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만 원 모아 식당 쿠폰 구입
- 마을식당·어르신 함께 돕기 나서
- “코로나 장기화로 지친 마음 달래”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틀어박혀 사람도 못 만나. 유일한 친구는 테레비뿐이었는데, 같은 마을 주민이 식권을 준 덕분에 식당에서 다른 할매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너무 좋아.”

14일 부산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 내 하동식당 앞에서 주민과 ‘시민이 운영하는 복지법인 우리마을’ 관계자가 식권을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14일 오후 부산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에서 만난 복순이(84) 할머니는 기자에게 꼬깃꼬깃 접은 식권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줬다. 이 식권은 매주 금요일 점심, 마을 안에 있는 하동식당과 비둘기식당에서 사용할 수 있다. 식권을 내면 불고기백반이 제공된다.

지난달 말 매축지마을 주민 대여섯 명이 5년간 십시일반 모은 50만 원과 ‘시민이 운영하는 복지법인 우리마을’이 50만 원을 보태 100만 원의 성금을 마련했다. 복지법인은 현금을 직접 지원할 수 없어 해당 금액만큼의 돼지고기를 구매해 이 두 식당에 전달했고, 남은 주민 성금 50만 원으로 식권 200여 장을 사 마을 어르신에게 나눠줬다. 식권은 1인당 한 장이다. 마을 내 식당 두 곳이 지난 8일 어버이날부터 매주 금요일 어르신의 식사를 책임진다.

하동식당 하경임(여·63) 사장은 “코로나 탓에 요즘은 손님 발길이 뚝 끊겼는데 기부도 받고, 마을 어르신께 고기를 대접해드려 뜻깊다”고 말했다.

이번 기부는 코로나19 여파로 매달 열리던 ‘매축지마을 국수나눔잔치’가 중단되자 마을주민이 아이디어를 내어 시작했다.

기부에 동참한 박영진(63) 씨는 “애초 코로나19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기부하려다 복지법인과 의논한 결과 마을 어르신을 위로하고, 상권에 희망을 다시 불어넣어 보자는 취지로 식권을 구매·사용하기로 했다”며 “2013년부터 매축지마을에서 매달 둘째 주 화요일 점심 때는 국수잔치가 열렸는데 코로나19 탓에 언제 재개될지 몰라 어르신의 헛헛함은 더 컸다. 식권으로 이런 아쉬움을 대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국수나눔잔치는 마을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지역주민 20여 명이 힘을 모아 매월 500여 명에게 무료로 국수를 나눠주는 사업이다. 그동안 시민이 운영하는 복지법인 우리마을과 BNK금융그룹도 함께 행사를 진행했다. BNK금융그룹은 국수나눔 행사의 연간 재료비를 후원하고 자원봉사도 펼쳐왔다.

애초 지난 3월부터 재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잠정 중단됐다.

우리마을 김일범 팀장은 “코로나19 탓에 지역복지관들이 휴관 상태인데 이런 방식의 지역 주민 간 사회적 돌봄이 중요하다”며 “지역상권도 살리고 주민 간 유대관계를 회복하는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의 대표적 빈민가인 매축지마을은 거주자가 1527명에 불과하고, 이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42.7%(652명)로 월등히 높다. 일제강점기 시절 부두에 내린 마부와 말, 짐꾼들이 쉬던 곳으로, 마구간을 개조해 여러 가구가 함께 살기도 했고 지금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마을 주변이 아파트 등으로 재개발되면서 이곳은 도시의 섬처럼 남아 있다.

김미희 기자 mah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