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지역 원로 인터뷰 등 담아

“시신을 싼 담요로 만든 코트가 아주 고급스러웠지.” 한국전쟁 전후 10년간 부산 남구 우암동에서 동장을 지낸 박기줄(92) 씨가 유엔기념공원 조성 당시를 회고했다. 그때 인근 마을 사람들은 유엔기념공원으로 온 시신을 감싼 담요와 군복을 세탁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 마을 원로인 임춘규(79) 씨도 남구 용당동 앞바다에서 시신을 감싼 담요와 옷을 빨았던 기억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임 씨는 “바다가 피로 물들었고 피 냄새가 진동했다”고 말했다.

	1953년 대연고개를 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왼쪽 사진)과 1952년 남구 대연동 못골 전경.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제공

유엔기념공원 조성에 직접 참여했던 서봉출(90) 씨는 “시신를 실은 열차가 우암역에 서면 트럭으로 시신을 옮겨 유엔묘지 입구에 임시매장했다. 이후 묻었던 시신을 파내면 체액이 흥건해 시신을 햇볕에 말렸다가 다시 안장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유엔묘지 만드는 일을 1년 동안 해 번 돈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유엔기념공원 조성의 뒷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남구는 최근 ‘피란 시절 남구의 기억’ 책자 1000부를 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내년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구비 1400만 원을 투입해 이 책자를 만든 것이다. 구는 전국의 도서관 등에 책자를 우편으로 발송한다.

320쪽 분량의 책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부터 정전협정 이듬 해인 1954년까지 남구에서 촬영된 희귀 컬러사진과 당시 지역 원로 26명의 인터뷰, 유엔기념공원 전사자 명단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도 오랜 세월 미국 경매사이트 등을 통해 수집한 희귀 사진 340점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미공개 희귀 사진들이 많아 문헌적 의미가 높다. 또 향토사학자인 부산교대 공기화 명예교수가 자세한 사진 설명을 붙여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구는 설명했다.

김 소장은 “1990년대부터 부산 향토사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원본을 구하기 힘들었다. 대부분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였다”며 “해외 경매사이트 등을 통해 한국전쟁 참전 미군들이 찍은 사진 필름을 5000컷 정도 수집했다. 이 가운데 남구 지역 사진만 추렸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2297명의 전사자 명부가 실렸다. 전사자의 성명, 계급, 소속 부대, 사망 일자 등 자세한 정보를 국가별로 정리했다. 유엔기념공원 안장자 전체 명부가 책자 형태로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1951년 묘지 조성 이후 처음이다. 구 김용민 문화체육과장은 “내년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이야기와 당시의 사진을 기록하고자 했다. 이 책자가 향후 지역사회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