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 구평동 야산이 무너져내려 주민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석탄재(국제신문 지난 4일 자 1·3면 등 보도)를 1980년대 전후 군이 매립했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그러나 군은 “당시 자료를 찾지 못했다”며 여전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당시 야산 인근에 거주하며 감천화력발전소에서 일한 김모(65) 씨는 8일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78년 즈음 몇 달간 군부대로 큰 트럭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여 큰 공사를 하는 줄 알았다. 그때 주민 사이에 ‘석탄재와 철강 찌꺼기를 가져다 붓는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40여 년이 지나 이번 사고로 실체가 확인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3일 석탄재가 쏟아진 야산 정상 예비군 훈련장에는 당시 군 관련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김 씨는 “군부대가 있기 이전에는 뽕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친구들과 뛰놀던 곳”이라고 덧붙였다.
1982~1985년 야산 정상 군부대에서 복무한 윤모(68) 씨는 상황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행정병이었던 그는 군부대 내부 위치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윤 씨는 “위병소를 거쳐 군부대로 들어온 트럭들이 연병장 끝자락의 식당 건물 뒤편 골짜기로 석탄재와 철강 찌꺼기를 부었다”며 “원래 외출·외박을 나가면 비탈을 따라 산에서 내려갔는데 매립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오솔길이 사라져 그쪽으로 내려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1980년 현재의 예비군 훈련장을 짓기 전에도 석탄재 매립이 이뤄졌고, 이후 연병장을 비롯해 군부대 부지를 넓히는 과정에서 추가 매립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군종 목사를 일했던 부산소망교회 원승재 목사는 당시 석탄재 매립에 반대하기도 했다. 원 목사는 “당시 사단장과 지금의 구청장 격인 사하출장소장이 모두 나중에 승진을 거듭한 것도 (석탄재 매립 사업과) 연관된 것으로 추측한다”며 “당시 군에 복무하던 장교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 사업 공증을 받기도 했다. 분명히 기록이 남아 있을 텐데, 조사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산 붕괴 사고를 계기로 석탄재 매립 과정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윤 씨는 “군부대 근처로 민간인이 접근하기 어려워 몰래 작업하기 쉬운 환경이었을 거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은 석탄재 매립이 이뤄진 경위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육군 53사단 관계자는 “당시 근무했던 사람이 지금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상급 부대를 통해 석탄재 매립 등에 관한 자료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고 밝혔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