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정관 향하던 버스 안
- 갑자기 의식 잃고 쓰러진 노인
- 버스 운전 중이던 김창석 씨
- 구조대 올때까지 소생술 반복
- 호흡·의식 돌린 후 119 인계
- 이후 기사 안전교육 강화 성과
- “그저 밥벌이었던 버스 운전
- 이젠 자부심 갖고 안전 책임”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노부부.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혈색이 좋지 않다. 얼굴이 갈수록 창백해지더니 갑자기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숨을 쉬지 않는다. 심정지다. 남편의 얼굴은 그대로 하얗게 질렸고, 입술은 파래졌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아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남편의 팔다리를 주물러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귀중한 목숨이 사라지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버스가 멈췄다. 그리고 넥타이를 맨 중년의 히어로가 나타났다.
■버스 기사의 첫 심폐소생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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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석 씨가 지난 10일 부산 동부산권 버스 공영차고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18년 182번 버스 기사로 심정지 온 어르신을 심폐소생술로 살렸다. 현재는 180번 버스를 운행 중이다. 동영상 캡쳐 |
지난 10일 국제신문 취재진은 부산 기장의 동부산권 버스 공영차고지에서 김창석(62) 씨를 만났다.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사람 좋게 웃으며 나타난 김 씨가 바로 히든히어로의 주인공. 30년 동안 버스 기사로 일한 김 씨에게 취재진은 ‘드라이브 선물’을 하기로 했다. 승용차 뒷좌석에 김 씨를 모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어안이 벙벙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 김 씨에게 “어느 곳에 가고 싶나”라고 물었다. 김 씨는 “그럼 대변항 쪽으로 가볼까요?”라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 늘 누군가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던 그에게 ‘승객(?)’이 된 소감을 물었다. 그는 “승객 돼 보는 것도 정말 새롭고 좋습니다”라며 웃었다. 벚꽃 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날이었다.
봄 풍경에 취해 있던 김 씨에게 ‘그날’의 기억을 물었다. 그는 “그때가 날씨가 추워지던 초겨울 무렵이었죠”라며 기억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2018년 11월 29일 김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182번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었다. 기장군 청강리를 출발한 시내버스는 시골길을 달리며 정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한 승객이 “기사님! 어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라고 소리쳤다. 김 씨는 급히 버스를 갓길에 세우고 승객에게 달려갔다. 김 모(77) 씨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스스로 ‘침착하자’고 되뇌며 천천히 승객을 살폈다. 할아버지의 입술은 파랗게 질렸고,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내로 보이는 분이 “영감! 영감”하며 울부짖으며 몸을 주물렀지만 소용이 없어 보였다. 김 씨는 다른 승객에게 119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한 후 할아버지의 코에 손을 대 호흡을 확인했다. 이어 흔들어 깨워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김 씨는 승객을 버스 바닥에 눕혔다. 가슴에 손을 대고 심폐 소생술을 시작했다.
김 씨는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교육에서 심폐소생술을 배웠다. 하지만 난생처음 하는 실전(?)은 마네킹을 대상으로 할 때와 긴장감이 달랐다.
“저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텨달라’는 생각만으로 정신없이 가슴을 압박했습니다.”
1분이 지났을까. 2분이 지났을까. 땀이 비 오듯 했다. 주변의 승객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상황을 지켜봤다.
그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갑자기 할아버지가 눈을 떴다. 호흡과 의식이 돌아와 아픔을 느꼈는지 팔로 밀어내기도 했다. 의식을 돌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실제로 할아버지가 살아나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할머니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승객들은 하나 같이 손뼉을 치며 함께 기뻐했다. 할아버지를 의자에 앉히고 잠시 기다리자 119구급대가 도착했다. 구급차를 타고 출발하기 전 할머니가 “우리 영감 살려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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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석 씨가 심폐소생술로 의식을 차린 어르신을 앉히는 모습. 동영상 캡쳐 |
김 씨에게 그날의 기억은 아직 뚜렷하게 남아 있다.
“30년 동안 한 번의 사고도 없이 지내왔는데 그런 일이 생기니 놀랍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그날 생각만 하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 할아버지 건강하게 잘 계시겠죠.”
그는 “심정지 발생 후 4~6분이 골든타임이라고 하지 않나.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써먹고 사람 목숨 살릴 줄 누가 알았겠나”라고 회상했다. 취재진과 김 씨는 대변항에서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후 항구 주변을 거닐었다. 바닷바람이 조금 차가웠지만, 김 씨는 “온종일 버스 안에서 지내다 바다를 보니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심폐소생술로 승객의 소중한 생명을 살린 일이 알려진 후 김 씨는 각종 단체에서 상을 받았다. 부산시는 부산시장 표창을, 미래통합당(당시 바른미래당) 하태경 국회의원은 모범시민상을 수여 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의인상, 부산여객자동차에서 표창패도 받았다. 그는 “영광스럽게도 많은 상을 받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식들이 ‘아빠 자랑스럽다’고 할 때는 조금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보다 더 의미 있는 변화는 버스기사를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김 씨의 사례는 ‘모범 사례’로 지금도 소개되고 있다.
버스 기사로의 사명감도 생겼다. 현재 180번 버스를 운행하는 김 씨는 “그전에는 그저 일이었다.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이제 어르신이 타면 룸미러로 계속 관찰하게 된다”며 웃었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마음가짐도 조금 바뀌었다. 승객에게 조금 더 안전하고, 친절한 기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씩 알아봐 주는 승객도 생겼다. “영광이라며 인사하는 승객이 많다. 오히려 내가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치킨을 선물했다. 김 씨는 치킨 냄새를 한번 맡고는 “정말 고소하겠다. 동료들과 잘 나눠 먹겠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만약 또 그런 일이 생기면 다시 한번 영웅이 되어주겠냐”고 물었다. 그는 “나는 영웅 아니다”며 손사래를 친 뒤 “아마 다른 버스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동료들이 더 훌륭하게 대처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래도 또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심폐소생술을 할 것이다. 그때 한 번 해봤으니 더 침착하게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박호걸 신지영 기자 rafa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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