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히든 히어로 <7> 천생 소방관 3인 이야기

양복 입고 무작정 불길로 뛰어든 세 남자, 결국 동기 소방관 장례식엔 가지 못했다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퇴근 후 동기 장례식장 향하던
- 김준근·성치훈·조배근 소방관
- 터널 안 트럭 화재 보자마자
- 방화복도 없이 내려 초동 조치

- “남들은 내가 소방관임을 몰라도
- 스스로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 그을음·탄내로 엉망 된 세 사람
- 동기 마지막 가는 길 못 봤지만
- “불 끄다 못 갔다 하면 이해할 것”

함께 소방관이 된 동기였다. 배치된 곳이 달라 함께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퇴근 후 만나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각자 사는 인생을 공유했다. 소방관이 된 지 4년이 돼 갈 무렵 갑작스러운 비보가 날아들었다. 교통사고로 동기 녀석이 하늘나라로 갔다는 거다. 그 녀석을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 술잔 따라주고 싶었다. 그렇게 그들(조배근 소방교, 성치훈 소방교, 김준근 소방사)은 퇴근 후 경남 창원의 장례식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양복 차림으로 나타난 소방관

   
2019년 10월 28일 밤 9시 소방관 셋을 태운 차는 경남 창원 굴암터널에 진입했다. 터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운전대를 잡은 성치훈 소방교는 전방에 불이 났음을 알아차렸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 11.5t 화물트럭이 갓길에 정차돼 있었고, 차량 하부에서 불꽃이 일고 있었다. 차 안에서 봤을 때 작은 규모의 불로 보였다. 빨리 조치한 후에 다시 장례식장에 가려고 차를 세웠다. 조배근 소방교는 “불이 큰 것 같지 않으니 차량용 소화기로 불을 끄자”고 말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렸더니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됐다. 이미 트럭 운전사가 소화기를 사용했지만 불 끄기에 실패한 상태였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불이 크게 번질 가능성이 높았다. 설상가상으로 차량 뒤에는 불이 옮겨붙기 쉬운 폐지가 가득 실려있었다. 김준근 소방사는 우선 넋이 나가 있는 트럭 운전사부터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그 후 ‘불을 어떻게 잡지’라고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성 소방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소화전이 있어!”

소방관 셋은 약속이나 한 듯 호스를 풀고 물을 뿌렸다. 오랜만에 잡는 소방 호스였지만, 몸이 반응했다. 서로 대화도 없었다. 당시 성 소방교는 조 소방교와 함께 강서소방서에서 행정업무를 보고 있었고, 김 소방사는 항만소방서에서 구조 업무를 맡고 있었다. 화재 진압 관련 업무는 아니었지만, 발령 후 1년 동안 화재 현장 최전선에서 일했던 경험은 근육과 세포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해 10월 28일 경남 창원 굴암터널에 화재가 발생하자 사복 차림의 소방관들이 불을 끄고 있다. 동영상 캡쳐
폐지를 실은 차량 뒤편으로 불이 옮겨붙지 않게 방지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차량 전면과 측면에 물을 뿌려 불꽃이 뒤로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바람이 역방향으로 불자 연기와 물이 소방관들을 덮쳤다. 부산신항이 근처에 있어선지 옆 차로에 대형 컨테이너 차량이 위태롭게 지나갔다. 약 10분이 지났을까.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트럭 운전사의 신고로 관할 소방서 대원들이 도착했다. 그러나 이들은 화재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합심해 트럭에서 불을 지워갔다. 20분간 더 물을 뿌리자 불길은 잡혔다.

트럭 운전사가 ‘고맙다’며 수건을 건넸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지만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화마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하얀 셔츠는 검게 변했고, 온몸에 물을 뒤집어썼다. 그들은 결국 장례식장에 가지 않고 귀가하기로 했다.

■“먼저 간 동기도 이해할 것”

   
김준근
지난 14일 국제신문 취재진은 부산소방재난본부에서 세 명의 소방관을 만났다. 먼저 당시 불을 발견한 후 왜 내렸는지를 물었다. 솔직히 그냥 지나갔어도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소방관인지 알 사람은 없었을 테니….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퇴근한 상태에 관할도 아니니 비난할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내린 이유가 궁금했다.

조배근 소방교는 “불이 작아 보여서 금방 끄고 장례식장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리고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선 그냥 몸이 움직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관할 소방서에서 보낸 소방차가 와서도 그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큰불이
   
성치훈
잡힐 때까지 함께 불을 껐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관할 소방대에 상황을 알려준 다음 자리를 떴다. 김준근 소방사는 “직업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소방관인 걸 몰라도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며 당연하듯 말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도 없는 상태였다. 성치훈 소방교는 “화재를 발견했을 때 불을 끄자는 생각뿐이었다. 장비도 없었지만 당시 상황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했다”며 말을 꺼냈다. 그는 이어 “그때는 불을 끈다고 잘 몰랐지만 지나고 나서 약간 위험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차들도 쌩쌩 지나다니고, 불이 커지다 보니 잘 못 하면 불이 옷에 튀면 위험할 수도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조배근
천생 소방관. 세 명의 히든 히어로는 결국 그날 동기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못했다. 힘든 처지를 서로 나누던 동기라 아쉬움이 더욱 컸을 터. 그때의 심경을 물었다. 김 소방사는 “불을 끄고 난 후 얼굴과 옷이 그을렸고 탄내가 몸에 진동했다. 이대로 장례식장에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동료를 통해 조의금만 전달했다”고 말했다. 성 소방교는 “당연히 못 봐서 못내 아쉽다. 그렇지만 같은 직업의 친구기 때문에 ‘불을 끄다 못 갔다’고 하면 당연히 이해할 거다”며 웃었다.

취재진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치킨 세 마리를 전달했다. 치킨을 받아 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시민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소방관도 결국 우리 주변의 친구, 동생, 아들이었다. 영웅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엄청난 사람이 아니라 항상 곁에 숨어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평범한 사람인 셈이다. 땡큐, 마이 히든 히어로!

박호걸 신지영 기자 rafael@kookje.co.kr

※ 제작지원 BNK, 한국주택금융공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5. 5“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6. 6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7. 7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8. 8“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9. 9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4. 4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5. 5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6. 6"'국가전산망 먹통' 국정자원 화재로 소실된 데이터 완전복구 안돼"
  7. 7부산 영도 출신 이언주 의원, 부산·울산서 '공짜 질서는 끝났다' 북콘서트 개최
  8. 8靑 “조국, ‘보완수사 인정’ 입장 밝혀”…조국혁신당 “발언 맥락 외면”
  9. 9강신철 “DMZ 北지뢰제거작전은 역사상 처음…단호한 대응이라고 본다”
  10. 10조희대 “재제청 요구 헌법적 근거 없어" 거부 입장 재확인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3. 3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4. 4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5. 5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6. 6“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7. 7기업 보유 토지 공시지가 공시 의무화…‘땅부자’ 상장사 수면 위로
  8. 8[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9. 9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0. 10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7. 7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8. 8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누이센터·대봉산 휴양밸리 등 준비해 온 사업, 완성할 차례”
준비 안 된 '경찰시대'
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