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항 전체 민간업체 4511개 난립
- 신항만 5, 6개 용역회사가 인력 공급
- 고용·업무 계약 체계화 통합 절실
- 관리 총괄자 없어 책임은 하청 몫 일쑤
- 산재 보상 과정도 원청 선사는 빠져
- ‘김용균법’ 확대·정부 감독권 강화를
매년 부산항에서 부두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지만 항만업계의 복잡다단한 고용구조 탓에 효과적인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 업체 간 얽히고설킨 계약 관계 속에서 안전사고가 나도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어려운 데다 저마다 업무를 분담하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관리망도 없기 때문이다. 각 업체에 일감을 맡기는 원청업체가 안전관리를 총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마저도 사고 책임을 하청업체가 모두 떠안는 항만업계의 오랜 관행에 막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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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전 부산 강서구 성북동 BNCT 사옥에서 윤준호(왼쪽 첫 번째) 국회의원이 부두 운영사와의 긴급 간담회에 앞서 컨테이너에 끼여 목숨을 잃은 검수원 A(24) 씨를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윤준호 의원실 제공 |
■복잡한 계약·고용 간소화 절실
항만업계는 안전사고를 총괄할 책임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산항의 무분별한 고용구조 탓에 항만 내 안전사고가 나도 명확한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항 인력은 다양한 계약 관계로 고용된다. 여객운송업 화물운송업 하역업 등 4511곳에 이르는 업체가 있으며, 여기에 소속된 5만7322명(2017년 집계 기준)의 노동자가 근무한다.
이번에 사고가 난 신항 5부두(BNCT)만 살펴봐도 복잡한 고용구조 속에 놓인 부두 노동자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다. 신항 5부두 운영사인 BNCT는 경비 절감을 위해 하청업체인 INK에 인력 운용 파트를 일임했다. INK는 자체 직영 직원과 항운노조원 외에도 3곳의 용역업체를 활용한다. 안벽 크레인(CC) 기사는 45명 전원을 회사에서 직고용했다. 실내에서 조이스틱으로 크레인을 조작하는 RMGC 기사와 컨테이너를 집게로 들어 올리는 이동 장비인 리치 스태커(RS)를 다루는 기사는 A용역업체에서 각각 17명, 18명 공급받았다. 항운노조 소속의 스프래들 캐리어(SC) 기사는 71명이다. 나머지 용역업체 A, B사 소속은 각각 33명, 13명이다. 야드 트랙터(YT) 기사는 항운노조 소속이 20명이고 A, B사 소속이 각각 6명, 7명이다. 항운노조 관계자는 “부두마다 용역회사가 난립하며, 신항만 해도 5, 6개의 용역회사가 인력을 공급한다”며 “터미널 운영사가 노동자를 총괄 관리하지 못하니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는 작업자 사이도 삐걱댈 수 있고 급기야 사망 사고까지 발생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부산항 신항 5부두에서 검수사 A(24) 씨가 사망한 사고를 계기로 항만 내 무분별한 고용·업무 계약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선사와 계약을 맺는 데 혈안이 된 다수 영세업체 간 저가 인력공급 경쟁이 치열해 전문성과 안전성이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부두를 이용하는 업체끼리 저마다 계약을 체결하면서 안전 관리 책임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부두 운영사가 업체 간 계약을 통합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부두 내 계약의 통합 관리는 책임 소재를 쉽게 가릴 수 있을 뿐더러 안전 관리에서도 효과적이다. 다만 이 같은 방식 도입을 위해서는 업계의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19일 부산해양수산청에서 열린 ‘부두 근로자 안전사고 유관기관 대책회의’에 참석한 박경철 부산해수청장은 “터미널(부두) 운영사가 검수사 장비기사 등 다양한 노동자를 함께 고용하는 방안을 항만연수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법 개정이 어렵다면 계약서상 안전관리 부분은 터미널 운영사의 지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항만 노동자는 김용균법에서 소외
항만에서 안전사고가 날 때마다 책임은 언제나 하청업체 몫이다. 이런 항만업계의 오랜 관행은 ‘김용균법’ 시행 취지에 배치된다. 지난해 12월 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인 김용균 씨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마련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업체 책임을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지난 1월 공포됐다.
하지만 A 씨 사고에 관한 산재보상은 피해자가 속한 검수업체와 가해 하역업체 간 합의로 처리됐다. 이들에게 일감을 준 원청업체인 선사는 빠진 것이다. 하역·검수 업무의 경우 선사와 하역사, 검수사가 동등한 협력사 체제로 계약하므로 김용균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지만 ‘갑을관계’가 명확하므로 김용균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해석도 맞선다. 노무사 A 씨는 “선사에서 일감을 주지 않으면 하역·검수업체가 독자적으로 업을 영위할 수 없는 예속 관계로 봐야 한다. 따라서 김용균법을 적용해 원청업체인 선사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사 B 씨는 “사법당국이 원청업체까지 수사 범위를 넓혀 김용균법을 확대 적용하면 민사적인 책임도 뒤따라 원청도 안전사고에 경각심을 가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민자부두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현행 항만법으로는 항만 내 안전사고가 나도 민자 부두의 자율관리 체제이므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다. 정부가 안전사고 방지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구조다. 더불어민주당 윤준호(부산 해운대을) 의원은 “최근 2년간 부산항에서 거듭 사망 사고가 나 안타깝다.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어서라도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이승륜 임동우 기자 guardia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