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서 희생당한 유치준 씨
- 규명위 “국가폭력에 숨져
- 물리적 타격이 사망 원인”
- 경찰 은폐 규명이 결정적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경찰에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진 유치준(당시 51세) 씨가 40년 만에 국가 폭력에 의한 사망자로 공식 인정됐다. 부마항쟁 관련 사망자로 등록되는 첫 사례다. 항쟁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국가는 사망자를 ‘0명’으로 집계했다.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 진상 규명 및 관련자 명예 회복 심의위원회’는 5일 회의를 열어 유 씨를 사망자로 의결했다. 위원 12명 중 11명이 찬성하면서 유 씨는 부마항쟁과 관련해 유일한 사망자로 판정됐다. 항쟁 40주년을 맞아 국가기념일 제정이 추진되는 시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가 나온다.
1979년 부산지검 마산지청이 작성한 ‘검시사건부’에는 유 씨가 뇌출혈로 숨진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당시 한 기자가 경찰의 ‘변사발생보고서’를 입수해 작성한 자료에는 ‘왼쪽 눈에 멍이 들고 퉁퉁 부었으며,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린 채 죽었다’고 적혀 있다. 이에 위원회는 유 씨가 물리적 타격으로 숨졌다고 판단했다. 특히 경찰이 사망 사실을 은폐한 점이 결정적 근거가 됐다. 당시 경찰은 유 씨를 암매장한 뒤 11월 초에야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고도 담당 검사에게 ‘시신을 유족에게 즉시 인도했으며 타살 혐의가 없다’고 허위 보고했다.
유 씨는 1979년 10월 19일 경남 마산시 산호동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1년 유 씨의 삼남 성국(59) 씨가 부마항쟁 10주년 자료집을 확인하기 전까지 유족은 사망 경위조차 몰랐다. 유족은 2014년 11월 경남에서 피해 신고를 했다. 그러나 뉴라이트 계열 위원이 다수였던 당시 위원회는 제대로 심의하지 않았다. 실망한 유족은 2016년 8월 신청을 철회했다. 이후 위원회 구성원이 교체됐고, 지난해 6월 다시 부마항쟁 관련 사망자 판정을 신청했다. 유성국 씨는 “진실이 밝혀지면 기쁠 줄 알았는데,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홍순권 심의위원장은 “국가 권력의 직간접적 책임을 인정한 데 의의가 있다. 유족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