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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5> ‘부마 교훈’에 희생된 이들

부마가 흘렸을 뻔한 피, 5·18 광주가 대신해 흘렸다

  • 신심범 임동우 기자
  •  |   입력 : 2019-09-24 20:06:58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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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대 소수 학생들로부터 시작
- 운동권에 의해 계획된 시위 아닌
- 수업서 깨달은 사회 병폐에 분노
- 당시 군인·경찰 별다른 힘 못써

- 시위 확산 위기감 느낀 유신정권
- 진압 미숙으로 사태 커졌다는
- ‘부마 학생사태 소요 교훈’ 작성
- 1980년 광주 민주화항쟁 때
- 시민 193명 학살로 이어져

1979년 10월 부산·마산 시민의 항쟁을 보며 유신정권은 19년 전을 떠올렸다. 1960년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4·19혁명이 일어났다. 학생을 주축으로 한 시위는 자유당 독재를 끝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대를 이끌고 정권을 잡은 뒤에도 학생운동은 있었다. 하지만 교정을 넘어 이 정도로 큰 시위가 일어난 건 1965년 한일협정 반대 투쟁 이후 처음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운동권이 침체해 별다른 투쟁이 없어 ‘유신대학’이라고까지 불린 부산대에서 불이 지펴졌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전투경찰이 부산시내에서 시위대 진압을 준비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거리의 횃불은 동아대와 경남대가 이어받았다. 학생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시민 수만 명이 호응해 함께 거리에 모였다. 경남대 이은진(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유신정권이 4·19혁명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었다는 건 다수 기록에서 확인되는 분명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쿠데타)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5·18 민주화운동 때 부마민주항쟁을 떠올렸다. 왜 부마항쟁이 일어났고, 어떻게 진압해야 하는지 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이 부마에서 얻은 ‘교훈’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고스란히 실행에 옮겨졌다.

■갑자기 폭발한 항쟁

“그때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학생운동이란 게 없었어요. 있다 해도 이론을 학습하는 이른바 ‘언더 서클’에서 의식화가 이뤄지는 수준이었죠. 정세적 판단을 통해 반유신 운동을 치고 나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 시위에 불을 붙인 정광민 씨의 말이다. 경제학과 2학년이던 그는 소위 비운동권 학생이었다. 유신 독재로 요약되는 당시 한국 사회의 병폐는 한국경제론, 경제사 수업 등을 듣고 고교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알게 되면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경제학과 특유의 학풍이 ‘새 눈’을 준 것이지, 운동권 그룹에서 학습해 얻은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 씨의 10월 16일 시위 계획은 전날인 15일 계획된 학내 집회가 불발되면서 준비됐다. 15일 당시 부산대 곳곳에는 ‘민주선언문’이란 유인물이 붙었다. 이진걸 씨 등이 쓴 이 글에는 학원 민주화와 유신정권 철폐 등을 요구하면서 “오전 10시 도서관 앞으로 집결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날 오전 10시10분 이 씨 등은 학생이 모이지 않았다고 판단해 교내를 빠져나갔다. 반대로 유인물을 보고 그날 오전 10시40분께 모인 학생 300여 명은 아무도 시위를 이끌지 않아 결국 해산했다.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던 정 씨는 친구들과 밤을 새워 선언문을 만든 뒤 다음 날인 16일 학교에 배포했다. 항쟁의 서막이었다.

시위는 운동권 조직에 의해 계획적으로 준비되지도, 조직의 전폭적 지지 속에서 이뤄지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폭발’이었다. 정 씨는 “오랜 세월 누적된 내적 의식화가 마침내 부산과 마산에서 터진 게 부마항쟁”이라고 설명했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계엄군이 마산시내에서 경계를 펼치고 있는 모습과 ‘부마지역 학생사태 소요 교훈’에 담긴 내용.
■아무것도 몰랐던 군경

소수의 학생이 불붙인 폭발적 시위였던 탓에 경찰의 학원 정보 사찰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조갑제 씨는 저서 ‘유고’에서 이진걸 씨가 실패한 바로 다음 날 정광민 씨가 두 번째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건 두 사건이 소수 그룹의 행동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책에 따르면 부산 동래경찰서는 16일 시위 이후 ‘부대 학원소요 사태 현황’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경찰은 이 씨가 격문을 뿌리기 사흘 전에 정보를 입수했다고 썼다. 이는 다분히 ‘변명을 꾀한 보고서”라는 게 조 씨의 판단이다. 15, 16일 경찰은 엉뚱한 이들을 붙잡아 시위 주동 여부를 물었다. 경찰은 이 씨가 15일 격문을 뿌린 학생이라는 사실과 정 씨가 그날 밤 등사기를 빌려 유인물을 복사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당시 부산대 사찰을 맡았던 장전파출소는 책임을 추궁당하기도 했다.

사실 당시 경찰의 학원 사찰 기능은 상당히 축소돼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전국 각 대학 안에는 ‘상담지도관’이라는 직책이 등장한다. 이들은 학교에 소속된 직원이었으나 대부분이 군 장교 출신이었다. 이들은 고교 교사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주된 역할은 학생 상담·지도로 둔갑한 운동권 학생 관리였다. 부마항쟁진상규명위원회 김선미 위원은 “상담을 내세워 운동권 학생과 접촉했다. 성공적으로 관리하면 승진하는 자리였다. 교장이나 교감, 심지어는 부산대 교수가 된 인물도 있다”고 했다.

상담지도관은 직접 학생의 움직임을 저지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은 시국 사건과 관련한 재판이 열리면 법정에 찾아가 동료를 응원하는 이른바 ‘방청투쟁’을 벌이곤 했다. 방청은 합법이라 경찰이 손을 쓸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상담지도관이 나타났다. 법원 앞 도로에서 상담 지도를 빌미로 출입을 막는 식이었다. 이런 상담지도관의 ‘활약’ 덕분에 대부분의 학생 동향이 파악됐다. 군 또한 학원 사찰에 병력을 투입했다. 김 위원은 “권정달 당시 제501 보안부대장이 동아대에 학생 사찰을 위해 요원을 투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정황상 부산대에도 사복 요원이 침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두 번째 4·19’ 위기 느낀 정권

유신정권은 부산·마산의 항쟁에 큰 위기를 느꼈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부마항쟁 당시 부산을 직접 둘러본 뒤 박 전 대통령에게 “체제 반항과 정책 불신, 물가고, 조세 저항이 겹친 민란이다. 전국 5대 도시로 확산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부산 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며 화냈다. “자유당 때는 최인규나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해 사형당했지만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하겠느냐”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서 자유당이 겪은 일과 유신정권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위기감이 드러난다.

“4·19와 같은 사태가 오면 국민과 정부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희생될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19와 같은 사태는 눈앞에 다가왔고, 아니 부산에서 이미 4·19와 같은 사태는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1980년 1월 28일 김 중앙정보부장이 발표한 항소 이유 보충서 내용의 일부다. 김 부장은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0·26사건의 계기와 그 정당성을 밝히려고 작성한 이 글에서 부마항쟁을 4·19혁명에 빗댔다. 4·19는 시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종식한 국내 최초의 사례였다. 그의 눈에 몰락한 자유당과 당시 유신정권은 다르지 않았다. 조만간 이 사회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바라는 이들이 들불처럼 일어날 터였다. 이 불을 끄려면 국민을 피 흘리게 해야 했다. “캄보디아에선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100만~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있겠느냐”는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의 섬뜩한 주장도 있었다. 김 부장은 ‘유신의 심장’이 총탄에 뚫리면, 그런 불행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광주로 이어진 부마의 ‘교훈’

결과적으로 김 중앙정보부장의 판단은 틀렸다. 부마가 흘리지 않은 피는 1980년 광주가 대신해 쏟아야 했다. 1979년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강탈한 권력을 지키려 했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앞서 1979년 10월 18일 부산의 계엄사령부를 방문해 “데모자에게 강력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전했다. 그 해 10월 23일 수도경비사령부는 추가적인 대규모 항쟁에 대비해 가스살포기가 장착된 헬기를 준비(국제신문 지난 24일 자 1면 보도)하기도 했다. 훗날 수경사는 1980년 5월 광주에 헬기를 투입했다. 계엄령 해제 이후 보안사는 ‘부마지역 학생사태 소요 교훈’이란 제목의 문서를 만들었다. 이 문서에서 보안사는 간담을 서늘하게 함으로써 군대만 보면 겁이 나서 데모의 의지를 상실하도록 위력을 보여야 소요를 진압할 수 있다는 폭압적 인식을 보였다.

‘급작(부마민주항쟁)이 악화된 상태는 관계기관의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과 학원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으로 극심한 정보 부재 현상에서 기인되었으며, 사태 발생 시 학교 내에서 무리 없이 해산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음에도 대비책 및 방법의 미숙으로 소요를 진압지 못하고 혼란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소요 교훈에 적힌 그들의 생각이다. 갑작스러운 시위는 정보 부재 때문이었으며, 이를 진압하려면 ‘성숙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 그들이 부산과 마산에서 얻은 ‘교훈’은 고스란히 7개월 뒤 광주에서 실행됐다.

1980년 5월 18~27일 열흘간 광주 시민 193명이 학살당했다. 또 3139명이 군이 휘두른 몽둥이와 총칼, 군홧발에 맞아 다쳤다. 국가 폭력의 후유증으로 숨진 이가 376명, 고문 피해를 본 이가 1589명이다.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방불명자도 65명에 달한다. 이 기록은 공식 집계에 불과하다. 드러나지 않은 사실은 이보다 훨씬 크고 잔인하다는 게 뼈아픈 진실이다.정광민 씨는 “1979년 10월의 부산·마산과 1980년 5월의 광주, 1987년 6월의 전국은 하나의 흐름을 공유하는 민주사”라며 “모든 국민이 한국 민주주의가 지나온 길과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심범 임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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