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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4> 조작된 진실에 피흘린 이들

“10·26사태 없었다면 … 부마항쟁, 역사에 폭거로 기록됐을 것”

  • 국제신문
  • 임동우 신심범 기자
  •  |  입력 : 2019-09-17 18:46:05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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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주도하의 자발적 항쟁
- 독재 정권 정당성에 위배
- 배후로 北·야당·재야인사 몰아
- 박정희 대통령, 실체 조작 지시

- 부마항쟁과 남민전 엮어
- 시위 참가자 무작위 고문
- 가혹행위로 그림 짜맞추다
- 갑작스런 대통령 사망 후 종결

“이번 부산 사건은 조직적인 배후가 있는 것 같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사하고 있다니, 철저히 조사하고 규명하라.”(1979년 10월 18일 박정희 전 대통령) “우발적인 군중 시위 행동이 아닌 조직적인 폭거로, 불순 세력이 개입한 징후가 농후하다”(같은날 치안본부)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국제신문과 부산 MBC 사옥이 있던 부산 중구 중앙동 국제회관 앞에서 계엄군이 경비를 서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자발적 항쟁을 왜곡한 독재

1979년 10월 16일 오전 부산을 시작으로 이틀 뒤 마산에서도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경찰이 초기 진압에 실패하자 시위가 확산되는 걸 우려한 정권은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사령부가 꾸려질 무렵 부마민주항쟁 참가자에 대한 조사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정보 수집조차 안 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중앙정보부 등은 일찌감치 ‘조직적 배후’ ‘불순 세력’ 운운하며 짜 맞추기 수사로 부마항쟁의 실체를 조작했다.

‘억지 수사’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박 전 대통령이 수사 기관에 사실상 결론을 제시한 건 정권의 명운이 걸린 탓이다. 부마항쟁을 있는 그대로 ‘시민의 자발적 항쟁’이라고 결론 짓는다면 정권의 정당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정권으로서는 부마항쟁이 반드시 불순한 의도를 지닌 조직이 배후가 돼 일으킨 폭거여야만 했다.

■배후로 들이민 북한·야당·재야

계엄사령부 산하 501보안부대를 주축으로 10월 18일 꾸려진 합동수사본부는 부마항쟁 배후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중앙정보부도 합세했다. 합동수사본부와 중앙정보부는 북한·야당·재야인사를 항쟁의 배후로 정하고 조사를 이어갔다.

합동수사본부와 중앙정보부는 부마항쟁의 배후를 조작하려고 ▷부산대 주모자 이진걸 사건 ▷동아대 주동자 이동관 사건 ▷신민당 한의명 사건 ▷통일당 권삼쾌 사건 ▷남민전 사건 ▷불순 종교인 사건 ▷양서조합 사건 등 7개 중요 사건을 만들어 구체적 접근 방향을 설정하고 기관별로 수사를 진행했다.

‘부산대 주모자 이진걸 사건’ ‘동아대 주동자 이동관 사건’ ‘남민전 사건’ ‘불순 종교인 사건’은 북한을 배후로 뒀다. ‘신민당 한의명 사건’ ‘통일당 권삼쾌 사건’은 야당, ‘양서조합 사건’은 부산 재야인사를 염두에 두고 조사했다.

■합수단·중정의 비열한 조작

배후를 조작하기로 한 합동수사본부와 중앙정보부는 부마항쟁과 남민전 사건을 연결하는 데 주력했다. 남민전 사건이 부마항쟁 발발 직전인 10월 4일 적발돼 시기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부마항쟁처럼 대학생이 주축이 됐기 때문이다.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부마항쟁 당시 우연히 부산을 방문했던 한국외대 출신 시위 참가자 황선권 씨와 남민전 관련자 박모 씨의 친분이 드러나자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황 씨의 입에서 부마항쟁이 남민전과 관련돼 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사흘간 잠을 재우지 않고 가혹행위를 했다.

합동수사본부와 중앙정보부의 이 같은 시도와 달리 전문가들은 미국중앙정보부(CIA) 보고서 등을 인용해 당시 북한의 위협이 현저히 낮았다고 분석한다. 경남대 이은진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971년 CIA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북한의 위협이 적은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도 박 전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려고 부마항쟁과 남민전을 엮었다”고 말했다.

■고문·가혹행위로 짜맞추기

부마항쟁 배후를 조작해야 하는 합동수사본부와 중앙정보부는 물론 일선 경찰까지 시위 참가자를 고문하고 가혹행위를 일삼았다. 부산대 시위 주모자로 10월 20일 동래경찰서에 연행된 이진걸 씨는 다음 날 인근 여관에서 경찰관 3, 4명에게 둘러싸여 마구잡이로 맞았다.

그다음 날에는 온천장파출소 2층에서 긴 막대에 끼워 매다는 이른바 ‘통닭구이’를 시작으로 얼굴에 젖은 수건을 씌워 겨자 물을 입과 코에 붓는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 경찰은 이 씨에게 “김영삼이 돈을 줬느냐”고 물으며 배후를 실토할 것을 강요했다. 이후 보안사로 끌려간 이 씨는 수사관들로부터 남민전과의 연관성을 추궁당했다.

그러나 이들 기관의 수사는 치밀하지 못했다. 남민전과 양서협동조합 사건에 연루돼 합동수사본부의 조사를 받은 고호석 부마민주항쟁재단 상임이사는 “경찰은 대뜸 내게 남민전과의 연관성을 물었다. 치밀한 조사라기보다는 시나리오에 맞추려 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남민전에서 양서협동조합 등으로 방향을 바꾼 건 도저히 그림이 안 맞다 싶어서 일 것”이라고 전했다.

고문과 가혹행위의 여파는 컸다. 10월 20일 서면에서 체포돼 보안대에서 각종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황선용 씨는 수사관들이 ‘김일성 최성묵 그리고 황선용의 관계’라는 진술서를 작성하는 걸 목격했다.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연좌제로 피해 볼 걸 우려한 황 씨는 조사받던 건물 3층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황 씨는 전깃줄에 오른쪽 다리가 걸려 목숨을 건졌다. 황 씨뿐 아니라 동아대 학도호국단 사단장이었던 이용수 씨도 영도경찰서에서 고문받던 중 극단적 시도를 했다.

경남 마산에서는 여성 시위 참가자를 상대로 성고문도 이뤄졌다. 경남대에서 시위를 모의·주도한 혐의로 붙잡힌 최갑순 씨는 남민전과의 연관성을 조사받는 과정에서 벌거벗겨지는 건 물론 경찰과 군인에게 희롱당했다. 옥정애 씨 역시 최 씨와 함께 연행돼 조사받던 중 성고문을 당했다. 최 씨와 옥 씨 모두 아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다.

■박정희 사망 이후 멈춘 조작

부마항쟁 배후를 조작하려는 시도는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끝을 맺었다. 계엄군은 10월 26일 이후 연행한 이들에 대해 고문·가혹행위를 중단했다. 그리고 같은 달 28일 연행한 이들의 범죄사실을 특정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으로 조사를 마무리했다.

전문가들은 갑작스러운 박 전 대통령의 사망이 없었다면 부마항쟁이 북한 등 불순한 세력에 의해 발생한 사건으로 완전히 조작됐을 것으로 본다. 김선미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위원은 “10·26사태가 없었다면 부마항쟁은 여러 개 간첩 사건 중 하나로 조작됐을 거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통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면서 야당을 탄압하고 정국 주도권을 쥐었을 것”이라며 “당시 정권의 필요에 따라 용공 사건을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최창림 마산경찰서장은 시위대가 사제 총기를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 유신 정권의 ‘부마사태 시나리오’

부산대 이진걸 사건- 부산대 시위 주동자 이진걸을 통해 부마민주항쟁을 남민전 사건과 연관지어 배후를 북한으로 조작하려함

동아대 이동관 사건- 동아대 시위 주동자 이동관을 통해 부마민주항쟁을 남민전 사건과 연관지어 배후를 북한으로 조작하려 함

남민전 사건- 남민전 사건을 부마민주항쟁과 연관지어 배후를 북한으로 조작하려 함

불순 종교인 사건- 중부교회 최성묵 목사가 북한 지령을 받아 국제사면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과 대학생 시위 참여를 유도하려 했다고 조작하려함

신민당 한의명 사건- 김영삼 신민당 총재 비서인 한의명을 조사해 야당을 부마민주항쟁배후로 조작하려함

통일당 권삼쾌 사건- 부마민주항쟁 배후와 민주통일당과 연관성 조사

양서조합 사건- 최성묵, 김형기, 고호석 등 부산재야인사를 부마민주항쟁 배후로 조작해 이들을 탄압하려 함

임동우 신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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