에 있던 병사들의 생활상과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정전(停戰)이 웬 말이냐’는 짧은 낙서는 1951년 8월 부산 충무로 등지에서 일어났던 ‘정전 반대 시민궐기대회’ 등 사회 동향을 반영한다. 앞서 그해 6월부터 정전회담이 진행된 사실이 알려지자 대한청년단 등 단체가 궐기대회를 주도했다. ‘가노라 통도사야/잘 있거라 전우들아/정든 통도를 떠나랴고 하려마는/세상이 하도 수상하니 갈 수밖에 더 있느냐’는 내용의 글귀에서는 비극적인 내전에 참전해야 했던 군인의 회한이 읽힌다. 또 ‘단기 4284년 5월 29일 도착해 6월 12일 떠나간다’ ‘4284년 평양’ 등의 짤막한 글귀에서는 당시 어디에서 온 군인들이 언제 이곳 통도사 분원에서 치료를 받고 떠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그리운 가족, 연인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으로 보이는 내용 또한 곳곳에서 발견됐다.

통도사 고승과 일대 주민을 대상으로 구술사 정리 작업을 하는 이병길(양산 보광중 교사) 씨는 “구술 내용을 종합하면 분원의 원장은 당시 주지실을 원장실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간이면 군인 40여 명이 일대 보초를 섰고, 총성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며 “군인들도 불상 등 경내 시설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다만 난로를 피우던 중 명부전 앞 처마 끝이 그을리는 등 사고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긴 세월에도 군인 낙서 기록이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었던 데 대해서는 “70년 세월 동안 대광명전에 증·개축 등 개·보수 작업을 하지 않아 그대로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견은 천운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통도사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번 기록이 제31육군정양원 통도사 분원의 존재를 입증할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통도사 정대 스님(사회과장)은 “지난해 연기문 발견 이후 국방부 국가기록원 수도통합병원 등에 보존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회신조차 받지 못했다. 이들 기록의 보존과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한 정부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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